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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호텔 같은 병원도 넘었다

[기획연재 ③] ‘호텔 같은 병원’도 넘었다
 

바닥의 비상벨·어두운 곳 없는 지하… 세심하게 정성을 담아 ‘일상’을 구현하는 건축물들

▣ 방철린 건축그룹 칸 대표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선진 장애인복지시설을 가다 ③

 

현대사회에선 멀쩡하던 사람도 언제 어떻게 장애자가 될지 모르고 어느 누구도 장애자의 경계 밖에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의 장애자를 위한 시설, 특히 장애인학교나 장애치료 이후에 이들을 사회로 되돌려보내야 하는 재활치료 시설, 그리고 그들이 일하며 생활하는 장애인 작업장 등은 시설이나 생활환경 면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 5월 초 푸르메재단의 주선으로 독일 남부와 스위스 취리히 부근의 장애인 재활시설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이 기간 동안 얻은 건축환경 면에서 재활시설의 여러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독일 회엔리트병원 복도 중간의 홀에서 바라본 광경. 디자인 잘된 병원의 수준을 넘어서 잘 디자인된 고급 호텔 안에 치료시설이 있는 것 같다.

 

식탁에 놓인 각양각색의 의자들

 

건축 속에서 신체장애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해주기 위한 장치는 그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이들이 하루 종일 움직이면서 살아야 하는 생활공간의 구성이다. 이는 여러 사람이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곳, 특히 장애인학교같이 통일된 행동을 해야 하는 곳에서 더욱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의 필수 이동수단인 휠체어를 교실마다 두어야 할 공간이 필요하고, 화장실 등에서도 상당히 많은 면적의 공간이 딸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취리히 장애인학교에는 시설들의 배치에서부터 단위별 교실과 복도 등의 구성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흔적이 보인다. 이 학교 식당에서 특별히 눈에 띄었던 것은 식탁의 의자이다. 얼핏 보기에는 다른 종류의 의자를 몇 개 갖다놓은 것 같았다. 말하자면 같은 게 하나도 없는 장애인 개개에 맞는 맞춤형 의자인 것이다. 이 맞춤형 의자가 있기에 장애 부위가 다른 많은 학생들이 각기 몸을 가누고 앉아 있을 수 있다. 맞춤형으로 되어 있는 곳은 여기만이 아니다. 벨리콘재활병원의 병동에는 양손이 없는 환자를 위한 병실이 있다. 환자가 몸의 일부를 벽에 터치하면 문과 창문이 열리고 장비들이 움직이게 된다. 센서 장치가 벽의 곳곳에 내장돼 있는 것이다. 화상환자를 위한 병실도 있는데 환자 피부의 예민성에 대응해 병실의 온도, 습도가 별도로 자동 조절된다. 환자를 위한 대형 특별 욕실도 마련돼 있다. 욕실에는 높이와 수온을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욕조가 설치돼 있다. 이 밖에도 높이가 조절되는 작업치료실의 싱크대(취리히 장애인학교), 침대(바르타바일 요양소) 등 어떻게 하면 장애자의 불편함을 해소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만들어낸 첨단시설이 눈길을 끈다.

 

자세와 움직임이 불안정한 장애인에게는 언제 긴급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따라서 장애인 시설은 설계 때부터 보호감시의 사각지대를 가급적 줄이는 노력를 해야 한다.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급한 상황에서 구원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오스트리아 도른비른 양로원에는 바닥 가까이에 벨이 있다. 넘어졌을 때 이를 즉시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까지 안전장치를 두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조망과 자연조건을 감안한 공간 배치


△ 취리히 아동재활병원의 공동생활 공간, 벨리콘재활병원의 로비와 양팔이 없는 환자를 위한 병실의 센서, 취리히장애인학교 식당에 놓인 각양각색의 의자들.(위부터 사진/한겨레21 박승화 기자·방철린)

 

 

재활병원에서 중요한 부분이 작업치료다. 사회로 복귀하려는 장애자가 그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바로 이 작업치료의 결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활치료 시설에서 장애자의 능력을 발굴하는 일과 그 능력을 프로급으로 만들어주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벨리콘재활병원은 국내 병원과는 달리 분야별 작업치료 시설에 엄청난 면적과 시설을 투자하고 있었다. 물론 치료 관계인 수도 상응하도록 배치한다. 실제 작업현장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연습한 사람이 직장에서의 적응력이 높은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높을 것임은 자명하다. 이 작업치료 공간들은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데, 취리히재활병원에는 지하에 시설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늘 햇빛이 드는 중앙정원과 접해 있고 자연 통풍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두운 곳은 찾아볼 수 없다.

 

이번에 방문한 재활시설들은 공통적으로 병원이라기보다 호텔이나 스포츠시설과 같이 편안한 분위기, 내 집과 같은 안락함을 이용자들에게 제공한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음침하고 차가운 느낌, 오히려 병을 더 얻을 것 같은 살벌해 보이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휴양지의 호텔같이 안락하고 편안하며 어떤 걱정거리도 해소될 것 같은 분위기다. 회엔리트재활병원이나 벨리콘재활병원은 그저 호감이 가게 꾸며놓은 디자인 잘된 병원의 수준을 넘어선다. ‘호텔 같은 병원’ 정도도 넘어선다. 잘 디자인된 고급 호텔 안에 치료시설이 있는 것 같다. 나아가 건축적으로도 훌륭한 공간과 모습을 하고 있다. 취리히아동병원 재활센터의 침실은 거실, 식당을 겸비한 공동생활 공간으로 설계돼 마치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 같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편안한 마음 속에서 재활의 꿈은 더욱더 빨리 커져갈 것 같은 분위기다.

 

법만을 만족하는 형식적인 시설을 넘어

 

이 병원들의 동별 배치, 실별 배치를 보면 병원의 프로그램적 구성 개념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진입 부분에 노출된 공간, 부지의 조망 조건을 면밀히 검토한 방의 배치, 외관 구성, 자연조건을 감안한 외부 공간의 활용, 서비스의 용이성 등을 고려해 배치하고 있다. 회엔리트재활병원, 벨리콘재활병원에서는 우리나라 병원에서 지하로 보내곤 하는 식당이나 숍 등을 과감히 로비 정면 또는 로비 가까운 곳에 배치했다. 여기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은 병문안을 온 침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밝고 명랑한 호텔 로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알프스의 경치가 빼어난 알고이 베르크바트 요양소에서는 수치료를 하는 풀장이나 운동치료실 등의 전면을 모두 유리창으로 설계해 알프스의 눈을 감상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값진 요소를 그대로 살렸다.

 

대부분의 시설들은 집같이 아기자기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늘 햇빛이 들어오고 정원이 내다보이며 발코니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침실 앞에는 사진과 이름을 마치 자기 집 문패같이 부착해 긍지를 주고, 부드럽고 친근감 있는 건축 재료를 색상의 조화까지 면밀히 검토해 선정하며, 침대에 누워서도 밖을 볼 수 있는 낮은 수평 창의 설치 등에 면밀함을 보인 도른비른양로원이 돋보인다. 각 층의 모이는 공간에 도시 중심가의 사진을 크게 붙여놓았는데 일상 생활공간과 양로원을 연결해, 평소에 늘 하던 생활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외부 공간을 연계해 적극 활용한 회엔리트재활병원, 외부 공간과 발코니를 작업장마다 넣은 카리타스작업장의 공간적 배려도 눈에 띈다.

 

방문한 재활시설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들어지고 개선돼 완성도가 높아진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시설들 하나하나에 깃들인 것은 정성이다. 법만을 만족하는 최소의 형식적인 시설이 아니라 신체적 재활과 함께 정신적 건강까지 다질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필요한 핵심적 요소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항상 이를 발전시키며 또 바꾸고 있기에 이러한 좋은 시설이 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재활시설은 머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열고 재활인의 입장이 되어 이들의 마음을 가슴으로 읽고 정성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