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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젠 넘어져도 안울어요

이젠 넘어져도 안울어요

10세 김세진군, 의족 달고 시드니 마라톤 ‘3.8㎞ 코스’ 완주
4살 때부터 의족… 주위 편견에 유치원만 13번 옮겨
세계 장애인 수영대회 은메달… 로키산맥 오르기도

최수현 기자 / 입력 : 2007.09.27 00:57

두 다리에 의족을 달고 걷던 세진(10)이가 갑자기 넘어졌다. 옆으로 세게 굴렀지만, 함께 걷던 엄마 양정숙(38)씨는 눈도 깜짝 안 했다. “여기 아스팔트 깨진 거 봐라. 비행기 만드는 소재로 네 다리 만들었다더니, 역시 대단하네.” “우와, 내 다리 최강 무적이다!” 세진이는 손을 털고 일어나 저만치 뛰어갔다. “넘어져도 놀라지 않는 법을 가르쳐야죠. 세상은 험한 곳인데….” 세진이 다리에서 철컥철컥 소리가 났다.

다리가 없는 소년이 3.8㎞를 달렸다. 세진이는 푸르메재단(www.purme.org)과 에쓰오일(대표 사미르 에이 투바이엘) 후원으로 지난 23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시드니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25)씨,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차승우(44)씨 등 한국에서 온 6명의 장애인도 함께 달렸다. 세진이의 왼쪽 다리는 종아리에서, 오른쪽은 허벅지에서 끝이 난다. 세진이는 튼튼한 의족을 달고 하버 브리지를 건너 오페라하우스에 골인하는 3.8㎞의 ‘패밀리 런’ 코스를 50여분간 달려 완주했다.

 


  • ▲ 지난 23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시드니 마라톤 대회’에서 두 다리에 의족을 달고 3.8㎞ 코스에
    도전한 김세진군이결승점에 골인한 뒤 어머니 양정숙씨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푸르메재단 제공

     

    세진이는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다. 지난 5월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2005년에는 의족을 달고 해발 3870m의 로키산맥을 올랐다. 의족을 달고 걷는 것은 성인 남성이 20㎏짜리 짐을 끌며 걷는 것만큼의 힘이 드는 일. 출발신호가 울리자 세진이는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세진이는 엄마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다. 엄마는 자원봉사를 하던 보육원에서 세진이를 만나 두 살 때 입양했다. “세진이를 처음 본 순간, 누군가 ‘축하드려요. 임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기계체조 선수였던 엄마는 17세 때 사고로 하반신마비가 됐지만, 4년의 재활훈련 끝에 완치됐다.

    엄마는 세진이를 걷게 할 방법을 찾았다. 의사들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스스로 불가능을 극복해본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엄마는 세진이의 종아리와 허벅지 끝에 아기 신발을 걸쳐놓고 날마다 말했다. “세진아, 넌 이 신발을 신게 될 거야. 걷게 될 거야.”

    그러나 땀과 눈물이 필요했다. 4살 때 처음으로 의족을 달고, 세진이는 한 달 동안 이불 위에서 넘어지는 연습만 했다. “친아들이어도 이렇게 독하게 훈련시켰겠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속으로 많이 울었다. 세진이가 걸을 때까지 엄마는 집에서 함께 무릎으로 기어 다녔다. 한 달 만에 세진이는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터득했다.

    세진이가 다니던 학교의 학부모들은 “우리 애가 세진이 걸음걸이를 따라 한다”며 전학을 강요했다. 유치원만 13번, 초등학교는 5번 옮겼다. 그럴수록 엄마와 세진이는 강해졌다. 식당에서 옆자리 손님이 “밥맛 떨어진다”며 항의하자, 엄마는 “내 아들이 다리 없다고 쫓겨나는 판에 두 발로 걸어나갈 수 있겠냐”며, 세진이를 업고 무릎으로 기어 나왔다.

    결승점이 가까워 왔다. 시드니 사람들이 세진이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엄마가 물었다. “세진아, 많은 사람들이 널 보고 기뻐하지? 왜 그럴까?”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니까요. 그렇죠?” 마라톤을 끝낸 세진이가 의족을 벗었다. 의족과 닿았던 두 다리 아랫부분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