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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한체력영웅’ 한영빈

‘1등’ 역도 선수를 꿈꾸는 청년

“친구들이 저 보러 무한체력이래요.” 서울 노원구 청소년수련관 역도훈련장. 지적장애를 가진 한영빈(20) 씨가 하루 2~3시간씩 역도훈련을 받습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영빈 씨는 다부진 체격에 탄탄한 근육을 자랑합니다. 제 몸무게보다 50kg은 더 나가는 바벨을 번쩍 들어 올립니다. “천천히 멈춰. 올려. 쭉. 그렇지!” 영빈 씨를 지도하는 이진승 감독이 외치자 영빈 씨는 구부렸던 무릎을 펴고 일어섭니다.

지적장애인 역도 선수로 활약 중인 한영빈 씨
지적장애인 역도 선수로 활약 중인 한영빈 씨

이번에는 발 앞에 놓인 바벨을 허리까지 들어 올리는 데드리프트를 할 차례입니다. 양쪽에 무거운 원판을 끼운 뒤 두 손에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묻히고 잠시 숨을 고릅니다. 바벨을 올리는 순간 호흡을 참고 이를 앙다문 영빈 씨의 얼굴에서 얼마나 온 힘을 쏟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무거운 거 드는 게 재밌어요. 올해 목표는 180~190kg이에요. 그러려면 밥도 많이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해요.”

역도를 본격적으로 배운 지 고작 3년밖에 안 됐지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66kg급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실력파입니다. 바벨 181kg을 들어 한국 신기록도 세웠습니다. 이진승 감독은 “영빈이 힘이 엄청 세요. 유명 선수들이 자기 체중의 세 배를 드는데, 그 정도 드는 거면 대단한 거예요.”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바벨을 들고 있는 한영빈 씨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바벨을 들고 있는 한영빈 씨

역도는 영빈 씨를 넓은 세상으로 데려다줬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관계 맺는 일이 서툴지만, 오랜 훈련을 통해 실력도 늘고 성격도 밝아졌다고 코치들은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올해 대회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영빈 씨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이두박근을 단련시키는 덤벨과 보조운동을 빼놓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열심히 연습해야 200kg 들 수 있어요. 제 목표는 1등이거든요.”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서

가슴엔 역도 선수의 꿈이 가득하지만 당장은 취업을 하고 싶습니다. 지적‧자폐성장애를 아우르는 발달장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마땅찮은 게 현실입니다. 그나마 영빈 씨는 고등학생 때 학교와 연계된 종로장애인복지관을 3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또래 장애친구들과 함께 자신에게 맞는 적성을 찾고 다양한 직무를 탐색하는 직업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공공근로의 일종인 문화재 환경을 정비하는 문화재키퍼입니다. 매일 아침 영빈 씨는 종로3가역 부근의 탑골공원으로 출근합니다. 전날 사람들이 아무렇게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고 갈퀴로 수북이 쌓인 낙엽을 익숙하게 쓸어 담습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참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돈 벌어서 데이트도 하고 선물도 주고 영화도 볼 수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합니다.

하루 4시간씩 탑골공원을 청소하는 한영빈 씨
하루 4시간씩 탑골공원을 청소하는 한영빈 씨

이렇게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하고 받는 월급은 70여만 원입니다. 1년 참여하면 6개월 쉬어야 하는 문화재키퍼를 영빈 씨는 빠짐없이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입니다. 최성국 문화재키퍼 반장은 “처음에는 혼자서 시끄러운 소리를 자주 냈었는데 지금은 덜해요. 자기가 무한체력이니까 전부 다 시키라고 할 정도로 열정이 넘치죠. 알려주는 대로 뭐라도 하려고 해요”라며 기특하다고 귀띔합니다.

영빈 씨는 분류‧포장‧생산 작업에도 틈틈이 참여합니다. 오늘은 업체에서 급하게 주문한 봉투 포장 물량을 맞춰 야 합니다. 하얀 봉투 10장을 비닐에 넣고 스티커패드를 붙이면 됩니다. 10여 명의 장애인 동료들과 나란히 마주보고 앉아 각자 맡은 역할을 묵묵히 해냅니다. 30초면 하나를 완성하는 영빈 씨의 손놀림이 재빠릅니다. 쇼핑백 조립‧카드 포장 등 단순하고 반복적인 직무지만, 양 손을 움직이며 소근육을 훈련하기에 좋습니다.

한영빈 씨가 종로장애인복지관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한영빈 씨가 종로장애인복지관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탁진경 직업재활사는 영빈 씨에 대해 “작업 환경이 갖춰진 공간에서 꾸준히 훈련받다보니 예전에 비해 감정조절이 잘 되고 정서적으로 안정됐어요.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하고 취업의지가 높아요”라고 말합니다. 물론, 일반 기업체에 취업하려면 업무 이해력, 직무 태도, 직장 예절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요즘 영빈 씨는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올 6월, 종로장애인복지관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 꼭 취업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분식집에서 설거지를 할까, 택배 일을 할까. 어떤 일이 좋을지 생각해요.” 3월에는 세차직무훈련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웹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스무 살 청년, 영빈 씨. 스스로 원하는 길을 선택해 무거운 바벨을 들 때와 같은 뿌듯함을 만끽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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