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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환자 중심 재활병원 건립 꼭 해내겠다’

“환자 중심 재활병원 건립 꼭 해내겠다”

2012-2-20

‘환상통’을 아는가. 몸의 일부가 사고나 수술로 사라졌는데도 있는 것처럼 느껴져 참지 못할 고통을 겪는 증세다. 환자가 재활치료를 잘 받지 못할 경우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잦아진다고 한다. 백경학(48)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그 고통을 뼈저리게 안다.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은 뒤 극심한 환상통에 시달리는 탓이다. 우리나라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대로 된 재활병원 한 곳 없다는 사실도 아내를 보살피며 알았다. 그가 환자를 차별 없이 돌보는 재활병원을 짓는 데 남은 생을 건 이유다.
“스스로 장애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죠. 부부가 기자, 서울시 공무원이니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았고요. 아내가 사고를 당한 뒤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영국과 독일에서 1년 반 동안 치료를 받다가 아내의 안정을 위해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가난한 환자들의 재활치료를 외면하는 병원들의 냉혹한 태도였죠.”
백경학 이사는 1998년 여름 아내, 딸과 영국을 여행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2년간의 독일 연수를 마치고 귀국을 한 달여 남긴 때였다. 사고로 두 달 동안 혼수상태였던 아내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왼쪽 다리를 잃었다. 그리고 아내의 힘겨운 재활치료가 시작됐다.

“크게 다친 후 깨어난 환자들은 운동신경, 균형감각 등을 잃게 됩니다. 아내의 경우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고통스러워했죠. 그 후유증이 평생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재활치료의 중요성은 수백 번 강조해도 모자랍니다.”

백 이사는 아내가 더 나은 환경에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영국에서 독일로 병원을 옮겼다. 그는 체계적인 훈련으로 아내의 상태가 호전되는 모습에 기뻤고, 독일의 사회보장제도에 놀랐다.

“사고 전 독일에서 낸 보험료 덕에 병원비는 물론 의족, 자동차 리프트, 가해자를 상대로 한 8년간의 소송비까지 지원 받았죠. 20억 원은 족히 넘을 겁니다.”

그는 독일의 이러한 지원이 사회적 비용을 따져봤을 때 효율적이라고 했다. 한 사람을 잘 치료해 직장과 가정을 갖도록 하는 것이 수급자에게 주택, 보조기기, 생계비를 지원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적다는 것이다.

그의 가족은 3년 반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독일을 떠나기 전 주치의가 재활치료를 계속 하라고 당부했기에 곧 유명 재활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병실이 없으니 2~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유를 알았죠. 입원치료의 경우 의료보험 적용이 두 달밖에 안됩니다. 이 기간만 지나면 병원 측이 퇴원하라고 해 빈 자리가 생기는 거였죠.”

백 이사는 아내를 간호하며 수많은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봤다. 입원할 병원을 미리 몇 곳 예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빈 병실을 찾아 온가족이 전국을 떠도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국립대학 부속 병원조차 정부로부터 적자 규모를 추궁당할까봐 재활병원 설립을 꺼리는 게 현실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죠.”

그는 자연히 사회적 약자가 마음 편하게 치료 받을 수 있는 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당장 부지, 공사비, 의료진이 없어 병원 설립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먼저 비영리재단을 꾸리기로 했다. 12년간의 기자생활을 접고 소규모 맥주제조업을 시작했다. 재단 설립을 위한 재산·실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기자의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주어진 임무를 끝내는 훈련 같다고 봐요. 부지런히 사람을 만나 취재하고 필요한 것을 얻어내려면 일단 부딪쳐야 하니까요. 사업과 재단 운영을 도울 사람들을 찾아 엮는 데 큰 보탬이 됐죠.”

푸르메재단은 2005년 3월 정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환자 중심의 재활병원을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이 싹 튼 것이다.

-재단이 지을 재활병원은 어떤 곳인가.

“병원비를 낼 수 있냐, 없냐가 치료의 기준이 아닌 곳,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환자를 부둥켜안고 가는 곳이다. 지속적인 재활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120여만 명인데, 이 중 2%만 입원 치료를 받는다. 한 환자가 재활치료를 받으려면 월 평균 150여만 원이 든다.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데다 가족 중 한 명은 환자를 돌봐야 하니 이중으로 고통을 겪는다.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공적의료사업으로 정부, 지자체와 푸르메재단이 부담을 나누자는 것이다.”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텐데.

“매년 30만 명 이상이 교통사고와 질병 등으로 후천적인 장애인이 된다. 오늘 당장 나와 가족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애, 재활치료는 우리와 상관 없는 일이 아니다. 정부, 지자체와의 공공의료사업, 사회운동을 통한 국민 기금 마련, 기업의 꾸준한 사회공헌활동 등이 모아지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재활병원 건립은 가능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근 면담을 했는데, 지원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시장의 의지가 실무자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되느냐가 과제다.”

-재활병원 설립은 어디까지 왔나.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재활병원의 전 단계인 장애인 재활센터 ‘세종마을 푸르메센터’를 짓고 있다. 이곳은
7월1일 문을 열 예정으로 어린이 재활센터, 장애인 전용 치과, 종로장애인복지관으로 꾸며진다. 종로구에 센터를 기부체납하고 재단이 위탁운영하는 방식이다. 모두 85억 원이 드는데, 20억 원이 부족하다. 현재 관내 기업, 단체 등과 지원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마포구와도 푸르메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구가 부지를 제공하고 재단이 300여억 원을 들여 병원과 재활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연말께 시작될 것 같다. 병원 안에 주민간 교류·소통을 위한 도서관, 노인센터 등 복합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며, 장애인 재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에게 소아과, 내과 등 진료도 제공할 계획이다.”

-장애인 치과치료에도 힘을 쏟는데.

“2007년 7월부터 푸르메나눔치과를 운영해 저렴한 값으로 장애인들을 치료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이가 상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면 뇌성마비 등 2차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치과치료는 그래서 가장 절박하다. 장애인들은 치료 중 몸이 뒤틀리다보니 일반 치과에서 꺼려 간단한 치료조차 받기 힘들다. 치과치료는 앞으로도 역점을 두고 추진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가 가야 할 길은.

“정부가 적자를 걱정해 제도를 운영할 수 없다면 열정과 사명감을 가진 민간단체를 뽑아 투명하게 지원하고 감시하면 된다. 재활병원도 같은 맥락이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라지만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장애인이 편한 세상이면 모두가 편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다. 기부도 마찬가지다. 돈은 물론 시간, 재능 등 무엇이든 나눌 수 있다. 우리는 나눔이 행복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서울 영동고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CBS, 한겨레신문,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1996년부터 2년간 뮌헨대학 정치학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공부했고, 귀국 직전 아내의 교통사고로 재활병원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2002년 국내 최초로 하우스 맥주를 생산하는 ‘옥토버훼스트’를 세워 운영했고, 2005년 푸르메재단 설립 후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데일리노컷뉴스
이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