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정부가 방치한 장애아동 복지시설…수천만원 대안학교 낳았다

정부가 방치한 장애아동 복지시설…수천만원 대안학교 낳았다

2018-01-21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장애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권호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장애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권호욱 기자

“자 이게 뭐지?” 원장이 책상 앞에 놓은 작은 컵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물었다. 만 5세 남자아이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원장은 아이 엄마에게 “손끝으로 사물을 훑으며 지나가는 행동이나 까치발을 하는 모습, 손톱을 물어뜯는 것을 보니 자폐가 맞다”고 말했다. 아이 엄마가 “병원에서 진단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만 보고 어떻게 자폐로 판단할 수 있느냐”고 따졌지만 원장은 단호했다. 원장은 발달학교를 다니려면 집이 가까울수록 좋으니 집 근처로 이사 올 것을 권유했다. 발달학교 인근에는 학교가 운영하는 기숙사 형태의 다세대주택이 있었다.

그는 아이 엄마에게 “아이는 고기능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아스퍼거 증후군은 머리가 텅 비어 있는 상태라고 했다. 성향상 아이는 모든 정보를 한쪽 귀로 듣고 한쪽으로 흘려버리기 때문에 수업을 최대한 열심히 들어 상태를 호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원장은 입학 조건으로 후원금 1000만원을 요구했다. 아이 엄마는 11개월간 아이 수업료, 치료비 등 명목으로 3452만원을 학교에 냈다. 학교 수업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됐다.

아이들 상태에 대한 무자격자들의 진단

아이의 장애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들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는 발달대안학교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치료실을 전전하거나, 장애특수학교에 입학할 수 없는 부모들은 장애아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로 대안학교를 수소문해 등록하고 있다. 장애특수학교는 중증장애아들이 우선적으로 입학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는 전국에 이 같은 형태의 발달장애 대안학교가 얼마나 설치·운영되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16일 <주간경향>과의 전화통화에서 “유치원, 초·중고교 과정과 치료실이 함께 운영되는 형태는 학교가 아니다”라면서 “이런 형태의 대안학교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발달장애아동 부모의 심리를 이용해 수천만 원의 돈이 거래되고 있지만 정부는 실태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주간경향>은 16일 장애아동 부모 커뮤니티에서 비교적 유명한 발달장애아동 대안학교 세 곳을 취재했다. 해당 학교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대안학교’ ‘발달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한 학부모의 도움을 받아 4세 아이가 노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해당 대안학교에 입소 가능 여부를 알아봤다. 경기도의 ㄱ발달학교 대표는 “아이가 전정기능과 청각처리기능이 많이 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을 내렸다.

또 다른 경기도 내 발달학교 원장은 “자폐스팩트럼 장애를 의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이들은 소아정신과 전문의 자격증이 없는 무자격자들이다. 아이들의 상태를 검진할 수 있는 자격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지속적으로 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발달장애아동이 입소 후 비장애아동과 비슷한 수준까지 호전된 케이스를 제시하며 사실상의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ㄱ발달학교 대표는 “지금 우리 학교에서 제일 (상태가) 괜찮은 아이가 35개월짜리”라며 “지금은 거의 일반아이 수준의 언어·인지기능을 하고 있고, 올해 퇴소 후 일반 어린이집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두 자리밖에 남지 않아 최대한 빨리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ㄱ발달학교는 월~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40분까지 수업을 하는 조건으로 매월 180만원을 요구했다. 이어 “사는 곳이 지방일 경우 발달학교 인근으로 이사하는 게 아이 발달에 도움이 된다”며 숙소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학교가 직접 운영하는 임대숙소는 월 45만원의 임대료를 내면 입학 기간 동안 거주할 수 있었다.

검증되지 않은 고압산소치료 권유도

이곳에서는 패키지 상품도 운영했다. 학비, 숙소임대료, 토마티스(청·지각훈련요법) 또는 iLS(청각통합훈련), 고압산소치료까지 1년 패키지로 할 경우 2400만원이 들었다. 방과후 수업이나 개별수업을 할 경우 별도의 비용이 추가됐다. 주저하는 반응을 보이자 대표는 “(제시한 아이와) 비슷한 또래에서 시작해 올해 일반 어린이집에 가게 된 아이가 4명이나 된다”며 “보통 1년 정도만 다녀보면 일반 어린이집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 학부모는 이 학교에 2년 패키지를 선불로 납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의료계에서 고압산소치료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치료방식이다. 일산 백병원 박은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압산소치료는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나 괴사성 근막염, 색전증 치료에 사용되는 방식”이라며 “지적장애나 자폐증환자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는 없다”고 말했다. 또 “만약 환자와 부모가 고압산소치료를 먼저 받겠다고 하더라도 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대안학교는 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운영하며 월 회비는 130만원을 낼 것을 요구했다. 1년이면 1560만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안학교라는 명칭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안학교’라는 용어 자체가 정규 공교육을 벗어나 대안으로 만든 학교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는 설립 후 인가를 받을 목적일 경우 관할 교육청에, 인가를 받지 않을 경우 관할 구청에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인가 받은 대안학교는 교육청으로부터 일정 예산 지원과 함께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비인가 대안학교의 경우 별도의 예산 지원이 없는 대신 자체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이 가능하다. 비인가 대안학교라도 설립 당시 관할 구청에 신고했다면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밖 청소년지원센터’가 운영과정에서의 불법·탈법행위를 막아주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게 된다.

시술과 꾸준한 재활치료로 정상보행이 가능해진 소아 뇌성마비 환아들이 첫 걸음을 떼는 모습.
시술과 꾸준한 재활치료로 정상보행이 가능해진 소아 뇌성마비 환아들이 첫 걸음을 떼는 모습.

문제는 신고를 하지 않고, 인가도 받지 않은 대안학교다. 서울시 학교밖 청소년지원센터 백승준 센터장은 16일 “비인가 대안학교는 수업료를 받을 경우 관할 세무서에 신고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그외 시설면에서 설치기준이나 교사 자격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교육청에 신고하지 않고, 비인가로 운영하는 곳은 어떠한 불법행위가 일어나더라도 확인할 수가 없다”면서 “그건 교육청의 권한 밖의 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과도한 수업료 역시 제재할 방법이 없다.

백 센터장은 “신고 후 운영할 경우 각 지자체의 학교밖 센터에서 수업료가 적정한지, 교육프로그램이 적절한지 여부를 확인하고 개선할 것을 요구할 수 있지만 신고조차 하지 않은 비인가 대안학교는 정부의 그 어떤 기관에서도 관리·감독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시설 역시 만 3세 이상의 어린아이들을 수용하는 시설의 경우 화재관리부터 각종 사고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규격시설을 갖춰야 하지만 미신고 비인가 대안학교의 경우 시설 관련 규정도 전무하다. 사실상 대안학교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 한 관계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는 있었고 실제 미신고 비인가 대안학교를 관리·감독할 법안을 올려도 매번 폐기되거나 상정되지 않는다”면서 “(대안학교 관련) 이익집단이 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법안 발의 자체가 무산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2월에는 경기도의 한 발달장애아동 대안학교 내 학대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수원지검은 해당 고소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했지만 민사소송은 현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면서 학교의 실체가 드러난 바 있다. 그 학교 역시 미신고 비인가 발달장애 대안학교였다. 현재 해당 학교는 자체 폐쇄조치를 한 상태다.

실태파악도 안된 대안학교 ‘사각지대’

정부는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라는 핑계 뒤에 숨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미신고 비인가 대안학교라도 피해신고가 접수되거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인지하면 담당공무원이 해당 학교를 방문해 실태파악을 하고, 불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검찰에 직접 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간경향> 취재 결과 해당 교육지원청은 2016년 당시 문제가 불거진 대안학교와 관련해 고압산소치료에 대한 부분만 조사하고 끝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합법도, 불법도 아닌 법의 사각지대 안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학비를 받으며 장애아 부모를 좀먹는 사설 치료실이 판을 쳐도 정부는 방관만 하고 있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발달장애아동들이 정부로부터 적절한 치료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데 있다. 보건복지부는 바우처제도를 운영, 장애등록을 받거나 전문의로부터 장애진단서를 받은 아동들에게 각 지자체별 장애인복지관이나 시ㆍ군ㆍ구의 지정을 받은 사설 치료실에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바우처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장애아동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애아동이 복지관에서 물리치료, 감각통합치료, 언어치료 등을 받기 위해서는 적게는 2~3개월, 많게는 3년 이상을 대기해야 한다. 바우처 지원대상이 되더라도 시설이 없어 대기해야 하는 장애아동의 부모들은 결국 공적 영역을 벗어나 사설기관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금희 푸르메재단 사무국장은 “푸르매재단이 운영하는 센터는 신청 시점으로부터 통상 3개월 정도 대기기간이 소요된다”면서 “그러나 학령기 즉, 초등학생부터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다보니 몇 년의 대기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느 쪽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장애아동 부모들은 결국 인증 받지 않은 발달장애 학교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피해도 고스란히 아이와 부모의 몫이 되는 셈이다. 서울시 학교밖 센터 백승준 센터장은 “우리의 법 현실에서는 미신고 비인가 형태 대안학교의 틈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학교에서 불법행위가 자행되거나 피해를 입었을 경우 학부모들이 피해신고를 하고 적극적으로 구제에 나서는 것 외에는 달리 해결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210936001&code=94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