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섹션

[중앙일보] “끝까지 달려 장애인에 희망 주고 1m에 1원씩 재활병원 기금 마련”

“끝까지 달려 장애인에 희망 주고 1m에 1원씩 재활병원 기금 마련”

1일(현지시간) 열린 뉴욕마라톤에 참가한 신현성·이수완·이지선·김황태·김용기씨 (왼쪽부터)가 출전에 앞서 완주를 다짐하고 있다. [정경민 특파원]

2000년 7월 이화여대 4학년이었던 이지선(31)씨는 음주운전자의 실수로 일어난 교통사고로 온몸의 55%에 화상을 입었다. 40여 차례 고통스러운 피부이식 수술을 이겨낸 그는 현재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0년 8월 병원 한국전력 하청회사에 다니던 김황태(32)씨는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실의에 빠졌던 그는 마라톤으로 새 삶을 찾았다. 완주만 33번 했고 2006년 이후 전국체전에서 딴 메달만 10개를 넘는다. 최고 기록은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이라는 ‘서브 스리(3시간 이하 주파)’에 해당하는 2시간57분대다.

선천성 소아마비 지체장애 1급인 김용기(34·치과기공사)씨는 다리는 쓸 수 없지만 스피드의 짜릿함에 빠져 휠체어 마라톤에 입문했다. 그의 공식 기록은 1시간46분대로 세계 50위 안에 든다.

2001년 유전병으로 갑자기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 1급 신형성(48)씨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무작정 집을 나와 안마사가 됐다. 마라톤과 만나면서 자신감을 찾았고, 시각장애인 최초의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도 땄다. 5살 때 열병을 앓다 청력을 잃은 이수완(40)씨. 세상과 소통이 되지 않아 갇혀 살았던 그에게 마라톤은 직업이자 세상과 만나는 통로가 됐다.

운명과 싸워 이긴 이 다섯 장애인이 1일(현지시간) 열린 제40회 뉴욕마라톤대회에서 만났다.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을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푸르메 재단 홈페이지(www.purme.org)에선 다섯 명의 마라토너가 1m 달릴 때마다 1원씩 기부하는 모금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인 이지선씨는 “사고 뒤 바로 재활치료를 하면 몸의 기능을 90%까지 회복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재활병원 부족으로 결정적 시기를 놓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라톤대회 참가가 처음이다. 게다가 화상으로 인한 피부 손상으로 피부 호흡이 어려워 달리는 대신 걷기로 완주에 도전할 계획이다. 뉴욕과 보스턴에서 4년째 유학 중인 그는 “미국 생활 중엔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 전까진 누구도 장애에 대해 물어보거나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며 “제도보다는 장애인을 보듬어주는 따뜻한 시선이 부럽다”고 말했다.

뉴욕마라톤은 맨해튼 남쪽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시작해 브루클린·퀸스·브롱스·할렘을 지나 센트럴파크에서 마친다. 매년 3만5000여 명이 참가하고, 우승자에게는 13만 달러의 상금을 준다.

2006년부터는 각종 자선단체가 참여해 지난해까지 50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올해는 2100만 달러 모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화 ‘슈퍼맨’에 나왔던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들 매슈가 120만 명의 미국 척추장애인을 위해 달리고,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주연배우 에드워드 노턴은 아프리카 마사이 야생 보호 재단을 위해 참가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