넥슨, 국내 유일 어린이재활병원의 초석을 놓다

푸르메재단 후원자 이야기_김정주 NXC 대표 1편


 


2011년 5월 김정주 대표가 강연하는 모습
2011년 5월 김정주 대표가 강연하는 모습

“넥슨에서 전화 왔습니다. 그곳 대표님이 우리 재단을 방문하고 싶다고 합니다.” 2011년 가을의 어느 날, 외부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서자 직원이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당시에는 넥슨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다. “넥센은 타이어회사 아닌가요. 타이어회사에서 무슨 일일까요?” 타이어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 게임 회사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딸애가 초등학교 시절 즐겨 했던 게임 ‘메이플스토리’ 제작사가 떠올랐다. “아, 그 넥슨!”


그런 큰 기업의 대표가 재단을 찾아온다니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옛날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기회가 있었던 누구 하면 알만한 재벌 총수와 기업 대표들을 떠올려 보았다. 숨이 턱 막히는 심각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바쁘게 무언가를 지시하던 모습. 수많은 색깔 중 유독 검은 옷을 즐겨 입고 늘 검은색 승용차를 타야 하는 사람들 같았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넥슨의 대표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막연히 짐작했다.


며칠 후, 넥슨 김정주 대표(정확하게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대표)가 재단을 찾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중후한 중년 남성을 예상했는데 사무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환하게 미소 짓는 청바지 차림의 여성이었다. 어리둥절한 채로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뒤이어 청바지에 하얀 운동화를 신은 남성이 들어왔다. 중절모를 쓰고 검은색 연미복에 쿠바산 시가를 입에 문 윈스턴 처칠을 예상했는데 존 F. 케네디 부부를 마주한 격이었다. 40대 초반의 김정주 대표와 부인 유정현 감사였다.


“몇 달 전 제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때 주된 일과가 신문들을 읽는 것이었지요.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철재 사장이 푸르메재단에 큰 기부를 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으신 분이 역경을 딛고 성공한 것도 대단한데 거액을 기부하다니... 크게 감동했습니다. 넥슨과 우리 부부도 푸르메재단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몰두한 덕에 세계 3위 게임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는 김정주 대표.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몰두한 덕에 세계 3위 게임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는 김정주 대표.

이철재 사장은 미국 유학 시절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버클리대에 입학해 신경과학(neuroscience)을 전공했다. 졸업 후 ‘쿼드디멘션스’를 창업해 벤처사업가로 성공했고, 한국에 돌아온 뒤 푸르메재단이 짓는 어린이재활의원에 흔쾌히 10억 원을 기부했다. 김정주 대표는 ‘쿼드디멘션스’를 이철재 사장으로부터 매입한 인연으로 그의 기부에 남다른 감동을 받은 듯했다.


넥슨이 함께 하겠다는 말에 너무 반가워 김 대표의 손을 덥석 잡았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는 옷차림만큼이나 파격적이고 소탈했다.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당시 푸르메재단은 장애어린이들이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작은 시설(푸르메어린이재활의원과 푸르메치과가 들어선 푸르메센터)을 짓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좀 더 쉽게 치료받기 위해 교통이 편리한 서울 복판에 지어야 했다. 하지만 땅값이 문제였다. 기부금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즈음 재단 사무실 근처에 있는 공영주차장을 지하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렇다면 지상에는 어린이재활의원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김영종 종로구청장을 찾아가 설득한 끝에 지상에 어린이재활의원과 장애인치과, 장애인복지관을 세울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80억 원의 전체 건립비 중 나머지 20억 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 무렵 김정주 대표를 만난 것이었다.


넥슨 직원들이 재능기부로 꾸며준 푸르메재활의원 대기실 모습
넥슨 직원들이 재능기부로 꾸며준 푸르메재활의원 대기실 모습

“1982년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이 세워져 성인 장애인이 재활치료를 잘 받게 되었지만, 장애어린이가 특화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아직 없습니다. 작은 규모라도 어린이를 위한 전문재활의원이 지어지면 하루 100명의 어린이가 제대로 치료받아 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아직 어린이재활전문병원이 없다는 말에 김정주 대표 부부는 매우 놀란 듯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10억 원의 기부를 약속했다. 단순히 기금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넥슨 임직원이 지속적인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푸르메센터가 세워지자 김 대표의 부인 유정현 감사와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왔다. 개원 준비를 하는 재활의원 진료실과 대기실 벽면에 예쁜 그림을 그리며 차가운 복도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알록달록한 열기구 모형과 나무 블록 기차, 미끄럼틀과 다양한 동물 인형들로 대기실이 채워졌다. 삭막한 시멘트 공간이 순식간에 놀이동산으로 변했다. 넥슨 임직원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푸르메재활의원은 무섭고 힘든 치료를 받는 곳이 아닌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쾌적한 공간으로 변했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려는 마음이었다.


국내 재활치료의 현실과 필요성을 알리며 부족한 푸르메어린어재활의원 건립기금을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과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종합병원조차 포기한 일을 작은 비영리재단이 해낼 수 있겠냐는 질문이 늘 되돌아왔고 당연히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한 지인들에게 기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면 마음이 몹시 상했다.


2013년 5월 넥슨 직원들과 함께 한 어린이날 행사
2013년 5월 넥슨 직원들과 함께 한 어린이날 행사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니 다행히 어린이치료와 병원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책의 첫 인세를 보내주시던 고 박완서 선생님과 월급의 30%를 기부해주셨던 조무제 전 대법관님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푸르메재단을 후원하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김정주 대표와의 인연도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었다.


김정주 대표에게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는 내게 아내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만두를 빚자는 것이었다. 평안도가 고향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겨울이 되면 아내와 곧잘 이북 만두를 빚곤 했다. 맛은 나름대로 자신했던 터였다. 우리 부부는 신이나 김장김치를 다지고, 두부와 숙주나물, 곱게 간 돼지고기를 큰 대야에 넣어 잘 버무린 뒤 먹음직한 주먹 만두를 밤새도록 빚었다.


이튿날 택배로 김정주 대표에게 보냈다. 맛있게 먹었다는 연락을 받자 이번에는 김정주 대표 가족을 아예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이날의 메뉴도 역시 평안도 이북 만두. 시간이 지난 뒤 김정주 대표가 이번에는 우리 부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만두가 선사한 선물이었다. 만두 덕분에 우리 부부는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의 5월은 눈이 부실 정도로 모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다.


*글=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사진=푸르메재단, 넥슨 DB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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