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재활환자는 140만명인데 갈 병원이 없어요 [주간조선]2006-07-04

 재활전문병원 건립 위해 뛰는 백경학 푸르메재단 이사
전국에 재활전문병원 5개, 병상은 4000개 뿐… 부인의 교통사고 보상금 10억원 기부

 

교통사고나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장애인을 위한 재활전문병원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이 있다. 푸르메재단의 백경학(43) 상임이사가 그 주인공.

 

최근 그는 큰 결단을 하나 내렸다. 영국에서 당한 자동차 사고로 왼쪽 다리를 절단한 부인 황혜경(41)씨가 받은 보상금 10억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보상금은 1998년 자동차 사고 뒤 오랜 소송 끝에 8년 만에 받은 돈이다. 물론 아내와 함께 의기투합한 결과다. 백씨는 이에 앞서 자신이 대표로 있던 사업체 옥토버페스트의 지분(2억5000만원 상당)도 몽땅 재단에 기부했다. 남에게 기부하라고 하기 전에 먼저 내 지갑부터 열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백씨는 요즘 기부금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대학병원이나 민간병원에 찾아가 강연도 하고, 기업체를 방문해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백씨가 재활병원 설립이란 목표를 세운 것은 아내의 치료 과정에서 우리나라 재활병원의 열악한 환경을 체험하고 나서였다.

 

“명색이 경제규모 세계 11위라는 우리나라에 재활전문병원이 전국에 5개밖에 없어요. 반면 환자는 넘쳐나요. 우리나라에선 재활환자가 매년 30만명 발생합니다. 이 중 후천성 환자가 90%입니다. 후천성 환자는 뇌졸중과 같은 질병,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로 주로 발생합니다. 현재 국내에 140만명의 장애인이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입니다. 하지만 전국의 의원까지 합쳐도 병상은 고작 4000개입니다. 4000개의 병상을 놓고 싸우는 형국입니다. 돈 많은 환자는 외국으로 가기도 하고, 심지어 이민을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민 환자들은 입원해 제대로 치료를 받으려면 두세 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백씨는 “우리나라 재활병원이 부족한 까닭은 적자 때문에 대학병원이나 민간병원에서 재활병동 운영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활병원에 관심을 갖게 된 백씨의 사연을 알면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역시 평범한 삶을 살다가 느닷없이 장애인 가족이 된 것이다.

 

백씨는 연세대 사학과 졸업 후 CBS 기자를 하다가 언론재단의 장학금으로 1996년 독일로 유학을 갔다. 2년간 유학생활 후 복직하기 전 잠시 영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글래스고우 거리에서 아내와 함께 차에서 막 내렸을 때 갑자기 가해자의 차가 두 사람을 덮친 것이다. 그 때가 1998년 6월이었다.

 

두 사람 모두 병원에 실려갔다. 아내가 더 심하게 다쳤다. 의료진으로부터 “부인은 출혈이 많아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을 땐 참담한 심정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내는 3번의 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왼쪽 다리는 이미 절단된 뒤였다. 의사가 서울까지 장기 비행을 할 수 없다고 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간 더 독일에 머물면서 아내의 치료를 계속했다.

 

귀국 당시 ‘재활 병원 시스템이 좋은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 왜 돌아왔느냐’는 말을 들었을 땐 우리나라의 환경을 제대로 모를 때였다. 하지만 이내 한국의 재활환경이 후진국 수준으로 열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국내에 재활병원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유명 재단을 찾아가 재활병원 설립을 권유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재활병원을 짓겠다고 나서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직접 돈을 벌어서 재활병원을 설립하자.” 생각을 바꾸니 다시 인생의 궤도가 바뀌었다. 그가 생각해낸 사업은 독일 하우스맥주(가게에서 직접 양조한 맥주) 전문점. 마침 국내 법이 바뀌어 하우스맥주를 시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 유학시절 양조학을 공부하던 유학생과 사귄 인연도 작용했다. 그 유학생을 기술이사로 영입해 본격적으로 맥주전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귀국 후 다시 시작한 기자직(동아일보)을 2001년 12월에 그만두고, 맥주집 설립에 착수했다. 친구 등 58명의 주주로부터 21억원을 마련, 서울 강남에 옥토버페스트란 상호의 맥주전문점을 2002년 7월에 오픈했다. 남의 돈으로 장사를 시작했으니 처음엔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다행히 사업이 잘 되어 서울 종로에 2호점을 낼 정도가 되었다.

 

백씨는 맥주집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후배에게 대표직을 물려주고 병원 설립을 위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5월 드디어 재단을 설립했다. 김성수 성공회대학 총장이 이사장, 강지원 변호사, 김성구 샘터사 사장 등이 이사로 참여했다.

 

“재단의 1차 목표는 2009년까지 50병상 규모의 재활전문병원을 착공하는 것입니다. 부지를 제외하고 150억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이어 2012년까지 330억원 정도를 들여서 150병상 규모의 병원을 세운다는 2차 목표도 세워두었습니다. 병원부지는 지방자치단체 등을 설득해 마련할 생각입니다.”

 

대학병원도 적자 때문에 운영을 꺼려한다면 설사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병원을 세워도 운영이 어렵지 않을까. 백씨는 재활병원 같은 특수병원이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특수목적의 병원은 정부가 일정 부분 지원할 수 있도록 의료법이 개정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한다는 차원에서 재활병원에 대해 지원을 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일반인도 참여해야 합니다. 가령 1만명이 한 달에 2만원씩만 기부해도 연간 24억원이 됩니다.”

 

좀더 장기적이고 큰 목표는 독일과 일본 등 선진국에 있는 ‘재활마을’ 같은 대규모 재활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벤치마킹하는 대상은 우선 일본 고베시에 있는 ‘행복촌’이다. 60만평 규모의 행복촌은 병원뿐 아니라 노인시설 등이 들어선 대규모 타운이다. 이곳은 일본에서도 명소가 되어서 연간 200만명이 방문하며, 대기업 사원들의 연수 시설로도 활용되고 있다. 기업체 신입사원은 이곳에서 연수를 받으며, 장애인에 대한 자원봉사도 한다. 또 독일 베를린시에 있는 재활센터에는 병원, 학교 등 대형 건물만 60여개 동이 있고, 장애인 2000여명이 살고 있다.

 

백씨는 “재활병원 설립이란 새로운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은 가족에게 닥친 불행한 사고의 충격을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저에게도 불행은 그저 남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불행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저에게, 또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저도 남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피해보상을 오랫동안 받지 못한 것도 힘들었지만, 가해자 측으로부터 미안하다는 소리 한번 듣지 못한 것에 정말 화가 치밀었죠.”

 

백씨는 “가해자를 용서하기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용서하기로 했다”면서 “그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아내의 심적 고통은 더욱 컸습니다. 아내는 늘 ‘왜 이런 불행이 나한테 닥쳤냐’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다가 ‘나한테도 불행이 올 수 있다’고 받아들이더군요. 그 이후엔 심적 안정을 찾았습니다.”

 

백씨는 매일 “앞으로 병원도 설립하고, 병원운영도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고 다짐한다. “우리가 성공해야 정부나 지자체가 나설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더욱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거산 주간조선 차장(bigm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