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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두산 활짝 웃다

[Why] 백두산 활짝 웃다

2018-07-07

장애아의 가족·친구 25명, 엄홍길 대장과 함께 백두산 천지 답사

지난달 29일 백두산 북쪽 코스를 타고 천지(天池)에 오른 엄홍길 대장과 아이들의 모습. ‘백 번 오르면 두 번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날씨가 맑아 투명한 천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 대장은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며 격려했고, 아이들은 “이 가슴 벅찬 광경을 잊지 않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푸르메재단 제공.
지난달 29일 백두산 북쪽 코스를 타고 천지(天池)에 오른 엄홍길 대장과 아이들의 모습. ‘백 번 오르면 두 번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날씨가 맑아 투명한 천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 대장은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며 격려했고, 아이들은 “이 가슴 벅찬 광경을 잊지 않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푸르메재단 제공.

‘비장애 형제자매’는 장애인을 형제나 자매로 두고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모를 제외하면 장애인들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제2의 보호자’다. 장애 형제가 있는 특별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서일까.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에도 참고 절제하는 법부터 먼저 배운다. 본인의 연령과 장애 형제자매의 장애 유형·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형제자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다는 죄의식, 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가족의 관심 밖에 있다는 소외감 등이다. 대부분은 일찍 철이 들지만, 진하게 사춘기를 앓는 경우도 있다.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왕기덕 푸르메재단 배분사업팀장은 말한다.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은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등 지난 13년 동안 장들의 복지와 권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기획했다. 이번에는 “한 번도 제대로 여행하지 못한 장애 아동의 형제와 애인자매들에게도 견문을 넓힐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 태광그룹 일주학술문화재단과 함께 지난달 27일 중국 지린성 연길(延吉) 일대에서 3박 4일 동안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비전캠프’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중·고등학생 30여 명을 모았고, 태광그룹 임직원 자녀들도 참여했다. 히말라야산맥 8000m 이상 고봉(高峯) 16좌를 등정한 ‘국민 산악인’ 엄홍길 대장(현 엄홍길휴먼재단 이사장)이 힘을 보탰다. 그는 “히말라야라는 인생 제일의 목표를 달성하고나서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일이 가장 큰 낙(樂)이 됐다”고 했다. 엄 대장의 지도 아래 아이들은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백두산 산행길에 올랐다.

엄 대장은 2000년 방북 때 처음 백두산을 경험했고, 2008년에는 한국의 발달장애 청소년 8명을 데리고 다시 올랐다. “히말라야 설산(雪山)을 누볐던 국민 산악인은 백두산을 뒷산 정도로 여길 것”이라 생각하던 아이들에게 엄 대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신신당부를 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고도(高度)에 오르는 일인데 결코 간단치 않다”며 정신력 무장을 주문했다. 해발 2744m의 백두산엔 1년 중 270일 초속 20m 안팎의 강풍이 불고, 230일 정도는 겨울 날씨가 나타난다. 정상인 천지 부근엔 ‘용권’이라는 강한 돌개바람이 불고, 번개와 우박도 자주 볼 수 있다. 현지에서 만난 김용빈(31)씨는 “백 번 올라가면 두 번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해 백두산”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지난달 28일 백두산에 오른 엄홍길 대장과 아이들. 이날은 날씨가 흐려 천지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푸르메재단 제공.
지난달 28일 백두산에 오른 엄홍길 대장과 아이들. 이날은 날씨가 흐려 천지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푸르메재단 제공.

28일 엄 대장과 청소년들은 서파(西陂·서쪽에서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는 코스)를 등정했다. 악명 높은 40도 경사의 계단 1442개를 올라가야 천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날은 온종일 비바람이 불었고, 정상 부근엔 안개가 자욱해 시야를 가렸다. 한 줄로 30m 대열을 이룬 아이들은 등반 도중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일부는 두통과 어지러움 등 고산병 증세를 보였다. 엄 대장은 “무엇인가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최상이든 최악이든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일행을 다독였다. 꼬박 2시간이 지나 아이들은 정상에 올랐지만, 안개에 가려진 천지는 좀처럼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음 날 엄 대장과 청소년들은 북파(北陂)로 재도전을 했다. 이날은 출발부터 날씨가 좋았다. 백두산 초입에서 엄 대장은 “덕(德)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사랑으로 형제자매를 대해온 여러분은 그럴 수 있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3시간여 등정 끝에 백두산 천지에 도달했다. 용왕담(龍王潭)이라고도 불리는 둘레 14㎞의 거대 칼데라 호수가 보여주는 절경은 아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천지 표면엔 맑은 하늘과 구름이 반사되어 나타났다. 이명희(16)양은 “이렇게 가슴 벅찬 광경은 태어나 처음”이라며 “산에 오르기까지 쏟은 노력과 고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했다. 엄 대장은 천지를 가리키며 “이런 게 도전하는 사람들의 특권”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자신의 등반 경험을 언급하며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고 오르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며 “인생이든 산행이든 한 발자국들이 모여 마침내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두 번에 걸친 이번 백두산 등정을 통해 아이들은 “친구와 꿈이라는 두 가지 소득을 얻었다”고 했다. 일정 내내 “사람 사이에 정(情)이 넘쳤으면 좋겠다”고 말한 엄 대장 때문이었을까.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들은 처음엔 서로 어색해했지만, 이내 같은 처지에 공감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악천후 속 백두산 등반길이었지만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형광색 바람막이 점퍼 차림의 아이들은 어딜 가나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김의현(14)군은 “더 잘해줄 것 없나 늘 고민하는 조장, 응원하고 챙겨주는 조원 친구들을 만나 잊을 수 없는 나흘을 보냈다”고 했다. 이들 대부분에게 백두산 산행은 첫 해외여행이었다. 황지연(16)양은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는 진리를 몸으로 깨달았다”며 “힘이 들면 천지와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떠올릴 것”이라고 했다.

김은중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06/20180706017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