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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을 위하여

여인 다섯의 보모 여행

올 여름의 초입에 서산으로 1박2일의 짧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인 다섯 명과 소녀 한 명의, 이른바 ‘보모여행’이었다.

우리 다섯 명의 여인들은 발달장애를 매개로 만난 사이인데 서울시청을 가운데 두고 서로 방사선상으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바람에(시시콜콜한 일로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 딱 좋은 거리라는 뜻이다) 주로 카카오톡방에서 일상을 상세히 보고하면서 살고(놀고) 있었다.

두 손을 뻗으며 펄쩍 뛰고 있는 다섯 사람

여행의 발단은 이랬다. 우리 가운데 한 여인인 ㄱ이 몇 달 전부터 사춘기에 들어선 딸아이와 끝없는 전쟁에 들어갔는데, 보고되는 소식으로 판단하건대 그것은 한 여인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값을 훨씬 넘어선 상태였다. ‘이 악물고 참기’와 ‘고집스런 겨루기’ 사이의 희망 없는 흥정 속에서 그의 하루하루는 바람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사방을 치받는 것 같았다.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모두 다 바닥에 흩어져 있거나 창밖으로 던져지거나 변기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아이는 제 몸에 먹을 것과 잠자기를 들이지 않아, 음식은 뱉어내고 잠투정은 밤새 이어졌다. 제 머리에 가위질을 하는가 하면, 자기 몸을 이리저리 접어서 책장 속에도 꾸겨 넣고 뒤집어도 놓고 현관에도 걸치고 하다가는 이내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소녀의 어미이자 우리들의 막내인 ㄱ이 그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지만, 그 여유 속에는 상당한 양의 허세와 위장이 들어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사태가 길어지면서 그의 입에서 혹시나 비명소리가 나올까봐, 아니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무겁게 침묵해 버릴까봐 무서워진 우리는 1박2일 나들이 모임을 급조했다. 거창할 것도 없이 목표는 오직 ‘ㄱ의 하룻밤 잠을 위하여’였다. 우리는 호기롭게 “우리가 보모가 되어 아이를 볼 테니 당신은 안심하고 꿀잠을 자!”라고 큰소리를 쳤다. ‘설마 네 명의 보모가 아이 하나를 볼 수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개와 함께 산책하고 있는 소녀

번잡하지 않고 아름다운 바닷가의 하얀 펜션에서, 비까지 쏟아지는 낭만적인 여행지에서, 시장에서 사온 밤새 먹을 새우며 고기며 알코올 앞에서, 역시나, 네 명의 보모는 아이 하나를 볼 수 없었다. 우리는 돌아가며 잠깐씩 아이를 무릎에 뉘고 정성껏 주무르고 쓰다듬으며, 자신의 손이 아이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신통력을 발휘했으면 하는 부질없는 열망을 가졌었지만, 아이는 잠깐 누워주었다가 곧 망아지처럼 튀어 올랐다.

결국 ㄱ은 언니들의 여행을 망치겠다면서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아이가 어미와 함께 자기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긴 잠투정과 초단기 토끼잠으로 밤을 지새우는 동안 네 명의 늙은 보모들은 속없는 수다들을 떨다 잠들었다. 커피를 백 잔쯤 마시고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것처럼, 아이의 가슴은 24시간 내내 지나치게 각성되어 벌렁거리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이런저런 부질없는 진단들을 했던 것 같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우리의 ㄱ은 그래도 여럿이 함께하는 나들이가 즐겁고 신난다고 했다.

얼마 전에 ㄱ은 겨울 파커를 입고 젖은 겨울 이불을 끌어다 베란다에서 물놀이를 하는 딸아이 사진을 보여줬다. “이건 또 무슨 퍼포먼스일까요”라면서 ㄱ은 깔깔거렸다. 우리는 재미있다고 키득키득 거렸다. 무언가 저지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아이의, 하루를 몽땅 채우는 온갖 저지레를 참아내는 ㄱ은 얼마나 대단한가. 얼마나 두터운 내공을 쌓은 걸까.

강가 쉼터에 걸터 앉아 있는 사람

우리는 아마도 ㄱ이 방전될까봐 무서웠던 것이다. 하루 8640초 동안 찰나도 쉬지 않고 삶에 사역하다가, 방전되는 줄도 모르고 방전되어 까무룩 쓰러졌다가, 미처 충전되기도 전에 일어나 사역하다 또 까무러치는 그의 일상을 그저 관전만 하는 미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깔거리며 버텨가는 그가 마치 우리들의 덜 쌓인 내공을 대신 쌓아주는 표상이라도 되는 듯이 여겼었다. 그가 잘 버티는 일상이라면 우리에게도 일상은 만만한 것일 테니까.

우리는 여행을 떠날 거다

차가 달리는 길로 뛰어들고, 소리지르며 펄쩍펄쩍 뛰며, 음식을 손으로 흐트러뜨리고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때론 젖은 수건처럼 무기력하게 쳐져버리는 아이의 어미가 우리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겠지만, 그것을 오직 마음으로만, 닿는 몸뚱이로만 짐작하는 게 우리들이다.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숨을 쉬며 생존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 일상을 채우는 게 너무 미안해서 잠이 든 아이 곁에서 밤새우는 어미가 우리들이다. 온 몸을 다 소진시켜서 죽으면 내 것이라고는 머리카락 하나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연기가 될 몸뚱이, 이게 우리들이다. 혹시나 먼지 낀 어느 날 벌판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문득 엄마가 없음을 알고 멍하니 서있을 때, 그 옆에서 닿지 못하는 손으로 아이를 미친 듯 감싸는 바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들이다.

들판에 피어난 꽃들

찻길로 뛰어드는 아이를 달려가 붙잡고, 펄펄 뛰는 아이를 끌어안고, 고집을 받아주고, 주저앉는 아이의 겨드랑이를 받쳐 일으키는 어미들에게 세상은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저렇게 힘든 아이를 왜 데리고 나왔누……”

11월 쌀쌀한 초겨울에, 우리 다섯 여인과 소녀 1인은 3박4일 제주를 걸을 거다. 바람 부는 벌판에서 소리치고 깔깔대고 수다 떨고 노래 부르고……, 그리고 아이를 붙잡으러 다니면서.

*글=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동작지회장)

김종옥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김종옥은, 가끔 철학 인문학 관련 책을 쓰지만, 가장 쓰고 싶어 하는 SF소설은 아직 쓰지 못했다. 가끔 인문학 강의도 하고 지역 내 마을사람들 일에 두루 참견하며 바쁜 척하고 지내고 있다. 쓰임과 즐김이 있는 좌파적 삶을 살고 싶어 하며, 매일같이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철학의 시작> <처음 만나는 공자> <공자 지하철을 타다(공저)> <장자 사기를 당하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만한 곳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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