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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보니 마음부터 훈훈…이제 살았어요 ” [동아일보 사회면]

“연탄 보니 마음부터 훈훈…이제 살았어요 ”

[동아일보]

《6일 오후 3시경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복희(60·여) 씨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기 과천시의 한 비닐하우스촌 입구에 들어서자 이 씨는 큰 목소리로 아들(32)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자 이 씨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그는 9년 전부터 1급 지체장애인인 아들과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딸(26)과 함께 살고 있다. “집을 비울 수 없어요. 내가 나가면 아들은 밥도 먹지 못하고 딸은 술을 마시니까요.”》

이 씨 가족에게 불운이 닥친 것은 20년 전.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남편이 ‘퍽치기’를 당한 후유증으로 정신장애를 앓게 되면서부터다. 이후 남편은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렸다. 중학교에 다니던 딸은 가출해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돼서 돌아왔다. 남편은 한 요양시설에 맡겨져 있다.

현재 이 씨 가족에겐 매달 쌀 20kg과 생활보조금 30만 원이 지원되지만 아끼고 아껴도 끼니조차 제대로 잇기 힘들다. 이들에게 겨울은 또 다른 고통이다. 이 씨 아들은 추우면 전신이 오그라들지만 난방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씨는 본보,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푸르메재단이 함께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을 펼친다는 소식을 듣고 사랑의 연탄 100장을 신청했다. 이 씨는 비닐하우스 한쪽에 가지런히 쌓인 연탄을 보며 “올해는 연탄이나마 있으니 한시름 놓았다”고 말했다.

이 씨처럼 겨울이 두려운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추위는 살기(殺氣) 가득한 저승사자다. 추운 연말연시에 많은 사람은 송년회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냉골에서 혼자 겨울을 나야 하는 노인들에게 연말연시는 서글프기만 한 계절이다. 이들에게 사랑의 연탄은 사회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 사랑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사랑의 연탄 배달 접수창구에는 이 씨처럼 올겨울을 힘겹게 넘어야 할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야산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살고 있는 박정희(73) 할머니도 얼마 전 사랑의 연탄 100장을 신청했다. 박 할머니는 심한 뼈엉성증(골다공증)을 앓고 있어 식사 때를 제외하곤 거의 하루 내내 누워 지낸다. 얼기설기 지은 비닐하우스에는 황소바람이 쉴 새 없이 들이친다.

“몇 년 동안 동상 때문에 혼났어. 기름보일러가 있지만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뛰니까 겨울 내내 냉방으로 지냈거든. 지난해 봉사하러 오신 분들이 연탄보일러를 놓아줘 이나마 사는 거지.”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에서 배달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120여 명. 이들 대부분은 장애인이나 홀로 사는 노인이다. 이들에겐 조만간 100∼300장씩의 연탄이 배달될 예정이다.

성금을 보내온 ‘천사’는 현재까지 50여 명. 이들은 대부분 이름조차 밝히기를 꺼렸다. 한겨울을 냉방에서 넘겨야 하는 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5계좌(15만 원)를 기부한 권동현(34) 씨는 “한겨울에도 집에서 반팔을 입고 지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집에서도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어야 하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왜 연탄인가▼

 

“왜 하필 연탄이지?”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원기준(元基俊·44) 사무총장은 “연탄은 이웃 사랑의 새로운 아이콘”이라며 “연탄 한 장의 온기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연탄은 한겨울에 보금자리를 덥혀 줄 수 있는 가장 싼 연료다. 정부가 고시한 연탄 한 장의 가격은 186원. 연탄 대여섯 장이면 온 가족이 하루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불우 이웃들은 연탄 살 돈도 없을뿐더러 돈이 있더라도 구할 길이 막막하다. 연탄은 배달 비용이 원가를 웃돈다. 산동네라면 연탄 한 장에 배달 비용을 포함해 최소 400원은 줘야 한다.

 

더욱이 서울 지역의 경우 지난해까지 있었던 직매점 4곳이 올해는 문을 닫았다. 기름값이 급등하면서 연탄을 사용하는 저소득층 가구는 늘고 있지만 겨울철에만 반짝 돈을 만질 수 있는 막노동인 연탄 배달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연탄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연탄 나눔 운동은 불우 이웃이 따듯하게 겨울을 나길 바라는 사람들이 연탄 값을 기부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날라 거동이 불편한 불우 이웃들에게 ‘온기’를 전달한다. 이 운동이 성금이나 물품 기부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원 총장은 “자원봉사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배달한 연탄에는 정뿐만 아니라 노력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올해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은 연탄 500만 장을 1만7000여 가구에 전달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연탄 약 30만 장을 1000여 가구에 전달했다.

 

연탄 나눔 운동은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과 함께 김장김치를 전해 주고 집수리도 해 주는 등 ‘겨울나기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동아일보 2005-12-07 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