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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재활병원 지어봅시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채은하/기자]

한국에는 470만 명의 장애인이 있다.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달하는 수다. 또 매년 30만 명이 교통사고나 뇌졸중 등으로 새로 장애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국내 장애인들 가운데 140만 명은 계속 치료받아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전국에 재활병원은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과 국립재활병원, 삼육재활원, 서울재활병원 등 4개뿐이며, 전국의 155개 의원들을 합쳐도 병상이 4000여 개에 불과하다. 결국 140만 명이 4000개의 병상에 입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셈이며, 입원하기 위해서는 보통 두세 달은 기다려야 한다.

입원한 뒤에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다수의 재활병원은 5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실에 10명 이상을 입원시킬 정도로 서비스 수준이 열악하다. 이렇게 밀집된 공간에서는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을 뿐더러 정서적인 치유는 물론 제대로 된 재활 치료도 불가능하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등 치료시간은 1시간 반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를 위해 환자가 하루종일 좁은 침상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밖의 필요한 것들은 가족이나 간병인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안락한 재활병원이 우리나라에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활병원에서 진정한 재활치료가 가능한가”

 
백경학 푸르메 재단 상임이사. ⓒ프레시안

  비영리 재단인 푸르메재단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재활전문 병원 설립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상임이사는 8년 전 아내가 영국에서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고 험난한 치료기간을 거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재활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절감했다. 특히 영국이나 독일 등의 재활병원과 우리나라의 재활병원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에도 환자 중심의 쾌적한 재활전문 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총 4억 원 상당의 사재를 털어 푸르메 재단을 창립할 종잣돈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의 취지에 공감한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이 이사장으로,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와 강지원 어린이청소년포럼 대표 등이 이사로 참여하면서 명실상부한 재단의 모습이 갖춰졌다. 현재 푸르메 재단은 재활전문 병원을 설립한다는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여러가지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실제로 병원을 짓기까지는 여러가지 난관을 더 건너야 한다.

“이러한 일에 지자체가 땅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은 책임방기”

일단은 병원 부지가 문제다. 기존의 다른 재활병원과 같이 콘크리트 건물에 주차장만 있는 병원이 아니라 독일 도르트문트 재활병원이나 일본 고베의 행복촌과 같이 전원마을과 같은 병원을 짓기 위해서는 최소한 5000평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이 정도의 땅을 사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푸르메재단에서는 정부와 지자체에 재활병원 건립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실제로 60만 평 수준인 고베의 행복촌은 고베 시에서 땅을 제공했고, 의사회 등 사회단체와 정부, 지자체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베 행복촌의 안내도. 고베 행복촌(약 60만평의 부지)에는 재활병원, 가족호텔, 양로원, 공원, 온천장 등 종합복지시설이 갖춰져 있다. ⓒ일본 고베 행복촌

  이명박 서울시장은 작년 5월 푸르메재단과의 면담에서 “선진국형 민간 재활전문 병원 설립을 서울시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뒤에 서울시는 “시내에 땅이 없다”느니 “다른 민간단체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는 등의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푸르메재단은 “다른 민간단체와의 형평성 문제가 우려된다면, 우리가 지어서 건물과 땅을 지자체에 기부채납하고 운영만 우리가 맡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자체는 여전히 “땅이 없다”며 냉담한 반응이다.

백경학 상임이사는 “최근 인천시는 존스홉킨스대학 병원이나 하버드대학병원과 같은 외국의 유명대학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수만 평의 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며 “이는 푸르메재단의 재활전문 병원에 대한 태도와 대비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경기도는 서울시보다 더 호의적인 입장이 아닐까 기대한다”면서 “학교나 병원과 같은 특수 공공목적을 위해서는 그린벨트를 풀 수 있다는 규정도 있는 만큼 서울시나 인천시, 경기도 등 지자체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기부 필요해…스스로에게도 큰 도움 될 것”

운영기금의 문제도 있다.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재활병원도 적자가 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게다가 현재 한국에서 재활치료도 받지 못한 채 장애로 힘겹게 살고 있는 이들의 상당수는 경제적 극빈층에 속하기 때문에 이들까지 치료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민간단체의 재정후원이 필수적이다.

백경학 상임이사는 “운영자금의 10~20%만 기부로 들어와도 무리없는 운영이 가능하다”면서, 특히 기업들에 대해 “현재 대학 캠퍼스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건물을 하나씩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병원 한 동씩을 지어주는 형태의 기부”를 제안하고 있다.

또 그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딸에 대한 사랑을 장애인 환자들에게 재활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재활전문 병원 건립을 지원하는 쪽으로 승화시켰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의 뮌헨버트 호수가의 재활병원은 자동차회사 BMW에서 직접 돈을 기부하고 맡아 지은 형태의 병원이다. 물론 자동차회사가 직접 장애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수의 장애인이 교통사고로 인해 생겨나는만큼, 자신이 생산한 제품으로 인해 생겨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진다는 태도인 것이다.

백 이사는 “우리나라의 자동차회사에 대해서도 이런 방식의 기부를 제안하고 있으며, 이것은 기업의 이미지 고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민간 재활병원인 <메디안 클리닉>의 전경 모습. 이 건물의 내부에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로비에는 미용실과 옷 가게가 들어서 있다. ⓒ경민대 조승래 교수

  환경이 장애를 만든다

현재 우리나라는 10명 중 1명이 장애인인데도 이들의 재활치료를 거의 방치하고 있다. 그나마 돈이 있는 이들은 외국으로 떠나고 경제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이들은 집안에만 갇혀 지내거나, 사실상 감금시설이자 폭행과 비리 문제가 종종 불거지는 재활원에서 지내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의 재활시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환경만 제대로 갖춰지면 장애인도 정상인과 다름없는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결국 장애는 병과 사고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만드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재활 시스템의 문제는 장애인도 보다 수준 높은 생활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우리 사회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 연유한다. 그 책임은 정부와 기업, 민간단체 모두에게 있다. 푸르메재단의 재활전문 병원 설립 사업은 이처럼 열악한 국내 장애인 생활환경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의미 있는 실험으로 보인다.

2006-2-21 채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