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여섯 명의 졸업식

강원호 (학원강사)




 


 


 


멀리 전남 영광으로 가는 졸업식 행차


월요일 새벽 5시. 두 학부모가 서울에서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멀리 전남 영광의 한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 차 인천에 있는 우리 집 차를 '카풀해서' 같이 타고 가기 위해서다.


아침 6시 30분에 만날 약속을 하고 기다리던 중인데 드디어 약간 늦은 40분에 그분들이 전철역에 도착했다. 남학생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다른 남학생의 어머니와 그 딸, 이렇게 세 명이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두번째 학부모의 딸아이는 이번에 같은 중학교의 신입생으로 신입생 캠프에 참여할 겸 엄마와 함께 같이 떠나는 것이다.

졸업식 시각은 11시인데 서울에서 고속버스 첫 차를 타 봐야 학교에는 12시에나 도착하니 이 방법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여기 인천까지 내 차를 타러 왔다. 이분들 모두 3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다.


비봉터널 쯤에서 사고가 나서 길이 많이 막힌다. 4시간으로는 빠듯해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먼저 출발하신 다른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군산을 지나고 계시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도 보령인데. 화장실 간다고 군산에서 단 10분만 쉬고 다시 부지런히 달린다. 다른 때에는 시속 110km를 넘지 않는데 오늘은 130km, 140km을 밟는다. 마음이 바쁘다.


드디어 학교에 도착하니 10시 40분이다. 다행이다. 입구부터 아이들이 도우미가 되어 주차 유도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아주 그럴 듯해 보여 보기가 좋았다. 운동장은 이제 황금색 잔디로 뒤덥혀 누렇게 변해 있다. 입학식 때는 볼품없는 황토밭이었는데.


1, 2학년 어머니들이 음료수와 귤, 떡 등을 졸업식장 입구에 배치해 두셨다. 아이들 얼굴이 눈에 뜨이기 시작하고 엄마들은 도우미를 자청하며 졸업생, 내빈, 학부모들에게 음료수를 권해 드린다. 몇 명 안되는 학생들이어서인지 그 얼굴들이 이쁘기 그지 없다.


전국에서 달려온 1,2 학년 학부모와 함께 하는 졸업식


▲ 개교전 성지송학중학교 전경





▲ 개교식 (2002.3.4) 준비 모습



식 전에 졸업생들의 3년 생활을 회고하는 영화가 상영되고, 아이들이 들어왔다. 동네 면장님, 도의회 의원님, 그리고 학교 이사회 이사님들, 다른 학교의 교장선생님들께서 내빈으로 소개된다.


그러더니 교장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는 별난 학교라고 하시면서 3학년 학생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인천 등 각지에서 찾아 온 1, 2학년 학부모인 우리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일어나 박수를 받으니 괜시리 으쓱하는 마음이 든다.


너무나 작은 학교. 60명이 전교생인 학교.


오늘 같은 졸업식이나 입학식에도 모든 학부모와 지역사회분들이 함께 축하해 주고, 분위기를 돋우어 주는 따뜻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학교.


1년 학사일정을 보고하는 것도 영화같은 파노라마 형식으로 1학년 학생이 소개한다. 나는 재수해서 서울의 소위 일류권 대학에 진학했었지만, 입시 공부만 하느라 저런 기회가 없었기에 조금 서툴지만 학사 일정을 보고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작은 학교이지만 선생님들과 학부모, 지역사회분들을 모신 자리에서 발표하는 것은 그 나이에 더할 나위 없는 사회 공부다. 작은 공동체이지만 '나의 참여를 통해 이 공동체가 굴러단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그 얼마나 중요한 공부인가. 아직 교실이 나무복도라서 사람 들낙일때 마다 문소리가 나는게 식장의 격식상 조금 거슬르긴 하지만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열 여섯 명의 졸업식


교장 선생님께서 16명의 졸업생을 일일이 호명해 앞에 세우신다. 한 명 한 명에 대해 1학년 입학 때부터의 추억과 함께 학생의 좋은 점과, 미래의 꿈과 그 가능성에 대해 말씀 하실 때 참 가슴이 뭉클했다. 지나간 역사야 어쨌든 우리의 희망은 자라나는 세대이기에 그 아이들 하나 하나에 대한 사랑과 희망의 말씀은 내 아이가 아니라도 감동인 것이다.


가정형편이 안 좋은 학생. 조금 더 관심을 쏟아 주시지 못해서 서운하셨다는 학생. 축구공을 그려놓고 공이 날아가는 방향을 바람으로 그려내서 그 미술적인 재능을 아셨다며 그 분야로 자극을 주어 결국 예술 고등학교 입학을 이뤄 낸 학생. 연예인이 되고 싶어 열심인 학생을 위한 마련해 주신 아름다운 상. 너무나 책을 열심히 읽어 얼굴이 네모로 변했다는 덕담.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걱정이 없을 거라는 졸업생. ...



▲ 16명 졸업생들의 기념 촬영


학생들이 입시 과목에서 더 나은 성적을 얻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사교육 현장의 학원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내 아이는 대안학교에 보내는 내 마음을 한마디로 줄여 얘기할 수 없을지도 몰라도, 일일이 모든 졸업생의 장점과 앞으로 해야 할 방향을 알려주시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비로소 이것이 내가 우리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이유임을 스스로 깨닫는다.



졸업생 학부모의 소감이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다. 처음 의자 2개만이 달랑 있었던 4년전에 처음 이 곳을 왔을 때의 학교 모습을 말씀하시면서 많이 발전한 지금의 졸업식 감회를 말씀하시고, 거기에 한가지 더 보태서 학부모들이 열심히 학교에 참여하시기를 당부하신다.


점심식사를 학교에서 제공해 주셔서 영광굴비를 반찬으로 밥 두공기를 맛있게 뚝딱 해치운다. 그러더니만 1학년 운영위원장님의 호출이다. 도서관 책 정리를 위한 학부모 노력동원!! 나는 힘쎈 아빠라서 찢어지고, 튿어진 책을 대형 찍기로 찍고 큰 테입으로 뒤 부분을 감싼다. 그리고 책 번호를 부여하는 분류 작업이다. 조금씩 졸려 오지만 어쩔 수 없다. 어제 일요일 수업도 밤 늦게까지 했는데 그래도 하라면 해야지.


졸업식 행사가 끝나니 재학생들은 또 봄방학이다. 버스 터미널까지 아이들을 학교 봉고로 태워다 주고 거기다 오늘부터 오리엔테이션과 기숙사 생활에 대한 사전 경험을 체험하게 하는 신입생들 상대의 3박4일 예비학교 캠프가 시작된다. 선생님들이 정말 바쁘시다. 운영위원장님께서 동네 아파트 도서관 활동을 워낙 잘 해오시던 분이라 학교 도서관 정리를 팔 걷어부치고 시작 하신다.


그 일이 저녁 전에 끝날 줄 알았는데 우리들이 속은 것 같다. 책 수리가 손에 익을 때 쯤 사람들을 나누시더니 컴퓨터 띠지 작업을 시키시는 것이다. 분류기호를 나누어서 스티커로 붙이는 작업이다. 조금 지칠 때 쯤 되니 다른 새로운 작업을 내놓는 정말 일 시키는 고수(!)다.



▲ 개교식 (2002.3.4) 장면


그 비싼 영광굴비와 함께 행정실장이 오셔서는 교장 선생님께서 사다주신 호빵, 만두, 그리고 음료수를 내놓으신다. 새참 먹는 기분이란 정말로 오랜 만에 느껴보는 것이다. 컴퓨터 프린트 작업이 필요하다. 프로그램 작업을 선생님들께서 해 주셔야 하는데 선생님들도 너무 바쁘시다. 저녁 7시가 되면 신입생 캠프가  다시 시작이니 터미널에 도착한 아이들 실어나르랴 눈코 뜰 새가 없으시다.


저녁 식사시간에 그래도 밥이 들어간다. 그것도 너무 맛있게. 밥을 먹고 행정실로 모두 불려갔다. 고생했다고 그 유명한 영광굴비를 선물하신다. '헉,이거 이마트에서는 3~4만원씩 하던데' 본전 뽑았다. 마누라가 차에서 한마디 한다. '이거 번번이 미안해서 어째. 지난 번 김장 때는 김치에 도자기를 두개씩이나 받아왔는데'


아이들은 미리 수지에 사는 아이 집에 고속버스 타고 가 있다. 저녁이라 운전하기가 조금 피곤해 휴게소 몇 군데를 들르며 쉬엄쉬엄 가다 보니 12시 50분에 겨우 도착한다.


카풀 해 온 다른 분들이 타야 할 심야버스 노선 확인시키고, "너무 먼 분들은 한 숨 자고 가라"며 탁탁 정리를 알아서 해주시는 그 집의 여학생 아빠가 고맙다. '역시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이 다르긴 달라.'


딸애를 싣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2시가 되어 인천에 도착했다. 오늘 참 마음이 뿌듯한 하루였다. 특히 처음 보는 특이한, 그러나 진정한 졸업식. 그리고 처음 해 보는 도서관 정리 노력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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