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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유럽재활은 맞춤형-기획연재

[기획연재 ①] 유럽 재활은 맞춤형!
 

본격적인 작업장을 갖추고 ‘집중 재활훈련’ 벌이는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의 재활병원들

<한겨레21>은 푸르메재단과 공동 기획으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과 일본의 재활병원과 통합학교, 장애인 작업장 등을 둘러본다. 푸르메재단은 재활병원 건립을 목표로 하는 민간기구다. 이 기획에는 장애아동을 한 학년에 2명씩 받아들이고 있는 대안학교 이우학원 관계자, 재활의학과 전문의, 건축가 등이 함께 참여했다. 첫 회 재활병원과 요양시설, 2회 장애인학교, 3회 장애인 작업장, 4회 일본 장애인 복지시설 순으로 기획 연재된다. 편집자

 

선진 장애인복지시설을 가다 ①

▣ 클로스터노이부르크·취리히·회엔리트·벨리콘=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여름에 피서하러 은행 간다는 건 중국 대륙을 넘어가니 웃겨진다. 유럽의 건물에는 에어컨이 없다. 한국에 불볕더위가 온 날 독일 뮌헨도 마찬가지였다. 5월 초 25도를 오르내렸다.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햇빛을 차단하고 문을 열면 끝”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지구 온난화로…”라는 뒤숭숭한 반격에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뒷문을 열면 더 시원하니까요”라고 답한다. 창 안이 아닌 창 밖에 햇빛을 열고 닫는 블라인드가 있다. 그 블라인드가 드리운 창은 보통 한 키를 넘는다. 에어컨은 쉬운 방법이다. 햇살에 맞게 빛을 들이고 막고 바람에 맞게 창과 문을 열고 닫는다. 귀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집 안에 끌어들인 지상의 바람은 송풍, 냉풍, 환기로 ‘설정’된 에어컨 바람보다 다양하다. 그리고 웬일인지 전기가 일으키는 ‘기술’의 바람보다 자연의 바람이 더 시원하다.


△ 오스트리아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재활병원, 환자들이 수영장 풀에서 몸을 움직이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재활병원은 ‘설정형’이 아니라 ‘맞춤형’ 재활을 실시한다. 유럽의 재활병원에서는 무수한 상황에 대처하도록 인간을 이끄는 다양한 방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물론 놀랍고 비싼 장비들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일궈내는 끈기가 더욱 인상적이다. 그 바탕에는 배려가 흐르고 있다.

오스트리아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재활병원(Rehabilitationszentrum Weisser Hof), 부원장 마크 라이문트의 안내로 병실에 들어섰다. 병실은 오후 2시의 햇빛을 싸안듯이 90도 각도로 놓여 있다. 간호실에서 가까운 데에 더 위급한 환자가 배치되며 그에 따라 방도 1인1실, 2인1실 순으로 놓여 있다. 각 병실에서 화장실로 가는 중간에는 옆 병실과 연결되는 문이 놓여 있는데 그 문들이 일렬로 열리면 사통팔달이 된다. 돌보는 사람이 쉽게 다른 방의 기척을 알아차려 바로 들여다볼 수 있다.

목욕에 미친 것은 아닐까

병실에 따로 샤워실이 있지만 병실을 잇는 복도 한편에 공용 욕실이 있다. 혼자서 샤워를 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한 곳인데, 도움을 받으며 목욕을 ‘연습’한다. “10명 중 1명꼴로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해야 한다”고 라이문트 부원장은 말한다. 결국 이 공용 욕실은 10분의 1을 위한 시설인 셈이다.

공용 욕실의 옆방을 열면 목욕 도구의 ‘황홀한 장관’이 펼쳐진다. 물이 잘 빠지도록 가운데가 뚫린 휠체어용 목욕 도구가 콩나물 교실의 의자처럼 빽빽하게 놓였고, 목을 못 가누는 환자를 위한 지지대가 있는 휠체어용 도구가 여러 개 한쪽에 놓여 있으며, 다른 쪽에는 일어서지 못하는 환자를 목욕시킬 수 있는 침대용 도구가 놓여 있다. 이 각종 도구들이 15평쯤 되는 방에 가득하다. 각 방 샤워실에 공용 목욕실, 그리고 한 방 가득한 목욕 도구까지, 혹시 ‘이 사람들은 목욕에 미친 건 아닐까’. 그런데 이들이 ‘미친’ 것은 목욕뿐만이 아니다.

재활병원에는 수술을 한 뒤의 환자들이 모인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재활병원은 간단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실을 갖추고 있지만 일반적인 재활병원은 일상 과정의 복귀를 돕는 치료를 주로 한다. 새로운 몸을 갖게 된 경우는 거기에 맞춰서 생활방식을 익혀야 한다. 그래서 재활병원에는 재활에 필요하다고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물리치료실과 음악치료실, 심리치료실 외에도 요리 연습을 하는 부엌, 세탁 연습을 하는 세탁실 등이 ‘실제 그대로’ 갖춰져 있다. 이렇게 요리하고 식사하고 옷을 입는 등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신경, 근육 훈련을 하는 것을 작업치료(Ergotherapie·occupational therapy)라고 부른다.


△ 독일 회엔리트 재활병원에서 환자들이 심장 박동수를 체크하기 위해 사이클을 타고 있다.

 

둘러본 병원에서는 작업치료를 강화해 ‘재활훈련’ 성격의 집중적인 ‘일터 복귀 작업’까지 이뤄진다. 스위스 벨리콘 재활병원(Rehaklinik Belikon)의 작업치료실은 ‘끝이 어디야’란 생각이 들 정도로 넓다. 경사진 곳에 위치해 있어 지하 1층의 한 면에 빛이 들지 않는데, 그 면의 중간중간에 하늘로 낸 공간을 심어 어둡다는 느낌이 전혀 없게 만들었다. 이 층에 금속작업장, 목재작업장, 선반작업장, 컴퓨터작업장 등이 들어서 있다. 안내를 하던 마케팅 책임자 카를레스 로메오 코벨트는 “축구를 하던 사람이 다쳐서 그만두어야 할 때 컴퓨터 재활 교육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스템이다. 매일 시간을 정해서 교육을 하고 퇴원한 뒤에도 오전에 출근하고 오후에 와서 교육을 받기도 한다”고 말한다. 배관공, 벽돌공, 전기공 등을 위해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작업치료실도 있다. 이곳에서 사다리를 올라가 못을 박거나 형광등을 가는 작업을 연습하고, 음료수 상자를 들어보고 어떤 연습이 더 필요한지를 체크한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1층에는 금속작업장, 목재작업장, 선반작업장이 있고 금속작업장의 한켠에 대장간이 있다. 본격적으로 쇠를 두들기고 있는 레오 하예크(53)를 보고는 “직업이 대장장이인가요?”라고 물을 뻔했다. 그는 중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30년 전에 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절단했는데 의족을 교환하러 온 것이었다. “7년마다 의족을 교환하는데 때가 되어 맞추러 왔다. 여기 온 지 3주일이 됐다. 발은 오늘 처음 맞춰보았다. 발이 완성되면 이 위에 일반 다리처럼 덧씌운다. 여기에 일주일가량 훈련하면서 조이고 맞춘다.”

취리히 인근의 취리히의과대학 아동재활과 부속 소아재활병원(Rehabilitationszentrum von Kinderspital Zurich)에는 학교가 병원 내에 있다. 2~3주 길게는 1년까지 병원에서 지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한 조치다.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교실에는 3명의 학생에 2명의 선생님이 거의 1대1 학습을 하고 있었다. 기숙사도 있다. 사고로 신체장애가 생겨서 같이 사는 게 문제가 없는 청소년이 간호사와 병동 관리사의 결정 아래 입사한다. 파트리카 딜 의사는 “호전되고 있는 환자에게 일상적인 생활은 호전을 가속시킨다”고 말한다. 잠깐, 이 병원은 퇴원하는 환자를 위한 ‘깜찍한’ 의식이 있다. 맨 위층의 의과사무실에는 난데없는 줄이 하나 길게 내려와 있다. 그걸 흔들자 멀리서 아련하게 종소리가 퍼졌다. “종쳤다. 나는 퇴원한다.”

병원 안에 학교와 기숙사까지

스위스 벨리콘에는 뇌졸중이나 뇌손상 뒤 논리 훈련을 하는 연습실이 있다. 방에는 집짓는 도구가 있고 그 앞 책상에 집짓는 과정에 관한 자료가 놓여 있다. 송우현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한국에서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천을 하지 못하는 일”이라며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니 치료사가 함께 해야 한다. 작업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인력, 시간, 공간이 갖춰져야 실현되는 일이다”고 덧붙였다.

△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재활병원에 마련된 대장간에서 의족 착용감을 시험하고 있다는 레오 하예크(오른쪽).

 

재활의 과정은 길고 지난하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재활병원에 입원한 쿼트(21)는 오토바이 사고로 척추를 다쳤다. 지금은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사고 당시에는 전신마비였다. 사고가 나고 수술을 한 뒤 입원한 것이 지난해 10월. 그는 올 8, 9월까지 입원해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후에는 집에서 통원치료를 한다. 입원 기간만 거의 1년이다. 한국인의 몸이나 유럽인의 몸이나 재활 속도는 엇비슷할 텐데 한국에서2002~2004년 3년간 뇌손상과 척수손상 재활의학 환자의 평균 입원기간은 2개월에 못 미친다(국립재활원 자료).

이런 유럽의 재활병원에서 민간보험은 큰 역할을 한다. 민간보험 쪽에서 ‘유럽도 국가 대신에 민간의 보험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압력성’ 보고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사실 방문한 병원들이 모두 보험회사가 운영한다는 말을 듣고는 당황스러웠다. 독일 회엔리트 재활병원은 연금보험회사의 자매회사가 운영하며 최고책임자인 원장은 경영 일을 해온 최고경영자(CEO)다. 스위스 최대의 재활병원인 벨리콘은 상해보험회사 SUVA가 운영하는 곳으로 변호사 출신의 CEO를 정점으로 의료진과 보험 산정 파트가 병원 인력을 구성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재활병원도 일반사고 보험회사 AUVA가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 민간보험회사가 의료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오래됐다. 예를 들어 독일의 산재보험은 1884년 세계 최초로 생겨났는데 산업, 농업, 공공 부문으로 나뉘어 기업들의 연맹 형태로 운영된다. 국가는 감시만을 할 뿐이다. 독일의 법정보험 역시 민간보험회사가 대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보험회사의 운영 방침은 보험의 ‘원초적’ 성격에 충실하다. 둘러본 병원을 소유한 보험회사들은 ‘보험’이라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100년(AUVA), 90년(SUVA) 전에 생겼으며 그 속내를 들여다봐도 영리 추구적인 성격보다는 사회부조의 성격을 더 많이 볼 수 있다(상자기사 참조).

 

재활 잘하면 3배 이익

일단 보험 내로 들어오면 대우는 평등하다. 재해사고를 전담하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라이문트 부원장은 “환자가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사고 환자는 1일 360유로인 비용을 전혀 내지 않는다. 라이문트 부원장은 “혹시 시설이 좋아 올 사람이 줄을 선 것은 아닌가”라는 칭찬에 “오스트리아에서는 전국적으로 이런 환자가 한 해 600명 정도 발생한다. 병상 200개의 클로스터노이부르크는 비슷한 규모의 병원 2곳과 함께 이 모든 환자를 책임진다”고 별것 아닌 듯이 ‘자랑’했다. 그는 “1인실, 2인실에 드는 것은 순전히 장애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며 “1인실은 간호사실 가까이 놓여 있는데, 장애 정도가 크면 1인실에 입원하게 된다”고 말한다.

스위스 벨리콘 재활병원의 마케팅책임자 코벨트는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보험회사라도 재활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며 그 이유를 연구 보고서를 인용해 설명해주었다. SUVA의 지원을 받아 장 마르크 C. 등이 2006년 진행한 파일럿 스터디(정식 논문 발표 전 하는 중간 발표·<저널 오브 트라우마> 61호, ‘주요 재해에 관한 경제 비용 연구: 결과적 비용이 의료 비용을 훨씬 초과한다’)에 따르면 재활 투자로 얻는 이익은 재활 투자를 하지 않았을 때의 3배다. 재활이 충분하지 않아 일선에 복귀하지 못할 경우 보험회사는 연금을 지불해야 한다. 재활에 든 비용은 그 당시에는 많아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찰 결과 이 연금을 지불하는 데 든 비용보다 훨씬 적었던 것이다.

중요한 건 에어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잘된 건축은 집을 통째로 에어컨으로 만든다. 지상의 바람은 어디든 분다. 그 바람이 가난하든 부자든 모든 집을 통과해 그 속의 사람을 시원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10년째 가격이 그대로다”

회엔리트 재활병원 아힘 쇠퍼 원장 인터뷰


△ 아힘 쇠퍼 원장

 

독일 회엔리트 재활병원은 슈타른베르크 호숫가에 자리한 남부 독일의 대표적인 재활병원이다. 호수를 따라 걷는 2km를 포함해 80만㎥(24만여 평)을 병원 부지로 확보하고 있다. 호수를 향해 가는 길에는 회의장으로 이용되는 슈로스성을 만날 수 있다. 병원 복도에서는 유채꽃이 만발한 밭을 내려다볼 수 있는 등 재활환자에게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회엔리트 병원은 40년 전 눕혀놓고 치료하던 심장병 환자를 운동시키는 심폐재활을 도입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에 이 심폐재활은 심장 관련 치료에서 일반화됐다. 병원은 심폐재활, 근골격계재활로 특화되어 있으며 정신과적 질환과 재해로 심리적인 문제를 겪는 환자들도 주요 대상이다. 병원의 실소유주는 독일연금보험회사이며 병원은 연금보험사의 자매회사가 유한회사로 운영한다. 1년 매출은 3200만유로로 480개의 병상을 갖추고 있다. 아힘 쇠퍼 원장은 의사가 아닌 경영자 출신인데 그 이하 조직은 일반 병원조직과 비슷하다고 한다.

어떤 환자들이 병원을 이용하는가.

=70%는 연금보험 가입자, 30%는 일반 의료보험 가입자다. 최근에 개인이 지불하는 환자도 있는데 아랍 지역 영사관에서 소개해서 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반경 200km 내에 있는 뮌헨, 잉골슈타트 등의 대학병원, 종합병원과 협력체제를 유지한다. 이들 환자가 수술을 받은 뒤 입원한다.

 

직업이 없는 실직자의 경우는 어떤가.

=독일에서 노동자는 개인 50, 회사 50의 부담으로 4대 보험(연금보험, 의료보험, 실업자보험, 개호보험)을 들어야 한다. 실업자라고 하더라도 보험 혜택으로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다. 실업자보험의 입장에서 재활은 지출을 줄이는 방안이기 때문에 병원 비용을 지출하게 하고 있다.

 

보험회사와는 DRG(포괄수과제) 계약을 맺는가.

=1일 요금은 치료와 숙식을 포함해 115유로에서 130유로다. 환자당 요금을 정해놓으면 행정비용이 적게 든다. 거기에 추가로 요금을 받지는 않는다. 단 심장병은 예외로 초기에 적정가를 계산할 수 없어서 추가 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정도 수준에서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 요금을 10년째 올리지 않았다.

 

재정은 연금보험료로 완전히 충당되는가.

=카페테리아 운영 수익이나 슈로스성 대관료가 있지만 극히 적은 부분이다. 10년 전과 4년 전 각각 3천만유로, 4천만유로를 들여 병원 건물을 증축했는데 건설비 역시 연금회사가 지불했다. 맨 처음에 지을 때 국가에서 싼 가격으로 부지를 분양해주었고 연금회사가 건축을 했다.

 

* 도움말: 송우현(재활의학과 전문의·얀센코리아 이사)
             이준영(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후원: (주)미원상사, 법무법인 한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