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필 무렵 날아온 편지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제주도 가족여행 


지난 6월 5일부터 3박 4일간,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지원으로 9가족, 총 35명의 장애어린이 가족이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제주도의 봄을 한껏 즐기고 돌아왔어요. 그리고 약 한 달 후, 푸르메재단에 감사편지가 속속 도착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달리 재단 직원들의 가슴을 울린 도현아 어린이 어머니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도현아 가족에게서 온 편지>


감자꽃 필 무렵 감사를 전합니다!


여행 첫 날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있는 도현아 가족.
여행 첫 날, 숙소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있는 도현아 가족.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뇌출혈 진단을 받은 이후, 외부적으로 보이는 상처는 나아갔지만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너무 우울했어요. 혼자 밖에 나갈 수 없어 큰아이가 하교할 때를 기다려야 했고, 회복이 더딘 저와 병든 아이를 함께 돌보느라 지쳐가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미안한 마음에 혼자 우는 날들이 늘어갔어요. 어느 하루는 내가 떠나줘야지 하는 생각에 옷가지를 가방에 넣고 짐을 쌓았습니다. 그렇다 한들 혼자 걸을 수도 없고 갈 곳도 없는데다가 떠날 경비도 없어 숟가락을 뒤집어 꾹 눌러 놓은 듯 눈이 부어오르게 엎드려 울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그때를 돌아보니 마음이 짠해지면서 웃음도 나요.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과 푸르메재단이 함께하는 2018 제주도 가족여행”은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나도 힘들어!’라는 마음이 표정에까지 드러난 상태로 폭발하기 직전이었던 저희 가정에 큰 위로의 선물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보낸 3박 4일만이 아니요, 여행을 갈 수 있게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그랬지요.


그 날부터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와 3m를 걷고, 다음날은 더 멀리, 그 다음날은 그보다 더 먼 곳까지 걸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촌스러운 줄도 모르고 봄과 거리가 참 멀어 보이는 마스크, 잠바, 장갑, 목도리, 모자 등을 잡히는 대로 단단히 챙겨 입은 채로 쉬지 않고 걷는 연습을 했어요. 밥을 잘 먹지 않으려던 아이도 “우리 힘내서 제주도 꼭 가자!”하면 열심히 먹기도 했답니다.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 마음으로만 가고 싶었던 곳에 진짜 갈 수 있다는 희망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대화가 사라졌던 식사시간에 이야기꽃이 피기도 시작했지요. 올라왔던 화를 참고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여행을 즐겁게 준비할 수 있었어요.


둘째 날,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 즐거워하는 가족들.
둘째 날,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 즐거워하는 가족들.

두둥~~, 비행기 타러 가는 날, 진짜 제주도 가는 날!


우릴 도와주신다는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함께 가는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하는 기대감에 집을 나섰습니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어색함은 잠깐이었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슴앓이 한 아픔, 눈물로 견뎌내야 했던 시간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상대를 원망했던 마음들, 건강한 자녀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못했던 미안함까지...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나 역시 겪어봤기에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더한 아픔 속에서도 잘 이겨내고 있는 가정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확 변해서 우리 아이들이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서로 이야기하면서, 서로 이겨내는 모습들을 모면서 지친 마음이 위로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간 첫날 저녁, 너무나 큰 감사함을 또 느꼈습니다.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는 저희 가족은 뭐가 필요한지도 몰라 약과 옷만 챙기고도 뭐라도 빠졌을까봐 여러 차례 확인했어요. 그런데 숙소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 약 먹을 물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믹스커피라도 챙겨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씻기고 밑에 내려가 봐야겠다 했는데 큰아이가 “엄마, 이것 좀 보세요!”하며 부르네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어찌 아시고 커피에서부터 물티슈, 음료와 다양한 간식까지 여러가지를 넉넉하게 챙겨서 보내주셨더라구요. 이런 상황에선 이런 게 필요하고 저런 상황에선 저런 게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숙고하고 또 숙고하고, 체크하고 또 체크해서 준비해주셨구나 하는 생각에 참 감사하고, 작은 부분까지도 마음을 다해 돕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셋째날, 현아를 흥분하게 했던 퍼시픽랜드 돌고래쇼.
셋째 날, 현아를 흥분하게 했던 퍼시픽랜드 돌고래쇼.

참 고맙습니다!


날이 갈수록 팀장님과 스텝 여러분들이 축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저희 가족과 또 함께 했던 여러 가족들이 더 먼 길 갈 수 있도록 일으켜 세워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어려운 환경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충전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집에 돌아와 여행을 준비할 때처럼 아이들이랑 밖에 나가봤더니 감자밭에 꽃이 피었어요. 바람에 살랑이는 꽃들을 보니 여유가 생긴 내 마음 같은 생각이 들면서 우리를 섬겨주신 여러분들이 생각났습니다. 곧 폭발해 버릴 것 같았던 남편 마음에, 제 마음에, 그리고 언제나 참아야 했던 큰아이 마음에, 병원에만 가본 작은 아이 마음에 ‘쉼표’의 여유를 선물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인생에 하늘에서 보내주신 섬김 대장이신 분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참 고맙습니다!


* 글 = 도현아 어린이 가족

* 사진 = 푸르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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