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중2병’ 우리 아이, 감정코칭이 보약

 ‘중2병’ 우리 아이, 감정코칭이 보약

2016-05-25

김대중 일러스트

 넥슨재활병원·청소년정신의학회, ‘응답하라 중2병’ 공개 강좌
“강요 말고 상호 감정 존중해야…ADHD 의심되면 치료도 필요”

중학교 2학년생인 오서현(14·가명)양의 어머니는 올들어 확 달라진 딸의 태도에 당황할 때가 적지 않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잘 다녀왔니?’라고 물어도 딸은 언제부턴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딸은 외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고 혼자 방에 있고 싶어하는 시간이 늘었다. 학교생활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집에서 공부를 하라고 하면,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금만 야단을 쳐도 눈물을 글썽이며 외려 화를 내기 일쑤다. 대화를 하려다 다투는 일이 많아지면서, 서현양과 어머니는 집에서도 카카오톡 메시지로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양의 어머니는 “똑같은 잔소리도 부모가 하면 듣지 않는데 서현이가 잘 따르는 학교 선생님이 이야기하면 잘 듣는다”며 서운해했다.

■ 중2병이란 무엇? 오양처럼 중학교 2학년을 전후한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혼란이나 불만과 같은 심리적 상태를 속칭 ‘중2병’이라 부른다. 부모 입장에서는 갑자기 말이 안통하고 자녀에 대한 이해와 예측이 어려워지는 시기다. 의학적 용어나 질환은 아니다. 1999년 일본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나는 아직 중2병에 걸려있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5일 서울 상암동 넥슨어린이재활병원 3층 강당에서는 서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과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주최한 ‘응답하라 중2병’ 공개 강좌가 열렸다.

이승민 민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이날 강연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안들으려 하고 본인의 생각이 전부 정답이라고 여기는 한편, 이전보다 자기 주장을 훨씬 더 강하게 표명하기 때문에 부모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중2병에 해당된다. 청소년이 부모와 분리·독립되는 과정에서, 청소년은 부모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부모는 자신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면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녀가 중2병을 겪는 시기는 부모-자녀 관계의 새로운 균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80%의 청소년은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가지만 갈등이 심해지면 가족관계가 악화될 소지가 있다.

■ 부모는 어떻게 대처? 예방을 위해서는 청소년기 이전부터 갈등해소를 모색할 수 있는 부모-자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 입장에선 자신의 양육 방식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원장은 “무시형, 부정형, 자유방임형은 줄이고 감정 코칭형을 늘려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무시형 부모’는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자녀에게 “숙제를 할 시간인데 무슨 소리냐”고 윽박지른다. 부모가 생각할 때 자녀가 지금 해야 할 일만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자녀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화를 낸 행동 자체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부정형’, 자녀의 문제해결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자유방임형’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 원장은 강조한다. 그는 “자녀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거나 모든 문제를 고쳐야한다고 인식하지 않으면서 상호 감정을 존중하는 ‘감정코칭형’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청소년 자녀와의 대화는 어떤 말이든 가급적 짧게 끝내는 것이 좋으며, 지시를 할 때도 말로 반복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제재를 가해서 스스로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유도하는 것이 좋다.

■ ADHD 의심되면 중2병을 겪는 일부는 부모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초·중·고생의 5~8% 정도가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의력이 떨어지고 과잉행동 혹은 충동행위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공개 강좌에서 하지혜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부모가 맞벌이거나 양육을 잘못해서 그렇다거나, 교육환경의 문제 때문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ADHD는 뇌의 발달과정에서 기능적 이상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큰 오해가 ‘부모가 잘 하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뇌 발달이 모두 완성되는 시기는 20대 초반은 되어야 한다. 집중력과 부적절한 활동 억제, 감정조절 등을 담당하는 뇌안의 전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ADHD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런 ADHD는 사회불안장애나 분노조절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정신의학적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약물치료와 부모역할 훈련,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게 좋다고 하지혜 과장은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454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