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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만나도 좋은 사람들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성인 발달장애인 낮 활동 ‘푸르메아카데미’

 

명찰을 목에 걸고 다닐 만큼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정문경 씨(50), 공책을 모아 글씨를 쓰는 게 취미인 황희정 씨(36), 어디로든 여행 가는 걸 좋아하는 오승현 씨(35). 나이도 살아온 환경과 성장 과정도 다르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나 낮을 함께 보냅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낮 활동 프로그램 동기생인 황희정‧정문경‧오승현 씨(왼쪽부터)
발달장애인을 위한 낮 활동 프로그램 동기생인 황희정‧정문경‧오승현 씨(왼쪽부터)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공통점 하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인생의 좌표를 설정하기 힘든 암담한 현실. 승현 씨는 보호작업장을 다녔고 희정 씨는 복지관 직업훈련에 참여했지만 잘 맞지 않아 그만뒀습니다. 문경 씨는 장애인 요양원에서 오랜 세월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올해 3월 시작한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푸르메아카데미’를 만났습니다. 성인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즐거운 낮 활동 프로그램. 문화여가, 심리운동, 스누젤렌, 건강관리, 일상생활 적응과 자기결정 능력 향상을 돕는 다채로운 구성이 특징입니다. 주간보호센터가 ‘보호’에 초점을 둔다면, 푸르메아카데미는 스스로 선택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는 ‘자립’이 목표입니다. 이용 기간도 5년으로 다른 기관에 비해 긴 편입니다.

아침 운동 후 회전 재활기구를 타며 활짝 웃고 있는 문경 씨
아침 운동 후 회전 재활기구를 타며 활짝 웃고 있는 문경 씨

오전 10시, 장애인 6명(31~50세)이 소속된 ‘누리반’의 맏형인 문경 씨가 제일 먼저 도착해 동생들을 챙겨 야외로 나갑니다. 희정 씨와 승현 씨는 손을 잡고 한 바퀴를 빠르게 달렸고, 운동을 마친 문경 씨는 회전 재활기구에 느긋하게 몸을 맡깁니다. 카메라를 발견하자 브이 포즈를 취하는 문경 씨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불러 모아 계획에 없던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꼭 하는 일, 데스크에서 구내식당 식권 사기. 미리 챙겨온 3천 원을 꺼내 식권을 사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머니에 잘 넣어둡니다. 이어지는 작업활동. 문경 씨는 나사조립을, 승현 씨와 희정 씨는 퍼즐 맞추기를 합니다. 소근육의 힘을 기르며 어떤 직업훈련이 맞을지 탐색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퍼즐 맞추기에 몰입하고 있는 승현 씨와 나사를 척척 조립해내는 문경 씨
퍼즐 맞추기에 몰입하고 있는 승현 씨와 나사를 척척 조립해내는 문경 씨

유은일 가족지원상담센터장은 “성인으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도록 안내해요. ‘자립’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이외에는 지원을 받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해요. 부모님들께 우리 아이는 안 된다고 단정 짓거나 전부 해주기보다는 자녀의 가능성을 하나씩 늘려가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라며 장애인의 선택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낮을 편안하고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스케줄이 서로 다릅니다. 누구는 방송댄스를 배우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미술을 합니다. 공동활동을 할 때에도 개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합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거나 돌발행동을 보일 때면 빛‧소리‧향기‧음악을 통해 오감을 일깨워 심리 안정을 돕는 스누젤렌실에서 휴식을 취하며 긴장을 풉니다.

스누젤렌 시간에 꽃밭을 만들며 안정을 취하고 있는 세 사람
스누젤렌 시간에 꽃밭을 만들며 안정을 취하고 있는 세 사람

이용자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인 스누젤렌실에서 세 사람은 알록달록 불빛을 내뿜는 긴 선을 활용한 꽃밭 만들기에 열중합니다. 몸에 감아보기도 하고 손으로 모아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냅니다. 김상희 임상심리사가 “꽃다발 누구한테 줄래요?”라고 묻자 “승현아, 선물이야”, “여기, 희정언니!” 반짝이는 불빛꽃을 건네며 까르르 웃습니다.

김상희 임상심리사는 “스누젤렌은 다양한 도구를 통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고 즐거운 감정을 갖게 해줍니다. 숲을 연상하는 초록색, 바다가 떠오르는 파란색 등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과 소리로 구성한 공간 안에 머무르는 동안 일상에 복귀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라고 치유 효과에 대해 말합니다.

누리반 이용자들이 약속한 9가지 규칙
누리반 이용자들이 약속한 9가지 규칙

누리반 게시판에는 서로 지켜야 할 ‘약속’이 적혀 있습니다. 전화는 하루 한 번만 하기, 양치질 깨끗이 하기, 수업 시간에 떠들지 않기 등 함께 정한 규칙입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식권을 내고 줄을 기다려 오늘의 메뉴인 닭백숙을 받아든 세 사람은 동료 장애인, 지역주민들과 어울려 식사를 합니다. 약속대로 양치질을 하고 30분간 달콤한 낮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습니다.

매주 스타벅스, 어린이대공원, 노래방 등 ‘가고 싶은 나들이 장소’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참여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놀이기구를 탈 지 3주 동안 토론하고, 음료 메뉴판의 그림을 보고 주문 방법을 익히는 등 충분히 준비합니다. 화창한 날, 다들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던 길동생태공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 난생 처음 거미를 만져보고, 표고버섯을 먹어보고, 비 오듯 와르르 휘날리는 벚꽃 잎을 맞습니다. 생태해설사가 꽃 이름을 맞힌 희정 씨의 이마에 민들레를 얹어 주자 승현 씨는 “예쁘다”며 박수를 칩니다.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직접 주문해서 마셔보는 이용자들(푸르메아카데미 제공)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직접 주문해서 마셔보는 이용자들(푸르메아카데미 제공)

문경 씨, 희정 씨, 승현 씨는 낮 활동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이제껏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면서 활동 반경도 넓어졌습니다. 감정 기복이 심해 소리를 지르고 들어 누워 울었던 문경 씨는 점차 그런 행동이 줄어들고, 간단한 작업조차 집중이 힘들었던 승현 씨는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앞 사람을 따라만 하던 희정 씨는 싫고 좋음을 표현하게 됐습니다.

길동생태공원을 걸으며 비처럼 쏟아지는 벚꽃을 만끽하는 이용자들
길동생태공원을 걸으며 비처럼 쏟아지는 벚꽃을 만끽하는 이용자들

누리반 담당 허동욱 사회복지사는 “한 어머님은 집에서 멍하니 있던 자녀의 눈빛이 또렷해진 것 같다며 좋아하세요. 하루 종일 바깥을 맴도느라 부모님을 애태웠던 이용자는 푸르메아카데미에 참여한 뒤로 가정에서도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해졌어요”라며 변화를 얘기합니다.

나들이를 한껏 즐기고 있는 승현 씨, 희정 씨, 문경 씨(오른쪽부터)
나들이를 한껏 즐기고 있는 승현 씨, 희정 씨, 문경 씨(오른쪽부터)

푸르메아카데미 선생님들은 장애인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적극 알려줍니다. 유은일 센터장은 “어느 날 한 이용자가 엄마랑 아빠한테 칭찬받았다며 좋아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고 북돋아주는 일이 우리의 역할이자 전문성”이라고 강조합니다.

“친구들이랑 커피 마시는 게 제일 좋아요. 특히 바닐라라떼요.” 자신이 만든 커피를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다는 희정 씨는 언젠가 카페에서 일할 날을 기다립니다. “여기 사람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 잠을 못 잤어요. 사람들 다 좋아요.” 아이를 유난히 좋아한다는 승현 씨의 꿈은 간호사입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문경 씨는 쉴 새 없이 “좋아요”를 반복하며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세 사람이 오늘과는 또 다른 내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낮 활동을 마치고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길 “내일 또 만나요!”
낮 활동을 마치고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길 “내일 또 만나요!”

 

*글, 사진= 정담빈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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