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섹션

[주간조선] 재활병원 2년 대기···3개월 만에 또 이동

재활병원 2년 대기···3개월 만에 또 이동

2018-02-05

‘병원 난민’ 전락한 9만 장애아동

 

열두 살 은주는 아직 걷지 못한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 겨우 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계속 치료를 받다 보면 자기 힘으로 휠체어를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은주 엄마는 소망한다.

“문제는 치료의 연속성이 없다는 거예요. 병원은 적고 대기 인원은 많으니 은주처럼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한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요. 은주는 12년 살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기 같아서 한 번 치료사와 관계를 맺는 데 무척 오래 걸리거든요. 치료사에게 적응이 되고 은주의 상태를 치료사가 정확히 파악할 무렵이 되면 병원을 옮겨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고향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대기업에 다니던 은주 엄마의 삶은 은주가 태어나고 나서 완전히 바뀌었다. 임신한 지 29주 만에 미숙아로 태어난 은주는 뇌성마비를 앓았다. 손과 발을 쓰지 못했고 말도 못했다. 은주 엄마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은주의 치료에 매달렸다.

“병원비를 충당하는 일보다 더 힘든 게 병원을 예약하는 일이었습니다. 1~2년에 한 번씩 은주는 병원을 옮겨야 했어요. 거의 모든 병원이 그래요. 좀 괜찮은 병원에 가려면 1~2년 대기하는 일은 기본이었죠. 병원을 옮기면서 다음 병원에 예약을 거는 거예요.”

이것은 은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48개월이 된 서준이는 아예 병원에서 완곡히 거절하는 말을 들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서준이는 자폐 정도가 심하지 않아 걷고 말하는 데 지장이 없다. “낮에는 온종일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낮병동’을 알아봤는데 ‘낮병동’이 지역에는 몇 군데 없거든요. 병원에서 워낙 중증 장애아가 많으니 서준이는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우회적으로 제안하더군요. 저도 마냥 고집을 부릴 수 없어서 서준이처럼 경증의 자폐아가 치료받을 수 있는 센터에 대기 예약을 걸어두고 반 년이 넘게 집에 있어요.”

대신 집을 방문해 아이와 일대일로 치료를 받게 해준다는 언어치료사를 구했다. ‘홈티’라고 부르는 방문치료는 편법이지만 병원을 전전하는 데 지친 장애아 부모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대기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지 못하니 저처럼 홈티를 하다가 진료 예약이 잡히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만 18세 이하 장애아동의 수는 8만9646명으로 9만명에 가깝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양승조 위원장이 국정감사를 통해 밝힌 내용을 보면 이 중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장애아동은 2만1000여명이다. 하지만 치료를 받고 있는 아동은 75%인 1만6000여명에 불과하다. 장애아동을 위한 어린이 재활전문병원은 전국에 딱 한 곳,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뿐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전경.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전경.

돈 안 되는 재활병원

지난 1월 30일, 하루 평균 400~500여명의 어린이가 진료받는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는 활기가 넘쳤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5명을 비롯해 정신건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치과 전문의가 함께하는 이 병원은 재활치료가 필요한 장애아동에게 ‘꿈의 병원’ 같은 곳이다. 입원병동 91병상, 낮병동 50병상에 달하는 규모도 그렇거니와 이곳의 수준 높은 치료를 기대하는 환자들도 많다.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 개원할 무렵부터 대기 인원에 이름을 올려놓은 열 살 승원이도 그중 하나다. 승원이는 뇌병변 장애 1급으로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하다. “승원이 같은 경우는 여러 분야에 통합적인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치료 수준이 갖춰진 곳에서 치료받고 싶은데 그런 곳은 한정돼 있죠. 어린이 재활전문병원이 생긴다는 소리에 뛸 듯이 기뻤지만 아직 승원이 차례는 아닌가 봐요.” 승원이처럼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치료받기를 기다리는 장애아동은 수백 명에 달한다.

고재춘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기획조정실장은 장애아동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기다림’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어린이 재활전문 치료기관이 적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어린이 재활뿐 아니라 우리나라 재활전문 치료기관은 선진국에 비해서 적은 숫자입니다. 그건 재활전문 치료기관을 운영하기 어려운 의료체계 때문입니다.”

넥슨어린이재활병원만 해도 한 해 적자 규모가 수십억원에 달한다. 병원 재단, 지자체, 후원금으로 충당하고는 있지만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저희는 최초로 생긴 어린이 재활전문병원이라 관심을 받고 도와주는 곳이 많은데도 그렇습니다. 민간영역에서 의사가 개별적으로 어린이 재활병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린이 재활치료의 수가가 턱없이 낮다는 것은 큰 문제다. 한국 건강보험 체계에서 재활치료에 대한 수가는 낮게 책정이 돼 있고 그 범위도 좁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완치된 환자가 건강보험 혜택을 노리고 고의적으로 장기입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입원기간이 늘어날수록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하는 입원료가 줄어든다. 환자의 입원기간이 3개월이 지나면 절반 가까이 지원이 줄어드는데 이 제도가 재활치료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병원 입장에서는 장기입원 환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대개 재활환자들은 갑자기 발병해서 신체기능을 회복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현재 제도하에서는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옮겨야 하니 치료가 연속적일 수 없다. 3개월이 지나 퇴원한다고 해서 곧바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환자들은 다시 다른 병원에 입원한다. ‘재활난민’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거기다 환자가 받을 수 있는 재활치료의 종류도 한정적이다.

대개 재활치료란 발병하고 나서 신체기능을 회복하는 치료로 국한해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최근 재활치료의 목표는 신체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서 가정과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이에 따르면 재활치료의 과정이나,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재활치료도 조금 달라진다. 최근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차유진 세명대 작업치료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에서는 여전히 재활치료가 신체기능을 회복하는 치료에만 집중돼 있고 그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발병해서 손상된 신체기능을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급성기’가 지나면 재활치료의 초점은 환자가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다시 직업활동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일상생활동작훈련은 거의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받더라도 수가가 낮게 책정돼 병원에서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성인 재활치료만 해도 낮은 수가와 제한된 범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어린이 재활치료로 눈을 돌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어린이 재활치료는 기본적으로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일단 어린이 재활치료는 성인처럼 단기간에 이뤄지기 힘들다. 의사·치료사·어린이 3인의 소통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간단한 치료를 시작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같은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더 늦게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또 장애아동의 대다수는 성인 환자처럼 ‘일상생활’을 겪어본 적이 없다. 자연히 재활치료의 목표가 다르다. 대한소아재활발달의학회 이사장인 김성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어린이 재활환자에 대한 목표는 ‘일상생활로의 복귀(rehabilitation)’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만드는 것(habilitation)’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언어능력이 손상된 재활환자의 경우도 성인 재활환자는 언어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린이 환자는 처음부터 이를 가르쳐야 한다. 또 보호자가 없으면 진료받기 어려운 어린이 환자의 특성상 예약 부도율도 높은 편이다.

병원 입장에서 어린이 재활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성인 재활환자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데도 어린이 재활치료 수가는 그렇지 않아도 낮은 성인과 동일하다.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가 난다는 어린이 재활병원 관계자들의 말은 상투적인 볼멘소리가 아니다. 애초에 어린이 재활치료는 수요·공급의 측면에서 보면 예상수요자(target population)가 적다. 김성우 교수에 따르면 어린이에게서 제일 흔한 뇌성마비 환자의 발병률은 대강 1000명 중 2명꼴로 환자 규모가 작다 보니 전체 재활의학과 전문의 2000여명 중 어린이 재활치료 전문의는 100여명에 그친다.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의 치료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의 치료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장애아동 때문에 무너지는 가정

말하자면 어린이 재활치료는 ‘돈이 안 된다’. 서울 강남 지역에 근무하는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처음부터 재활전문의를 선택한 사람 중에 돈을 벌려고 한 사람은 없을 텐데도 결국은 돈 문제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돈을 벌고 싶었다면 개업하기 쉬운 진료과를 선택했을 겁니다. 재활치료에 대한 열의가 있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병원을 운영하려면 실질적인 돈 문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들에게 일반적인 기능치료뿐 아니라 다양한 치료를 제안하고 싶은데 그러면 환자 입장에서는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필요한 치료인데 보험 적용이 안 되니까요.”

의료계에서 재활치료에 대한 보험 수가를 현실화하자고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 병원들도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대부분의 병원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방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충북 충주에 사는 일곱 살 지우는 일 년에 2~3개월 정도는 병원에 입원해 지낸다. 지체장애 2급 환자인 지우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급성질환을 앓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입원하지 않고서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우 엄마는 “매번 지우를 데리고 진료 때마다 서울과 충주를 왕복할 수 없으니 얼마간 입원을 시켜 집중 치료를 받다가 퇴원하고 나서는 비용이 더 비싼 사설 치료기관에 정기적으로 가는 식으로 치료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보니 막상 입원이 필요한 급성환자들이 입원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병상은 늘 부족하고 정작 필요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와 자주 병원을 찾을 수 있는 환자가 섞여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방 거점마다 어린이 재활병원을 짓겠다는 계획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병원을 짓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수가를 조정하고 재활치료 체계를 바꾸지 않는 이상은 재활병원을 지어도 적자에 시달리고 효율적으로 관리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독일은 장애아동에 대한 효율적인 의료체계로 선도적인 나라 중 하나다. 장애아동마다 주치의가 있는데 이 주치의가 아동에 대한 거의 모든 접근 권한을 가진다. 주치의가 장애아동에게 필요한 치료를 제안하고 시행할 뿐 아니라 교육기관, 사회복지기관과 직접 연락하고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조율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어린이 재활치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통합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고재춘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기획조정실장의 말을 들어보자.
“어린이 재활치료는 어린이가 장차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성장시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분야에서 조화롭게 이뤄져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아이의 신체기능을 발달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학교에서는 발달 단계에 맞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죠. 사회복지기관에서는 학교와 병원에서 이뤄지는 교육과 치료에 맞게 필요한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모든 것이 각각 따로 놀고 있어요.”

병원과 학교가 정보를 공유할 수 없고 사회복지기관에서도 장애아동이 어떤 치료를 받는지 일일이 파악할 수 없다. 자연히 이 모든 것을 총괄하고 조절하는 것은 장애아동 부모의 몫이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승원이 엄마의 하소연이다.

“부모들이 알아서 정보를 찾아와 공유할 뿐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이가 어떤 교육을 받는 것이 좋을지, 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부모가 알아봐야 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장애아동이 태어나면 온 가족의 삶이 바뀐다. 승원이 엄마는 캐나다 유학까지 다녀온 전도유망한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오롯이 승원이를 위해 시간을 쓰는 중이다. 열두 살 은주 부모는 은주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별거 아닌 별거를 한다. 많게는 한 달에 300만~400만원이 드는 은주의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은주 아빠는 지방 제조공장에서 추가근무를 자청해가며 일한다. 대기업 과장이던 은주 엄마는 ‘경력단절 여성’이 됐다. 은주에게 필요한 치료, 정보를 찾느라 친구들과의 관계는 멀어지고 친지들과도 소원해졌다. 자폐장애가 있는 서준이 엄마는 파트타임으로 콜센터에서 일한다. 서준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손재주를 살려 자신만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지우 엄마는 친정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사실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장애아동이 태어났다고 가정이 무너지면 누가 기꺼이 아이를 낳고 기르려고 할까요.” 고재춘 실장은 장애아동을 기르는 일은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장애아동에게 적절한 재활치료를 제공하는 일은 ‘소외된 사람을 배려하는 정책’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사회에 한몫을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아이를 길러내는 일이기도 하고, 어떤 아이든 길러낼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은 병원에 전화해 “대기인원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가며 다음 치료기관을 물색하는 중이다. 오늘도 승원이를 차에 싣고 학교며 병원을 오가는 승원이 엄마의 말이다.

“그저 아이가 제때 적당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늘 기다려왔기 때문에 저희는 기다림에 익숙해요.”

김효정 기자 soboru@chosun.com 

출처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494100012&ctcd=C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