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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지원없으면 통합도 없다

[기획연재 ②] 지원 없으면 통합도 없다

유럽을 통해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과 시스템 마련의 중요성을 깨닫다

▣ 이광호 이우학교 기획실장, 연구소장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선진 장애인복지시설을 가다 ②

장애인 재활시설과 통합교육을 둘러보기 위한 유럽연수를 제안받았을 때, 필자는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 개교 전부터 진행된 논쟁들이 떠올랐습니다. 장애인 통합교육을 지향해, 그것을 일부 건축에 반영하고 전형 요강을 만들었을 때부터 우리는 늘 통합교육의 ‘범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11월, 2007학년 신입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전형을 담당한 교사들이 밤샘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짐작하겠지만, 더 많은 장애학생의 입학을 허용해야 한다는 견해와, 특수교사가 없는 조건에서 담임교사가 책임질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자는 입장 사이의 논쟁이었습니다. 당위와 현실 사이의 논쟁, 장애학생 교육이 개별 교사나 학교의 책임으로 떠안겨질 때 이 논쟁은 늘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 스위스 취리히의 시립 장애인 학교에 설치돼 있는 컴퓨터 자판. 장애학생을 위해 특별히 고안됐다.

 

일반학교보다 더 나은 환경을

이번 유럽연수에서 경험한 것은, 장애인 교육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의 전환, 사회적 시스템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바이에른주 뮌헨 인근에 위치한 카리타스 장애인 작업장(Caritas Werkstatt-Laben). 186명의 장애인이 60여 명의 직원이 돌보고 가르치는 가운데 자신에게 적합한 기술을 익히고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업장은 기본적으로 장애인복지기금으로 운영되며, 기술을 익힌 장애인들이 생산한 제품들은 유명 트럭 회사(MAN)에 납품되거나 직접 판매해 임금으로 지급됐습니다. 여기에는 사회복지기금 외에 15명당 1명 이상의 장애인을 의무 고용해야 하는 장애인고용특별법 등 제도적 장치, 그리고 종교적 헌신을 바탕으로 장애인들에게 매우 숙련도 높은 작업까지 가르치는 마이스터들의 세심한 노력이 뒷받침됐을 것입니다.

스위스 취리히의 시립 장애인 학교(Schule der Stadt Zurick fur Korper und Mehrfachbehinderte). 건물 배치와 각종 시설, 기자재 등에서 장애인을 고려한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학교 운영에 관한 것들입니다. 보통 사범대학을 졸업한 교사가 3년의 추가 과정을 통해 특수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그런 만큼 일반학교 교사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교장이 직접 교사를 선발하는 등 학교 운영의 자율권을 전폭적으로 부여하고, 내부의 민주적 토론을 통해 각 학생에게 최적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장애인학교가 일반학교와 나란히 붙어 있고, 두 학교는 커다란 문으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그 문을 통해 두 학교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넘나들었습니다. 이처럼 완벽해 보이는 장애인학교에서도 점차 통합교육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었습니다. 현재 8명의 이 학교 출신 장애인들이 각기 다른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고 있으며, 장애인 학교에서는 특수교사를 한 명씩 파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애인 한 명당 특수교사 한 명씩 파견되는 셈이지요. 이는 아마도 통합교육을 조심스럽게 도입하는 스위스의 정책적 배려인 듯합니다.

통합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독일의 통합유치원, 오스트리아의 통합초등학교의 사례는 통합교육이 정착하는 단계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급당 인원 축소, 엘리베이터와 각종 시설 등 일반학교보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확보함으로써, 비장애인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가 되었답니다. 물론 특수교사와 의료 및 재활 시설을 갖추어 장애인들이 통합교육을 받으면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통합교육의 성과는 두드러질 것이고, 그런 경험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통합교육은 더욱 확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수교육법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 장애학생을 위한 보행기. 스위스 취리히의 시립 장애인 학교는 시설, 기자재 등에서 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띈다.

 

장애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 전체의 지원 시스템은 비단 장애인 교육시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국가적인 정책과 복지 시스템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스위스 국경 근처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도른비른 양로원에서, 우리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노인들을 돌보거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분명 그날은 평일이었고, 또한 우리나라의 복지시설에서 흔히 보듯 ‘시간을 때우는’ 모습들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양로원을 방문한 교사에게 확인한 결과, 그 학생들은 학교의 정규수업을 진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즉, 교육과정에 양로원과 같은 복지시설을 방문해 활동하는 교과가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오직 입시에서의 성공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현실을 떠올릴 때, 이는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 나라 고등학생의 모습 중 어느 것이 과연 그 사회의 진정한 통합과 미래 발전에 도움이 될까요? 우리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사이에도 안양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수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담임교사가 장애아동을 체벌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연합뉴스> 5월11일치).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먼 거리, 하지만 그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아득한 거리를 다녀온 듯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4월 말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조항을 보면, 우리 사회가 이미 그 해답을 발견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 법안의 내용이 현실에서 얼마만큼 실현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 의문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그에 따른 예산 편성 문제일 것입니다. 만성적인 재정 부족을 겪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예산 절감을 위해 신축 아파트 내 신설학교를 건설업자가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파트 분양가 인하를 위해 애쓰는 건설교통부는 반대의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예산 편성 등을 둘러싼 부처 간 공방 끝에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법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 전체적인 인식의 공유, 사회 전반의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역별 통합학교 선정해 집중 지원해야

장애인 교육에 과문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새로운 법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지역별로 통합학교를 선정해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유럽의 사례에서 보듯, 학급당 인원을 축소하고, 일반학교보다 더 나은 교육시설과 환경을 제공해 통합교육에 대한 비장애인의 거부감을 줄이고 통합교육의 효과를 증대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번 법안에 포함돼 있는 ‘개별화 교육’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돼야만 통합교육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교육평가 방식, 동일한 교과에 대해 교과 이수자 전원이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방법으로 성적을 산출하는 방식으로는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 모두에게 불행한 통합교육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별 학생의 수준, 발달 단계에 따른 교육목표의 제시와 그에 따른 평가, 이는 장애학생뿐 아니라 전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장애 통합교육은 우리 교육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