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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내 친구 오리타 료

인공호흡기 도움으로 침대에서 생활하는 료군의 학교 생활

 

▣ 오사카= 사진 박승화 기자eyeshot@hani.co.kr
▣ 구둘래 기자anyone@hani.co.kr

오리타 료(折田凉·18)는 이케다북고 3학년 1반 학생이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루 일정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다. 전 시간 수업을 듣고 체육시간에 참여하고 버스와 전철을 이용해 집으로 온다. 지난해 단 이틀 결석할 정도로 출석률도 좋다. 좋아하는 과목은 영어,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 수식 표현이 아무래도 어렵다. 료는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증장애인이다.


△ 5교시 지리 수업 시간에는 중간고사 시험 풀이가 있었다. 옆자리에서 필기를 하는 사람은 영어 선생님이다. 선생님이 한 필기가 모니터를 통해 보인다.

료는 눈으로 대화한다. 2년 동안 같은 반인 고바야시 마사야도 그 눈빛을 안다. 마사야가 “안녕” 하고 인사하면 료의 눈은 반짝반짝인다. “처음 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말을 걸까 걱정했다. 지금은 가끔 인사할 때도 긴장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소풍도 체육대회도 다 같이 갔다. 체육대회 때는 반대항 릴레이를 했는데 료의 침대를 밀다가 몸이 따라가지 못해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소풍을 갈 때는 료가 갈 수 있도록 경사 없는 곳으로 정했다. 홋카이도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는 비행기 6좌석을 확보해 자리를 마련했다. 잼을 만들 때도 사과 따는 체험학습도 호타루 시내관광도 아이누 문화 공연도 함께했다. 마사야는 말한다. “료는 모두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해요.” 후카와 담임 선생은 “처음에는 소리가 나서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공기 같아졌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한다.

△ 텔레비전 위에 놓여 있는 료의 어린 시절 사진.

 

비가 내려 하교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침대를 비닐로 싸고 침대 발치에도 비닐을 둘렀다. 활동보조인 야마오카 에리코와 마루야마 가즈코도 비옷을 입었다. 내리막길을 에둘러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운전기사가 이동발판을 내려 침대를 버스로 올렸다. 침대를 버스에 고정시키자 기다리던 아이들이 탔다. 버스는 10분을 달려 이케다역에 도착했다. 한큐선을 타고 한 역 떨어진 미나미모리역에 도착했다. 거칠던 비가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5분 가면 집이다.

△ 어머니 오리타 미도리가 료의 손을 살짝 잡았다.

△  비가 내려 서클 활동 등이 모두 취소됐다. 버스 정류장은 하교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하지만 료가 버스를 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 버스 다음은 전철을 탄다. 침대 휠체어의 백미러 덕분에 고개도 움직일 수 없는 료가 뒤를 볼 수 있다.

 

△ 버스를 타고 가는 료. 입학할 당시에는 1대뿐이던 저상버스가 6대로 늘었다.

 

△ 료가 어머니 오리타 미도리와 활동보조인 마루야마 가즈코, 야마오카 에리코(왼쪽부터)와 포즈를 취했다.

“무엇보다, 함께하면 재밌다”

 료의 어머니 오리타 미도리 인터뷰

오리타 미도리(46)가 입은 청록색 옷을 두고 료는 오늘 복장이 너무 야하다고 타박을 한다. 활동보조인 야마오카 에리코가 재차 묻자 엄마는 검은색이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알록달록한 팔찌와 레이스 옷을 입은 오리타 미도리는 ‘싸움꾼’이다. 료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싸웠으니 지치지 않는 싸움꾼이다. 그는 1989년 오사카 요도가와 기독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아이를 둔 일곱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바쿠바쿠’(인공호흡기를 끼고 있는 아이의 부모회)의 창립 멤버이고, 98년부터 모임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바쿠바쿠’는 인공호흡기에서 나는 소리이자 세상을 ‘바꿔바꿔’나가는 모임이다. 그간 ‘호흡기를 끼고 바깥에 나가보자’는 홍보용 비디오, 관련 의료기기 등을 소개하는 <생활편리첩>을 제작하고, 매년 6회의 회보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300가족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양호학교(특수학교)에 보낼 수도 있는데 왜 일반학교에 보내고 있나.

=왜냐고 물어보면 어렵다. 우리 아이는 보통 아이다. 인공호흡기를 쓰긴 하지만. 지역학교는 지역에 사는 학생들을 위해 문을 연 것이다.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이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학습보조 교사와 간호사 등 학교에서의 지원이 놀랍다.

=“인공호흡기를 달았으니 다른 학교로…”, 병원 내 학교를 다니다 퇴원해 일반학교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기가 막혔다. 편견과 차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일반학교에 입학시키고 나서 료와 수업을 같이 듣고 등하교를 시켰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운동을 시작했다. 서명운동을 하고 지역축제을 열고 시장을 면담하고 국회의사당을 방문하고 국회의원을 만났다. 처음 2년은 다른 한 가족과 함께 운동을 했다. 주변에 이야기가 나면서 지원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결국 료가 5학년이 되던 2000년 ‘중증장애아 개호인 학교 파견 사업’이 이케다시에 생겼다.

다른 지역보다 선도적인 조치였던 건가.

=그렇다. 개호인을 파견하면서 의료행위인가 하는 문제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호흡을 하므로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하더라도 자격이 필요 없다는 의견과 중증이므로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간호사의 처치가 없어도 된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사업이 전국으로 확산된 면이 있다.

개호인이 파견되던 날, 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그전에는 선생님이 “안녕” 해도 무덤덤하던 아이가 선생님이 인사를 하니까 눈을 반짝이더라. 그전에는 엄마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존재라고 느끼다가 다른 사람도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생긴 것 같다.

등하굣길이 힘들다. 전용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소풍 갈 때 혼자 자동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료나 친구들이 직접 느낄 수가 없다. 직접 음식을 먹지 못하고 코로 튜브로 흡입해야 하지만 같이 있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같이 가는 게 재미있다. 료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친구가 그네를 보고 “어머, 료가 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잖아”라고 말하더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지내다 보면 커서도 료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을 돕지 않을까. 그 아이가 자라 만약 엘리베이터 회사에 취직했다면 “더 넓은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사람도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장애인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같이 자라났던 친구를 생각하며 더 잘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버스기사도 침대 운반을 돕는 등 지역 사회의 도움이 크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할 때는 저상버스가 1대 있었다. 인사 겸 버스회사를 찾아갔다. 버스회사에서 놀라더니, 이후 저상버스가 6대로 늘었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시행 과정에서 문제점을 찾고 시정해나가면 된다. 자립지원법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쳐나가면 되리라고 생각한다.

‘바쿠바쿠’ 모임 이름을 듣고 ‘세상을 바꿔바꿔’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정말 많은 일들을 해왔다.

=초대 회장 히라모토 히로부미의 힘이 컸다. 회장의 딸 아유미가 인공호흡기를 끼고 퇴원해서 생활한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난 뒤 우리 애도 하겠다는 전국적인 호응이 일었다. 그게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히라모토가 장암으로 죽었다. 부인이 교사고 히라모토가 개호를 하던 처지였다. 그래서 자립생활을 하는 아유미의 활동보조인이 충원되어야 하는 형편이다. 지금 월요일에 가서 아유미의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다. 아들을 개호해서는 돈을 못 버니까. (웃음) 이제 21살인 아유미는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떨어졌다. 료가 “내가 먼저 입학하고 말 거야” 벼르고 있다.

료의 대학 입학을 위해서 특별한 준비를 하나.

=얼마전 선생님을 통해서 료가 입학을 원한다는 걸 들었다. 공부를 더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료와 여행을 하고 싶다. 료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 보기를 좋아한다. 드라마 <대장금> <다모>도 보았고 영화 <웰컴 투 동막골>도 보았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보다 말았고, (웃음) <태극기 휘날리며>는 힘들어하더라. 2학기부터는 선택과목으로 한국어를 배운다고 한다. 지난해에 부산으로 가는 구간페리호를 타려고 신청했다. 여행사에 문의하니 의사 진단서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 은근슬쩍 탔으면 됐을 것을. (웃음) 한국을 거쳐 중국까지 함께 꼭 여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