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진국 칼럼 - 모든 장애인 가족에게 메달을

[김진국 칼럼] 모든 장애인 가족에게 메달을

2018-03-19

평창 패럴림픽 어제 저녁 폐막
‘나도 노력하면 … ’ 감동과 용기 줘
노력할 수 없는 장애인도 많고
본인과 가족이 모든 고통 떠안아
우리 사회가 부담 좀 더 나눠야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평창 패럴림픽이 어제 저녁 많은 감동을 남기고 폐막했다. 겨울패럴림픽 사상 처음으로 따낸 금메달만 감동이 아니다. 참가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스토리를 품고 있다.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평창의 설산에 아름다운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7.5㎞ 좌식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신의현(38) 선수는 “실의에 잠긴 많은 장애인분이 내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2006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모두 잃었다. 수일 만에 깨어난 그는 하반신을 보고 ‘왜 살렸느냐’고 울부짖으며 3년을 절망 속에 살았다. 어머니가 설득해 휠체어 농구, 장애인 아이스하키, 휠체어 사이클, 노르딕 스키 등을 배우게 됐다. 금메달을 딴 뒤 신씨는 “어머니를 웃게 해 드려 기쁘다”고 말했다.

메달만 중요한 게 아니다. 메달리스트가 아니라도 눈물로 어려움을 이겨낸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으로 충분히 감동적이다.

장애인 노르딕 스키 권상현(21) 선수는 분만 사고로 왼팔 신경이 죽었다. 자존감을 잃고 꿈도 희망도 없이 은둔생활을 했다. 몸무게가 119㎏까지 불었다. 중학생 시절 체육 교사의 도움으로 운동을 시작한 이후 꿈과 희망과 웃음을 되찾았다. 3년 동안 무려 50㎏을 뺐다. 2015년부터 전국체전에서 연속 우승하고, 지난해 미국 캐스퍼월드컵에서 4개 부문에 1위를 했다. 그는 “방안에만 있을 때는 그런 생활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 많은 장애인분이 방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인 노르딕 스키 이도연(46) 선수는 “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달렸다. 10일 바이애슬론 1.1㎞를 시작해 어제 크로스컨트리 혼성계주까지 7경기를 뛰었다. “몸이 부서지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렸다. 이씨는 1991년 건물에서 낙상해 다쳤지만 ‘나처럼 바르고 강하게 자라라’는 말을 행동으로 세 딸에게 전했다. 장애인 탁구 선수, 육상선수, 핸드 사이클 선수 생활도 했다.

휠체어에 탄 사람을 미는 모습

휠체어 컬링의 방민자(56) 선수는 93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다. 2년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사느냐 마느냐’로 고민했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사고 이후 10년간 세상을 등지고 십자수만 하고 살았다. 여동생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다. 방 선수 역시 눈물로 뒷바라지해준 어머니에게 메달을 걸어주는 게 소원이다.  

별들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많은 사람이 힘을 얻는다. 나도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다고 용기를 낸다. 성적이 꼭 중요한 건 아니다. 17일 아이스하키팀은 동메달을 딴 뒤 아이스링크 한가운데 태극기를 펼쳐놓고 애국가를 불렀다. 선수도 울고, 영부인 김정숙 여사도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세상의 관심은 기대만큼 충분하지 않다. 금메달을 따도 그때뿐이다. 메달을 따지 못한 장애인 선수, 운동을 엄두도 못 내는 장애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발달장애아 부모들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발달장애인을 그린 영화 ‘채비’가 나온 무렵이다. 한 어머니는 “그렇지만 상위 1%의 이야기”라고 했다. 영화 ‘말아톤’이 나온 직후 주변 친척들로부터 “너는 왜 그렇게 안 키우느냐”는 따가운 시선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6년 말 등록장애인은 251만 명이다. 인구의 6% 정도다. 그 가운데 지체장애인이 절반 정도다. 그런데 한국의 등록장애인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가장 낮다. 김인규 장애인재활협회장은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인구의 15%, 약 10억 명을 장애 인구라고 추정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23%다. 한국 인종이 특별해 그런가. 아니다. 정부가 장애인으로 인정하는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원도 인색하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장애인 치료 불모 실태에 분노해 재활병원 설립에 투신했다. 영국에서 교통사고로 재활치료를 하게 된 부인과 함께 귀국해 선진국과 너무 큰 차이를 체험한 때문이다.

장애인은 본인만 힘든 게 아니다. 가족에게 모든 부담과 고통을 떠넘긴다. 장애아를 둔 어머니는 본인이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패럴림픽 출전 선수들이 어머니를 들먹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땅의 장애인과 그 가족은 모두 메달을 받을 만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그 부담을 좀 더 나누어 떠안을 때가 됐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22452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