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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백경학] 눈물을 닦아줄 수 없나요

[동아광장/백경학] 눈물을 닦아줄 수 없나요

2012-1-19

아동문학가 고정욱 씨를 만났다. 그는 휠체어를 타는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다. 매달 동화책 5권을 쓰고 한 달 중 25일은 혼자 전국을 돌며 강연한다. 동화책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 등은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그의 책을 읽지 않은 어린이가 드물다. 동화책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장애어린이다. 어릴 때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 등에 업혀 학교를 오가면서 그가 겪었던 애환과 상상력이 책 안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학교 화장실에 갈 수 없어 전날 저녁부터 물을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어린이들은 ‘장애가 무엇이고 장애인이 왜 살아가기 어려운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에게 어린 시절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물었다. ‘작가’라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원래 꿈은 ‘의사’란다. 대입 원서를 쓰면서 장애인이 의대는 물론이고 이공대도 지원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었다고 한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장애는 자랑거리도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라고 위로했다는 말을 듣고 코끝이 찡했다. 강한 어머니가 계셨기에 오늘의 그가 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최영 씨가 최근 우수한 성적으로 법관 임용 지원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법원은 그의 임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시각장애인 판사가 나왔으니 앞으로 장애인 대통령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더디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세상을 바꾼 천재 중 장애인 많아

그런데 지난달 서울의 한 주민공청회에 참석했다가 이런 기대가 한꺼번에 허물어졌다. 어린이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회의가 끝나자 주민 몇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둘러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주민 한 사람이 병원이 생기면 장애어린이가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흉내를 낼 것이라고 걱정하자 다른 주민들도 장애청소년이 담배를 피우고 인근 초등학생을 성추행할 위험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청소년들이 순하고 부모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그들의 편견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장애청소년은 문제아, 말썽꾸러기이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힐 거라는 근거 없는 판단은 어디서 오는지 망연자실했다.

최고의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말을 못했다고 한다. 말뿐 아니라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을 제외하곤 다른 과목은 낙제를 면치 못했다. 결국 담임선생님은 그에게 학교를 그만두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과목은 낙제였지만 그의 수학능력을 높이 평가해 34세 때 스위스 취리히공대 교수로 임명했다. 그리고 42세에 상대성이론과 광자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윈스턴 처칠 역시 어린 시절 학습장애로 말하기와 쓰기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그는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조차 꺼렸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언어와 지각장애를 가진 심각한 자폐아였다. 그의 생활기록부에는 ‘의욕 부족으로 상습적으로 지각하고 품행이 나쁘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삼수 끝에 입학한 사관학교에서 그는 군인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영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수학에는 천재성을 보였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은 모든 과목을 잘해야 하는 우리 교육제도와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직장생활에 실패해 비참한 말년을 보냈을지 모른다. 현존하는 최고 물리학자로 평가되는 스티븐 호킹 박사는 여덟 살까지 읽고 쓰지 못하는 지진아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 때 근육위축증에 걸린 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한다. 만약 그가 이 땅에 태어났더라면 중증장애인 요양원에 갇혀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장애인에게 관대하지 못한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가정이다.

조금 더뎌도 관용 베풀며 기다려야

세상을 변화시킨 천재 중 장애인이 많지만 이들이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살았던 사회가 장애인을 비장애인보다 열등하거나 이상한 존재로 보지 않고 오히려 더 격려하고 그들의 능력을 키워주는 사회적 관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어린이를 잘 치료하고 더 나은 교육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이들 어린이 중에서 아인슈타인과 호킹 같은 사람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시각장애인 데이비드 패터슨이 2008년 미국 뉴욕 주지사로 당선되자 가장 열렬히 환영한 사람은 뉴욕에 살고 있는 장애어린이들이었다고 한다. 같은 처지의 주지사를 보면서 이들은 꿈을 갖게 됐다. 조금은 더디고, 조금은 다르지만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기다려줬으면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줄 수 없을까.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