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숨이 붙어있는 한 희망은 있어요

화상 재활중인 이지선씨 11월 `뉴욕 마라톤대회` 출전

 

"생명이 곧 희망입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희망은 있어요. 저도 분명히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죠. 다 포기해 버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숨 쉬는 것 자체가 경이롭고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나 장애인들이 저를 보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해요."

벌써 9년 전 일이다. 새 천년의 들뜬 기운이 채 가라앉지 않던 그해 여름. 졸업을 앞둔 한 여대생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녀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 바로 그 앞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 그 후 사고보다 더 끔찍한 수술과 치료를 이겨낸 그녀의 이야기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따가운 햇볕이 몸속까지 파고들던 지난 4일 오후 우리에게 삶과 생명과 희망이 무엇인지 일깨워줬던 이지선 씨를 만났다.

10분쯤 늦게 도착한 그녀는 연방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럭저럭 유명해진 사람들이 흔히 보여주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오만하거나 뻣뻣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2004년 그녀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보스턴대에서 재활상담 석사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방학 때면 늘 한국에 나온다는 그녀는 지난달까지 보건복지가족부 장애인권익지원과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9월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9년 전 일을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사고 자체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기억에 없어요. 사고 이후의 생활이 피 말리게 힘든 일이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가족과 신앙이 없었더라면 제 인생은 또 달라졌을 거예요."

가족과 어머니 얘기는 늘 강하게만 보였던 그녀도 피해갈 수 없어 보였다. 약간 뜨거워진 눈시울에 기자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녀의 사랑 얘기, 결혼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녀는 "어떤 사람들은 내게 결혼에 대해 묻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 하는데 그 주저함 속에는 아직도 일종의 편견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의 재활 치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의사선생님 덕분에 요즘엔 수술받고 치료받는 게 전혀 힘들지 않아요. 개인병원에 다니니까 환자라는 느낌은 별로 없고 나도 예뻐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고 편한 느낌이에요. 수술 때면 식사를 안 하시던 어머니도 이젠 별로 걱정하지 않으세요."

그녀는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11월에는 재활전문병원 건립기금 모금을 위해 뉴욕에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

그녀는 "아직 운동을 제대로 못해서 걱정"이라며 "내가 하는 이런 활동은 궁극적으로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장애인 차별금지법의 실효성 확보에 관한 논문도 준비 중이다.지난 6년 동안 무려 300여 회 강연을 다녔다. 그녀의 희망 스토리는 전국 방방곡곡에 그 흔적을 남겼다. 그녀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잊고 있던 옛 기억을 다시 끄집어낼 때면 강연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문지웅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