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행복한 베이커리’ 1호점 개점… 딸의 홀로서기에 아빠는 감사의 눈물

푸르메재단-SPC그룹, 지적장애인 재활 ‘행복한 베이커리’ 1호점

2012.09.27

“또래들과 다른 점이 많은 딸을 키우다 보니 부모로서 ‘미안하다’ ‘죄송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 덕분에 겸손해지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카페가 번창해서 제 딸처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26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장애인복지시설 푸르메센터에서 열린 ‘행복한 베이커리 카페’ 1호점 개점식. 지적장애인의 직업재활을 위해 만들어진 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게 된 이혜윤 양(19·서울여고 3년)은 직원 가족대표로 나선 아버지 이모 씨(52)의 인사말을 듣다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딸의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 26일 문을 연 ‘행복한 베이커리 카페’ 1호점의 지적장애인 바리스타들이 개점식 참석자들과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윤우 씨, 김현아 양, 김성수 푸르메재단 이사장, 조상호 SPC그룹 총괄사장, 한희정 씨, 이혜윤 양, 경현옥 애덕의 집 원장. SPC그룹 제공


○ 감추고 싶었던 가족의 비밀

이 씨가 지적장애 3급인 둘째딸 혜윤 양의 아버지로서 공개적인 자리에 선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가까운 친척 몇 명을 제외하면 이 씨 주변에서 혜윤 양의 상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혜윤 양의 장애를 숨긴 것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는 사회 분위기에서 딸의 장애가 알려지는 것이 가족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이 씨는 “‘가족대표로 인사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듣고 망설여졌지만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딸을 위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명함을 건네면서 “가족을 위해 나의 이름과 직업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돌 무렵이면 걷기 시작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혜윤 양은 생후 1년 4개월이 돼서야 겨우 일어설 정도로 발달이 더뎠다. ‘엄마’ ‘아빠’ 같은 간단한 말도 두 돌이 넘도록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자 또래와의 격차가 더 커졌지만 이 씨 부부는 딸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야금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딸을 특수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인 국악전통예술중에 입학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이 씨 부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혜윤 양은 고교 입시에 실패했고 결국 특수학급이 있는 고교로 진학했다. 이 씨는 “고교 입학 후에야 혜윤이가 더 이상 정상적인 아이들과 경쟁하며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지적장애 등급을 받았다”며 “부모로서 딸의 장애는 그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 “내가 떠난 후에도 딸이 행복했으면…”

혜윤 양은 이 씨의 인사말이 끝난 뒤 무대에 올라 가야금을 연주했다. 80여 명의 참석자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지만 정작 이 씨는 “혜윤이가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평소 실력만큼 보여주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딸이 수줍음이 많아 혼자 연습할 때는 잘하다가도 막상 선생님이나 관객 앞에 서면 실수가 많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저와 아내가 없어도 딸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이 씨 부부가 딸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커피 공부를 시작한 뒤 카페를 여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씨는 “딸이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언제까지나 여기서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 않느냐”며 “아내가 ‘내가 카페를 열어 혜윤이를 데리고 일하면 어떻겠느냐’고 해 여러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 “카페 100호점 열면 점장 할래요.”

행복한 베이커리는 혜윤 양 같은 장애인들을 위해 푸르메재단과 SPC그룹(회장 허영인)이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애덕의 집 소울베이커리’와 손잡고 시작한 사업이다. 푸르메재단이 장소 제공과 운영, 애덕의집이 직업교육과 빵 생산, SPC그룹이 각종 물품 지원과 매장 운영 노하우 전수를 맡았다.

이 카페에는 혜윤 양 외에도 지적장애가 있는 젊은이 3명이 바리스타로 일한다. 김윤우 씨(26·지적장애 3급)는 “이곳에 출근하게 돼 매우 기쁘다. 카페가 잘돼 100호점을 내게 되면 꼭 점장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희정 씨(19·지적장애 3급)와 김현아 양(18·지적장애 3급)도 “매장을 반짝반짝 닦아놓겠다” “빵을 드시는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김성수 푸르메재단 이사장(성공회 주교)은 “장애인이 직업을 갖는 일은 ‘사람’이 되는 소중한 일인데 대선후보들이 이 문제에는 너무 무관심하다”며 “카페가 번창할 수 있도록 이곳의 빵과 커피를 널리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