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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끈을 묶고 월간 [사과나무]

[전 CBS와 동아일보 기자로 현재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위한 푸르메재단의 상근이사로 일하고 있는 백경학씨]

“누구나 어느 한 순간에 장애인이 될 수 있어요. 우리 나라에서 매년 30만 명이 후천적인 장애인이 되는데 그 비용이나 희생을 전부 개인이 부담해야 돼요. 그러다보니 집안에 장애인이 생겨 치료기간이 길어지다보면 결국 가족이 파괴되고, 심지어 원수가 돼요. 그걸 막기위해서라도 누군가는 그 짐을 덜어줘야 해요.”
독일로 연수를 갔다가 아내가 교통사고로 한 다리를 절단하는 걸 지켜보면서 장애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백경학 씨. 결국 그는 장애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재활훈련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지난 3월 푸르메재단을 설립했다. ‘푸른 산’을 뜻하는 푸르메는 인간중심의 자연친화적인 병원을 상징한다.

그의 아내는 스코틀랜드에서 사고를 당해 영국으로부터 각종 치료를 받고, 독일의 수준 높은 재활병원 등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환자 중심의 유럽식 의료서비스에 비해 고국의 병원은 너무나 열악했다.

차가운 금속성의 병원 건물에 어울리게 의사는 너무 권위적이고 무뚝뚝했고, 간병인 비용이며, 치료비 등등은 모두 개인에게 청구되었다. 쭉 한국에만 살면서 한국 병원에만 다녔던 사람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 그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장애가 생긴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인데 그 비용을 다 개인이 감당하라면 너무 가혹한 거 아니에요? 아내가 유럽에서 다닌 좋은 병원이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 푸르메재단을 만들기로 결심한 거죠.”

그가 꿈꾸는 푸르메병원의 청사진은 이렇다. 뒤로는 산이 있고, 병원 창밖으로는 넓고 푸른 잔디가 깔려진 정원에 병실은 나지막한 목조건물로 지어진, 돈 때문에 싸우지 않아도 되고, 간병에 지친 가족들과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길 일이 없는… 무엇보다 환자가 가족들에게 죄의식을 갖지 않아도 되는 병원. 가족이나 유료 간병인 대신 풍부한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면서 환자를 돌보며, 또 병실 가운데 간호사실이 있는 게 아니라 거실처럼 되어 있어 손님이 오면 다른 환자에게 피해 주지 않고 거기서 커피 마시며 환담 나눌 수 있는 병원.

“우리나란 명승지에 가면 모텔이나 음식점만 있잖아요. 히틀러의 별장이 있던, 독일에서 제일 멋지다는 알프스 산맥 아래에는 주로 노인요양원이나 장애인 장기재활치료소 같은 게 있어요. 거긴 일반인들이 머물 수 있는 콘도 같은 시설이 같이 있어서 휴가 온 사람들이 휴가의 절반은 등산하고 수영하고 또 절반은 요양소에 가서 자원봉사를 해요. 환자들과 팔짱끼고 산책하고 식사 초대도 하면서요. 우리는 삶과 죽음이 분리돼 있듯 장애인이 세상과 고립되어 있어 장애인 문제가 개선이 안 돼요.”

고등학교 3학년생 눈엔 고3만 보이고, 재수생 눈엔 재수생만 보인다고 하지 않은가. 장애인이 격리되어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이 땅에 장애인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이 얼마나 힘겹게 사는지는 당사자들만 아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의 무덤이 고향 두메산골에 있어 일년에 한두 번 찾아가는 게 고작이다. 집 근처 교회 마당에 가족묘가 있어 출퇴근하며 들여다보고 정원 돌보듯이 물 뿌리고 꽃을 가꾸는 유럽인들. 동네에 재활병원이 들어선다고 하면 내가 무슨 봉사를 할 수 있나 고민하는 그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재활병원이나 묘지 만든다면 집값 떨어진다고 데모하는, 전체인구의 10%인 470만 명이나 되는 장애인을 가진 우리를.

“병원 하나 지어서 50명에서 많게는 100명 정도 수용하는 게 큰 건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그런 운동이 일어나서 그 문화가 정착이 되면 또 다른 물결들이 생겨나지 않겠어요. 중앙정부나 서울시 같은 재정이 풍부한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관심을 기울이면 제2 제3의 푸르메병원이 탄생하는 게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봐요.”

기자생활을 오래 한 경험은 푸르메 병원 설립을 위한 훌륭한 재산이 되었다. 그런 병원을 만들어보자는 데 뜻을 같이할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발기인 총회를 했고 이사회를 구성했다. 그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후원금도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성공회대 교수인 그의 선배 두 명은 성공회대 김성수 총장을 푸르메재단 이사장으로 모시기 위해서 총장실 점거농성도 불사했다. 김 총장이 청렴한 성직자로 알려진 데다 강화도에 있는 선영에 지체장애인자립센터를 만들었고 성공회대학교 내에도 그런 학교를 만들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영입으로 푸르메재단의 발걸음은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다.

최근엔 가수 강원래 씨와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은 후 재활에 성공한 이지선 씨 등을 홍보대사로 맞이하여 적극적으로 언론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 그는 한국에 돌아와 신문사에서 2년 정도 일하다 2002년 옥토버훼스트라는 하우스맥주 전문점을 운영하는 회사 마이크로 브루어리 코리아(M.B. Korea)를 설립했다. 푸르메재단의 종자돈을 마련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아픈 아내를 돌보며 언론사의 과도한 업무를 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M.B. Korea는 푸르메병원 설립에 뜻을 같이하는 후배 기자였던 이원식 씨와 국내 1호 브루마스터 방호권 씨와 동업 형태로 운영해 왔다. 그러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의 재단설립 허가가 떨어진 후 이원식 씨가 M.B. Korea 경영을 맡고 그는 푸르메재단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M.B. Korea 지분 10%인 3억여 원 정도를 푸르메재단 자본금으로 쏟아부었고, 그의 아내도 영국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1억 원을 내놓았다. 그의 아내는 사고 전후의 몇 개월간의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렸고, 한 다리를 잃었지만 대신 평생 찾아가야 할 ‘비전’을 얻은 것에 감사해 한다.

“병원을 짓는 일이 큰 산에 올라가는 일이라면 지금은 겨우 신발끈을 맨 상태에요. 어떤 산을 올라야 하는지 정했고, 일단 신발을 구했으니까 지금은 열심히 뛸 거에요. 2008년을 병원 설립년도로 정해놓았는데 아직은 그게 착공일이 될지 완공일이 될지 알 수 없지만요.”

일을 하면서 그가 가장 아쉬운 점은 이 사업에 절대적으로 동반자여야 할 대기업들이 ‘기부’와 ‘홍보’를 거의 동일시 한다는 것. 아직 나눔경영이 우리사회에 정착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귀찮을 정도로 기업을 쫓아다니며 설득하는 중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는 희망적이다.

“소은영이라는 여중 1년생은 작년부터 용돈 중 일부를 떼어 매월 보내주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암으로 고생하시는데 꼭 푸르메병원에서 치료받게 하고 싶대요. 푸르메병원을 기대하는 그런 개미 후원자들이 있어서 저는 머릿속으로 벌써 병원을 여러 채 짓고 있어요.” *

글 · 임지희

월간 사과나무 200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