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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일본 오사카 장애인 복지시설 연수 [월간조선] 2006년 5월호

[르포] 日本 오사카 장애인 복지시설

장애인과「더불어 사는 사회」는 일본에서도 까마득한 꿈이었다

그래도 區마다 장애인 재활병원이 하나씩 있는 일본의 장애인 복지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 있었다.

高廷旭 작가

이 글을 쓴 고정욱은 성균관大 국문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애로 인해 소망했던 의대 입학이 좌절되었지만 문학을 공부하면서더 큰 보람을 찾았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최근에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일본 장애인들의 삶을 구경하러 나서다

재활병원 내부 작업치료실.

지난 2월20일, 「푸르메 재단」(www. purme.org)이 주관하는 일본 재활시설 연수단에 합류해 4박5일간 일본 오사카(大阪)를 방문했다.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을 위한 연수로 대한항공과 「요넥스 코리」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말로만 듣던 기업의 사회적 공헌 혜택을 나도 받게 된 셈이다. 그동안 만나 왔던 일본 장애인들의 삶이 궁금했다.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오사카의 봄비를 맞으며 간사이(關西) 공항에 내린 우리는 지하철로 목적지인 다이고쿠(大國)역 부근의 장애인 생활지원센터를 찾아갔다. 우리 일행은 11명으로, 김진희 절단장애인협회 회장 등과 함께 공항에서부터 도심지까지 전철을 갈아타며 갔는데 휠체어 장애인인 나에겐 즐거운 경험이었다.

비를 맞으며 도착한 센터는 50평 남짓한 작은 대지에 3층으로 올린 건물이었다. 복지관 3층에 짐을 푼 우리 일행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피스클럽」을 견학하기로 했다.

보행이 가능한 사람들은 걸어가고, 나는 휠체어 리프트가 달린 작은 승용차에 올랐다. 우리의 장애인용 콜택시보다 좀 작은 승합차인데, 리프트가 간단한 원리로 장착되어 있고, 두 명의 휠체어 장애인이 탈 수 있다.

피스클럽은 장애인의 그룹홈과 작업장, 빵집 등의 시설이 어우러진 일종의 복지관이다. 일본의 장애인들은 국가에서 지급된 연금으로 자신을 도와줄 자원 활동가를 고용해서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도움을 받는다. 무료 봉사가 아니라 유료 고용인 셈이다.

장애인 온천 시설

고베 행복촌 전경.

  인상적이었던 건 장애인의 온천 시설이었다. 마침 중증 여성 장애인이 목욕을 마치고 나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자원활동가 여성이 옷을 입혀 주고, 머리를 빗긴 뒤 신발을 신겨 주었다.

함께 간 일행들은 그 온천 시설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온천 시설을 복지관 건물에 지어서 과연 얼마나 이용의 효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그 예산을 동네 온천과 목욕탕에 지원해 장애인 시설을 설치하도록 한다면, 더 많은 장애인들이 집 가까이에서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나중에 그곳 관계자에게 물어본 결과, 하루에 30여 명의 장애인이 피스클럽을 이용하며, 낮 시간 동안 돌봐주어야 하는 주간보호 대상자가 20여 명, 목도리를 짜는 등 작업하는 장애인이 5명이라고 했다.

피스클럽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직원은 15명이고, 모두 非장애인이었다. 건물을 지은 투자비와 직원의 인건비를 따져본다면 효율성이 정말 떨어진다. 몇몇 장애인을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날 저녁식사 시간에 우리 일행은 일본 전통酒(주)인 청주를 선물로 받았다. 우리는 한국에서처럼 청주를 주전자에 넣어 데웠다. 그러자 우리의 이번 연수 호스트 격인 장년의 가케구보(姉久保)씨가 고개를 저었다.

이 청주는 알코올 도수가 35도여서 데워 마시면 금세 취한다는 거였다.

말은 그렇게 하고 가장 먼저 한 컵 따라 마신 사람은 그였다. 우리는 문제의 청주를 마시며 주문한 도시락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장애」라는 공통의 화제로 모인 우리들의 대화는 활기찼다. 이렇게 공감대는 사람을 금세 가깝게 한다.

의수족 제조회사 방문

만주사변 당시 부상당한 일본군 장병에게 天皇이 하사한 의족.

다음날인 2월21일 다행히 비가 갰다. 오사카에서 봄비를 맞은 우리들은 아침 일찍 가와무라(川村) 보장구 회사를 방문했다. 우리는 여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각종 휠체어와 장애인용 변기, 편의시설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부터 구경했다.

이 회사의 主力(주력)상품은 보장구가 아니다. 재활이 필요한 장애인의 義手足(의수족)을 만드는 회사이다. 우리나라는 의수족 제작이 대부분 수공업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보장구 회사는 체계적인 분업으로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한다. 환자의 체형에 맞게 본을 뜨고 의수족을 제작한다. 나는 낯익은 사진을 한 장 발견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중 코뼈가 부러진 김태형 선수가 타이거 마스크처럼 생긴 안면보호대를 쓰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곳에서 김태형 선수의 얼굴 본을 떠서 보호대를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안경을 옷에 맞춰 골라서 쓰듯이, 휠체어나 보장구도 패션 감각 있게 만든다고 한다. 형형색색의 보장구들, 심지어는 노인들이 짚는 단장조차도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했다.

의족의 역사를 보여 주는 전시실에서 만주사변 때 天皇(천황)이 다친 일본군 장병에게 하사한 의족을 보았다. 인상적이었다. 그 장병이 하사품을 쓰지 않고 보관하다가 기증했다. 이 회사 매출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부터 눈덩이처럼 커졌다고 한다.

장애인만 일하는 회사는 인간적인가?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는 필자.

  점심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오후 2시에 「니센뉴크리에이션」이라는 회사에 도착했다.

「일본생명」이 자본금 1억 엔을 전액 출자한 子회사이다. 일본의 장애인 고용법은 50명 이상의 기업이면 장애인을 1.8% 이상 고용하게 되어 있다. 니센뉴크리에이션은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해 만든 회사이다. 현재 56명의 중증 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이 회사에 들어서면서부터 강한 반발심이 생겨나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회사 대표는 브리핑에서 자신들이 장애인 고용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설명했다. 우리 일행은 대부분 감동을 받는 눈치였다.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회사는 끔찍한 곳이다. 그들은 장애인 직원을 채용해 정년을 보장하며 일할 수 있게 한다지만, 이곳의 중증 장애인들은 평생 장애인들끼리만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정 고용률은 맞췄을지 모르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회사를 둘러보면서 나의 반발은 이내 슬픔으로 변했다.

50여 명의 중증 장애인들이 맡은 작업은 1500만 명의 일본생명 가입자들의 전·출입 신고서를 전산망에 입력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들도 이사 갈 때마다 보험회사에 신고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을 이 회사가 도맡아 하는 것이었다.

상상해 보라, 일년 내내 아니, 평생을 가입자의 옛 주소를 지우고 새 주소를 입력하는 일만 해야 하는 신세를….

복지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도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隔離(격리)이고 施惠(시혜)였다. 人材 육성을 표방한다지만 그 장애인 人材는 단순 사무직 혹은 노무직일 뿐이었다.

장애인 용품, 색상과 디자인 다양해

가와무라 義肢(의지) 공장.

장애가 있어도 편의시설을 갖추고 보장구를 제대로 사용하면 장애를 느끼지 않는 법이다. 나 같은 휠체어 장애인은 일본생명에서 일할 수 있겠지만 결국 크게 성장은 못 한다는 얘기다.

다음날 우리는 오사카 港(항) 부근의 「에이지리스 센터」를 방문했다.

일본은 세계적인 고령화 사회이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으니 일본은 고령화 면에서 우리에게 他山之石(타산지석)이다.

「나이를 잊는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이 센터는 한마디로 장애인 보장구 전시장이었다. 600평 규모의 전시장에전시된 각종 보장구가 우리를 맞았다. 인간의 삶은 非장애인으로 태어났다가 늙으면서 장애인이 되어 마감하게 된다.

고령자를 위한 휠체어가 인상적이었다. 언덕을 오를 때는 전동으로 움직여 힘들이지 않아도 굴러가고, 내려올 때는 모터의 힘으로 엔진 브레이크가 걸린다. 휠체어의 가격은 28만 엔. 90%는 건강보험에서 지급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공단에서 휠체어 구매 시 일괄적으로 38만원을 지원해 준다. 이곳에서는 한 달에 2만 엔만 내면 휠체어를 빌려 주는데, 빌리는 가격의 90%를 보험회사에서 부담해 사용자는 2000엔만 내면 된다고 한다.

일본은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고령화 사회이다. 그러다 보니 관련 시장이 거대하게 형성돼 있다. 장애인 용품 시장의 경쟁이 심해 기능의 우열은 거의 없고, 색상과 디자인에서 차이가 나는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장애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시장이 작은 탓도 있지만, 인식이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무슨 패션이며, 미적 감각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오사카市 24개 각區마다 병원 1개씩

행복촌 내 재활병원

그날 오후에는 「남오사카 療育院(요육원)」이라는 곳을 방문했다. 푸르메 재단이 꿈꾸는 재활전문병원이었다. 이 병원이 생기게 된 것은 뇌성마비 환자들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과거 일본에서 뇌성마비 장애아들은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 없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죽을 때까지 장애인 수용 시설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치료하면서 이들이 가족과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재활전문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는 거였다.

예약시간에 맞춰 뇌성마비 장애아들이 부모의 손에 의해 휠체어를 탄 채 물리치료실로 꼬리를 물고 가는 걸 보며, 소아마비에 걸린 나를 업고 용하다는 곳은 어디든 찾아갔던 나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 병원은 현재 증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병원 관계자는 『병실에 온돌을 놓는 건 예산의 제한을 받는 국립병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자랑했다.

놀랍게도 오사카에 이런 규모의 어린이 재활전문병원이 세 군데나 있으며, 오사카市 24개 區에 각 1개씩 재활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가까운 재활병원에 다닐 수 있고, 어린이들은 세 특수병원에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

대학병원 부속 재활병원이 만년 적자이고, 그나마 정해진 기간 이상 이용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가케구보氏는 센터로 돌아오는 차를 운전하면서 통역을 통해 『내일 방문할 예정인 고베(神戶) 「행복촌」 같은 곳에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느냐』고 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그렇게 먼 곳에 뚝 떨어져 모여 사는 것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과 같아 맞장구를 쳤다. 장애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은 非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다.

유럽의 전원도시 같은 고베의 「행복촌」

오사카의 한 자립지원센터.

다음날 우리 일행은 장애인 직원이 빵을 만드는 클라라 빵집을 견학한 뒤 곧바로 고베의 행복촌으로 이동했다. 고베의 중심 산노미야(三宮)에서 휠체어 장애인도 편리하게 오를 수 있는 저상버스를 타 보았다.

의자 두 개를 접으면 휠체어 고정석이 되었다. 안전벨트로 단단하게 고정하니 참으로 오랜만에 버스를 타는 즐거운 경험―그것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을 하게 되었다.

해질 무렵 도착한 행복촌은 고베市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다. 60여만 평에 달하는 행복촌은 녹지대에 있어서 붉은 지붕과 하얀 벽이 마치 유럽의 어느 전원도시에 온 것만 같았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게 만든 곳이었다.

잔디공원·골프장·운동장 등은 물론이고, 스포츠·레크리에이션·숙박·온천 시설들이 가득 들어차 진정한 휴양이 뭔지 보여 줄 기세였다.

1977년 고베 시장은 유럽의 복지타운을 보고 와서 이곳에 이런 시설을 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1988년에 개장한 이 시설은 장애인·고령자를 위한 사회복지시설은 물론이고, 재활병원까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을 연결한 버스에는 온통 노인들뿐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우리 일행은 버스 안에 앉아 있기가 곤혹스러웠다. 간혹 양보를 하면 자신은 곧 내린다며 자리에 앉길 거부하는, 몸은 늙었으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이 종종 보였다.

그날 저녁 들른 온천에서는 관리인 아낙이 남탕을 스스럼없이 드나들어 일행들을 놀라게 했다.

일정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우리는 행복촌 안에 위치한 고베 재활병원을 찾았다. 180개 병상 규모의 병원은 60병상씩 3개 층에 나뉘어 있었다. 시설은 뇌졸중과 뇌경색 환자 중심이었다.

이 병원에 오는 사람은 급성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한 달 정도 치료를 받고 퇴원한 사람들이다. 집으로 돌아가 생활할 만큼 재활 훈련이나 치료가 되지 않은 환자들이 머물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워 나간다.

이 병원에서 3개월 정도 지내면 집에 돌아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220여 명의 직원과 간호사 70여 명이 환자들을 돕고 있었다. 엄청난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셈이다.

「양극화 해소」를 약속한 우리 정부

일정 관계로 다른 수많은 시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고베 시내로 나와 간사이(關西)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고베의 행복촌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의문점을 던졌다. 연간 200만 명이 드나들어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큰 기쁨을 준다는 행복촌이었지만, 「이런 시설이 일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과 가까이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넓고 쾌적하다면 멀리 있는 불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 세상에 代價(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오사카市가 區마다 갖고 있다는 재활전문병원이 우리나라에는 단 한 곳도 없다. 일본과 한국의 복지는 아직 비교할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에 많이 부끄러웠다.

연수차 들른 일본의 복지시설들은 다가올 4월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랜 경제난을 겪어 오고 있는 일본의 사회복지 체계가 이때 많이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장애인 관련 예산이 축소되어 개개인에게 돌아오는 지원금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역시 오랜 경제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어떤 양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전개될지 五里霧中(오리무중) 같아 보인다.

간사이 공항에서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일본으로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高선생의 휠체어가 상당히 세련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에 와서 보니 高선생 휠체어가 낡아 보입니다』●

 

월간조선 2006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