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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3,000명 모이니 기적이 일어났다”

“3,000명 모이니 기적이 일어났다”

사장부터 초등학생까지 3,000명이 이룬 기적, 푸르메 재활센터 4일 개소식

2012-09-03

장애 어린이들의 재활을 돕는 국내 유일의 전문 재활병원이 4일 문을 연다. 어린이 재활병원은 그동안 수익성이 낮아 번번이 좌절됐지만, 시민 3,000명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정신 차리고 봤더니 가슴 아래로 마비가 되어있는거에요. 정말 막막하죠. 심리적인 것 이런 걸 떠나서 일단 육체적으로 포크 잡는 법부터 사소한 일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나가야 하거든요.”

IT업계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불리는 이철재(43) 사장은 고교생이던 1988년, 차량이 뒤집어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뼈가 부러지면서 가슴 아래로 신경이 마비된 그에게 그나마 유일한 행운이 있었다면 사고를 당한 곳이 미국이었다는 것.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건너온지 2년 만에 사고를 당한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지원으로 8개월 동안 무상으로 입원 재활치료를 받았다. 이후 재활에 10개월간의 통원기간이 더 소요됐다.

“재활치료를 하면서 배운 것은 바로 ‘뻔뻔해지라’는 것이더군요. 망설이지말고 도움을 청하라는거죠. 장애를 입은 뒤에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가지 준비를 시켜주는 것이 바로 재활치료의 목적이죠.”

1년 반이 넘는 재활을 거쳐 이 씨는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을 하고, 자신이 원하던 창업을 했다. IT기업을 창업한 그는 얼마전까지 넥슨의 자회사인 쿼드디멘션스의 대표이사였다.

지금 일선에서 물러나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고 있는 그는 아마 한국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홀로서기에 실패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 1988년이면 아마 응급처치도 제대로 못받아서 살아 있지 못 했을 것 같아요. 또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지 못하면 몸 여기저기가 금방 고장이 납니다. 지금처럼 밖으로 다니지도 못했겠죠. 떠먹여 주는 것이 당장은 편해요. 하지만 혼자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떠먹여주는 것보다 홀로서기 도와줘야”…10억 원 쾌척

그래서 재활병원, 그것도 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을 세운다는 소식에 이철재 씨는 선뜻 10억 원을 내놨다.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병원에 걸 큰 그림도 3억 원에 가까운 돈을 주고 미리 구입해 병원에 기증했다.

어린이 재활병원은 그동안 국내에 2곳이 운영돼 왔으나, 수익성 부족으로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꼭 필요한 병원이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자 푸르메 재단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시민들의 기부로 운영되는 병원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종로구에서 공영주차장 부지를 무상 임대해줬고, 건축비용은 이철재 씨를 비롯한 3,000명의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했다. 소설가 고(故) 박완서 선생은 자신의 인세를 기부했고, 신경숙 씨는 상금을 털었다. 조무제 전 대법관은 급여의 10%를 기부하고 있다.

기부행렬이 이어지자 기업들도 동참했다. KB금융그룹과 신한은행, SK텔레콤 등이 각각 10억 원이 넘는 기금을 기탁했다. 병원 공사도 기부로 이뤄졌다. 이가건축사무소는 3억 원 넘게 드는 설계를 기부했고, 시공사인 보미건설은 수익 없이 원가로만 공사했다. 게임업체 넥슨은 어린이들을 위해 내부 디자인을 직접 꾸미는 재능기부도 했다. 노후대비용으로 마련한 경기도의 땅을 내놓은 이재식 씨 부부, 자신의 기초생활 수급비의 일부를 떼어 기부하는 장애인 수급자 등 일반인의 참여도 잇따랐다.

최연소 기부자로 이름을 올린 초등학교 5학년 이태희(12) 양은 지난 4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1,000원씩 기부하고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 양은 학교 인근의 푸르메 작은 도서관을 다니다가 재활병원 건립 소식을 듣고 기부를 자청했다. 가족이나 친구들도 모르게 꼬박꼬박 기부를 해 온 기특한 소녀다.

이 양은 “기부하는 것이 너무 적다”며 수줍어했다. 그러면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병원이 세워지면 재활받는 어린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 3,000명의 기적…앞으로도 계속된다

3,000명의 기적이 세운 ‘푸르메 어린이 재활센터’는 4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센터 건물에서 개소식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건립자체도 기적이지만 앞으로 운영하는 데는 더 많은 기적이 필요하다.

푸르메 재단 백경학 상임이사는 “형편이 어려운 장애 어린이 가정을 위해 보험혜택이 되는 치료만 하게되고, 재활을 위해 장기적인 치료를 할 예정”이라며 “사실상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기부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시민과 기업, 자치단체가 함께 힘을 모은 실험적인 제3섹터 형태로 운영되는 푸르메 재활센터가 앞으로도 계속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푸르메재단 기부문의 : 전화 02-720-7002 홈페이지 http://www.purme.org)

* CBS 장규석 기자 (hahoi@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