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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당신이 왜 치료비를 걱정합니까?

  ‘살아 있는 비너스’로 잘 알려진 영국의 앨리슨 래퍼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해표지증 환자지만 세계적인 구족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중증 장애인인 그녀에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녀는 “영국 사회가 보모와 가정교사를 배치해 나를 키우고 대학까지 교육시켜 주었고, 사회복지 지원 덕분에 아들 ‘펠리스’를 낳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한국은 어떤가?
  
  매년 30만 명이 교통사고 등으로 중도 장애인이 되지만 장애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치료와 재교육을 받으면 얼마든지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장애인들이 시설과 지원이 부족해 방 안에 갇혀 지낸다.
  
  백경학 푸르메 재단 상임이사 등 4명은 2007년 봄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일본의 장애인시설 등을 방문한 후 <장애인 천국을 가다>라는 책을 펴냈다. 지난해 <프레시안> 기획시리즈 “‘장애가 덜 불편한 사회’를 찾아서”를 통해 그 내용 중 일부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들은 ‘장애인 천국’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이 우리나라에서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가가 국민의 의료를 보장하는 것이 당연

▲ <장애인 천국을 가다>
(백경학 외 지음, 논형 펴냄)

대형병원에서 민영보험자에게 우선진료권을 주는 방안이 추진되는 등 한국에선 그나마 존재하던 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 그러나 독일 등의 선진복지 국가에선 많은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장애인조차 치료비를 걱정할 일이 없다.
  독일 내 심장질환 관련 재활전문병원인 회엔리트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보험회사와 국가에서 의료비를 내주기 때문에 개인이 의료비를 지불할 일이 거의 없다. 이 병원의 환자들은 입원 후14일 동안 하루 입원비 130유로(20만 8000원) 중 14유로(2만 2400원)만을 지불하고 15일째부터는 보험회사와 국가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저자가 이 병원의 재정을 걱정하는 ‘우문’을 하자 병원 관계자는 국가가 국민의 의료를 보장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현답’을 했다. 병원 관계자는 민간 재단인 푸르메 재단이 공공목적의 재활전문병원을 지으려고 하는 것을 오히려 신기하게 생각했다.
  또 환자들은 주말을 이용해 인근 지역으로 여행을 다니고 함께 춤을 추는 모임을 만드는 등 장애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위축되지 않았다. 저자는 “병원 입원과 치료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감수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을 찾아가는 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병원도 주말을 이용해 디스코파티를 열고 비원과 창덕궁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고 전했다.
  
  모든 빵을 110엔에 파는 빵집
  
  또 독일, 일본 등에 사는 장애인들은 한국처럼 시설에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일본 고베시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작은 빵집 클라라 베이커리에선 모든 빵의 가격이 110엔(1050원)이다. 신체장애와 지적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는 중복 장애인인 고니시 씨가 빵값을 계산하기 때문에 그가 계산하기 쉽도록 이 빵집에선 오직 한 가지 가격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균일가 110엔’은 일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일을 맞추는 소규모 장애인 작업장의 인간적인 단면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이 편리하면 모든 사람이 편리하다’는 인식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클라라 베이커리는 장애인 딸을 둔 이시쿠라 씨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고니시 씨 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 모두 장애인이다. 이 곳에서 만들어진 빵의 80%는 어린이 집과 구청 등에 공급되고 나머지는 이웃 주민들이 매장에 들러 구입한다.
  저자는 이렇듯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회구성원 모두를 행복하게 하게 만드는 비결”이라고 전하고 있다.
  
  지멘스도 제작 의뢰하는 장애인 작업장
  
  장애인이 당당하게 일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모습은 독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 뮌헨 근교에 있는 까리따스 장애인 작업장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이 곳은 독일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곳인데, 독일의 대표적인 그룹인 지멘스(SIMENS)와 트럭회사 만(MAN)도 이곳에 부품 생산을 의뢰할 정도로 꼼꼼한 공정과정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이 곳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은 대개 다운증후군과 발달장애를 가진 정신지체 장애인이지만 일을 할 때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전문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수많은 훈련과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정부의 세금감면 정책 덕분이다. 기업이 장애인 작업장에 포장이나 조립 등을 의뢰하면 정부는 19%에 달하는 부가세를 7%로 낮춰준다. 1990년대 도입된 장애인 의무 고용제도에는 직접 고용 대신 장애인 작업장에 일거리를 맡겨도 된다는 조항이 포함됐고, 이것이 장애인 작업장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독일, 일본 등이 국가지원으로 활발한 장애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정부 정책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푸르메 재단 등에서 민간재활병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윤 없는 장애인 시설을 국가 지원 없이 언제까지고 민간에서 설립, 운영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장애인 재활 등을 민간에 맡기다 보니 신촌 세브란스 병원과 같은 민간 재활병원은 매달 수억 원의 적자로 허덕이고 있다.
  ‘장애가 덜 불편한 사회’를 위한 정부의 인식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양진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