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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어머니가 잠든 칠궁

홍서윤 8월 칼럼

 

효자동, 청와대 뒤편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공간이 하나 있다. 낡은 문과 지붕의 기와가 변해버린 시간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은 칠궁, 조선의 왕들을 낳은 친모이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신위가 모셔진 곳이다.

청와대 뒤편에 자리한 칠궁
청와대 뒤편에 자리한 칠궁

인터넷으로 칠궁 탐방을 예약하고 청와대 건너편 무궁화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칠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먼저 무궁화동산에 모여 신원을 확인하고 출입증을 교부받는다. 약속한 시간 3시가 임박해오자 문화해설사가 칠궁 탐방 예약자들을 불러 모은다.

삼삼오오 모인 방문객들이 문화해설사를 따라 칠궁으로 향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방문객 주변을 감싸는 경찰들의 모습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의문은 풀렸다. 칠궁에 입장하자마자 문화해설사의 안내가 이어진다. 보안을 위하여 청와대 방향의 사진 촬영은 금한다는 내용이다. 어쩐지. 탐방객 주변의 경찰들이 탐방객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다.

문화해설사의 속도를 따라가기는 조금 벅찼지만, 그래도 휠체어를 탄 탐방객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잠시 기다려주었다. 조금 느리게 움직여서인지 함께 탐방을 하는 방문객들은 쪼개진 시간을 틈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기도 한다. 본격적인 칠궁 해설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하나 둘 해설사의 설명에 빨려 들어가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공간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신청을 통해 관람할 수 있는 칠궁
인터넷 신청을 통해 관람할 수 있는 칠궁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돌아가신 조상을 숭배하는 문화가 있었다. 비단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고려시대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조상의 혼백을 기리며,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집이 바로 사당(祠堂)이다. 이런 사당은 칠궁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문화재이다.

그러나 칠궁은 조금 다르다. 왕실의 사당은 종묘라 일컬으며 왕과 왕비의 혼백을 기리고 있지만 왕을 낳았으나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은 종묘에 들어갈 수 없다. 참으로 안타깝고 기구한 삶이다. 처음 칠궁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영조의 역할이 컸다. 사도세자의 아버지로도 알려졌고, 조선시대의 가장 장수한 왕으로 알려진 영조는 자신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시기 위하여 1724년 ‘육상궁’을 건립하였다. 이어 1908년 순종 2년 당시 5명의 후궁 신위가 옮겨졌고, 1929년 덕안궁의 신위를 모시게 되면서 지금의 칠궁이 탄생하게 되었다.

칠궁을 구성하는 일곱 궁은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육상궁(毓祥宮), 연호궁(延祜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 덕안궁(德安宮)이 있다. 저경궁은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의 사당이며, 대빈궁은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생보인 희빈 장씨의 사당이다. 희빈 장씨의 삶은 TV드라마를 통해 익숙하기도 하다. 육상궁은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이며, 연호궁은 영조의 후궁이자 진종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사당이다. 선희궁 역시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인 장조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이다. 경우궁은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덕안궁은 대한제국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의 사당이다.

처음 칠궁에 들어서면 그저 평범한 사당이 밀집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곳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의 감상평이다. 칠궁 해설의 시작점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로 하마석(下馬石)이다. 하마석은 말에서 내릴 때 도움닫기의 역할을 하는데, 조선시대 절대 권력을 지닌 왕이라 할지라도 낳아주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말에서 내려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취지이다. 비록 왕비가 되지 못한 생모라 할지라도,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는 자신된 도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말에서 내리고 탈 때 필요한 디딤돌 하마석
말에서 내리고 탈 때 필요한 디딤돌 하마석

이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희빈 장씨의 사당이었다. 사약을 받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며 희빈으로서의 생을 마감했지만, 대빈궁(大嬪宮)이라는 명칭은 희빈 장씨의 삶을 잘 반영해주는 듯하다. 한때 왕비였던 사람이라 칭하는 대빈궁은 이곳에서도 조금 특별하다. 여섯 후궁과 달리 사당의 건축양식도 달랐다. 왕비의 공간에서만 사용하는 둥근 기둥과 넓고 높은 석대, 그리고 독특한 건축양식은 한때나마 왕비였던 희빈 장씨를 위하는 마지막 배려로 느껴진다.

그리고 눈에 띈 또 다른 사당은 바로 덕안궁(德安宮)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인 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의 사당이다. 일제강점기, 영친왕 11살 때 일본의 볼모로 끌려가면서 순헌황귀비는 더 이상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자식과의 생이별,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헌황귀비는 여성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며 궁녀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내탕금으로 숙명학원을 설립하였다. 그렇게 설립된 숙명여학교(숙명학원)이 바로 지금의 숙명여자대학교이다.

휠체어 이용자도 탐방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경사로
휠체어 이용자도 탐방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경사로

강렬하게 뇌리에 남은 두 후궁의 이야기 외에도 일곱 후궁의 생애는 참으로 특별하다. 왕과 왕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역사 이야기에서 일곱 후궁은 주연이 아닌 조연의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적어도 칠궁에서는 이들의 생애가 조연이 아닌 주연이었다. 왕의 생모로서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왕의 흔적들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효자동, 북악산이 잘 보이는 고즈넉한 언덕에 잘 알려지지 않은 칠궁이 있다. 왁자지껄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그저 알음알음 찾아오는 몇몇의 사람들을 맞이하는 게 전부지만 칠궁은 고요하고 아늑하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말이다.

<칠궁 관람 정보>
– 입장료 : 무료
– 관람방법 : 문화재청 경복궁 칠궁 특별관람 예약
http://www.royalpalace.go.kr/content/guide/guide32.asp
– 편의시설 : 장애인 화장실 – 무궁화동산
장애인 주차구역 – 없음
장애인 편의시설 – 주요 탐방 동선 경사로 완비
*일부 경사로는 매우 가파르고, 건축 구조상 반드시 동행에 도움이 필요함
– 문의 : 02-734-7720

*글, 사진=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

홍서윤은 장애인여행작가이자 현재 한양대학교 관광학 박사에 재학 중이다. “당신이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나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여행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에 장애인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하는, 모두를 위한 여행(Tourism for All)이 뿌리내리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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