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들의 모임 ‘나는’ 칼럼


 


“형제에게 장애가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을 무렵, 비장애형제에 대해 여기저기 설명하고 다닐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갔지만, 계속해서 이 말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생각해 보면 비장애형제로 살아오면서 가장 나의 핵심이 되었던 감정은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경계선 앞에서 마주보고 있는 신발


비장애형제는 장애와 비장애의 세계에 발을 걸치고 살아간다. 집 안에서는 장애 가정의 구성원, 집 밖에서는 ‘평범한’ 사람. 스스로가 자라나기에도 벅찼던 10대에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산다는 것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장애의 세계에서,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동생이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장애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동생이 싫고 부끄러울 때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생을 부정하는 나를 끊임없이 탓했다.


반대로 비장애의 세계에서, 나는 어딘가 결격사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동안에도 동생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다른 사람과 형제 이야기를 할 때면 이해 받을 수 없다는 느낌에 외롭기도 했다. 남들처럼 살고 싶고, 동시에 나는 절대로 남들처럼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무리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


그래서 나는 외면하는 것을 선택했다. 가정 내에서 나는 ‘멀쩡한 쪽’, ‘착한 딸’, ‘좋은 누나’였기 때문에, 내 할 일을 잘 하는 게 내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 내 할 일은 공부를 잘 해서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입시 준비에 전념했다. 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이며 동생에 대한 책임이 그것을 방해할 수 없다며 동생과 나를 분리했다.


그렇게 나는 장애의 세계에서 도망쳐 비장애의 세계에서 어떻게든 내 자리를 찾아 비집고 들어가려 했다. 그리고 가슴 속에 뭔가가 쌓여갔다. 동생에 대한, 엄마에 대한 죄책감. 더 잘 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책. 혼자라는 외로움.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내가 아픈 것과 동생은 별개의 문제라고 믿었다. 나의 개인적인 문제에 동생을 끌어들이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을 탓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져 싫었다. 그래서 문제는 나라고 생각했다.


모여서 얘기하는 사람들


그런데 처음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 순간, 마음속의 응어리가 ‘탁’ 하고 풀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비장애형제’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이 눈물 나도록 기뻤다. 나의 정체성에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장애와 비장애의 세계의 중간에서 부유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에게도 이 세계의 카테고리 한 조각이, 디디고 설 수 있는 땅이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비장애형제로 정의하자, 나의 삶에서 동생의 존재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장애의 세계와 비장애의 세계가 이분법적으로 나눠질 수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길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정신적 장애인의 20~30대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이 올해로 벌써 3년차에 접어들었다. ‘나는’에서 서로를 발견한 비장애형제도 백 명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처음 모임에 참여하게 된 비장애형제들은 하나같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말한다.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


‘나는’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만나서, 오직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나의 형제자매를, 나의 가족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너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만나야 한다.


*글= 가넷



가넷은 20대 후반의 직장인. 자폐성 장애 3급 진단을 받은 3살 터울 남동생이 있다. 정신적 장애인의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It’s about me!)’의 운영진으로 활동 중이며, 책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의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들의 모임 ‘나는(It’s about me!)’은 2016년 비장애형제들에 의해 만들어진, 비장애형제를 위한 모임이다. 자조모임, 스터디, 세미나 등을 통해 비장애형제를 비롯한 장애인 가족의 건강한 삶을 모색하고 있다. http://www.nanun.org


기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