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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

[경계없는 탐방]

 

하늘을 나는 동안 동행한 친구인 사사는 배앓이를 심하게 했다. 사사뿐만 아니다. 나 또한 귀가 째지는 듯한 고통에 하늘 길에서 어찌할 바 몰라 했다. 고통을 참고 견뎌온 4시간. 방콕에 도착했다. 수속을 마치고 대합실로 나오니 깨끗하고 쾌척하다. 갑자기 천국에 온 듯하다. 거리도 사람들도 깨끗하다.

택시를 잡아타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인 정글뉴스로 향했다. 방콕 중심가의 민가 밀집지역에 자리한 숙소는 조용하고 아늑하다. 묵은 떼를 벗겨야 할 것 같아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하니 살결의 촉감이 옥돌처럼 매끄럽고 머릿결은 비단결 같이 부드럽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부드러움인가. 방문을 열고 밖을 보니 한국의 1980년대 초가 연상된다.

▲ 태국 방콕을 대표하는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

요기거리를 찾기 위해 방콕의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 로드’로 발길을 이어갔다. 세계 3대 여행자의 거리로 불리는 카오산 로드는 수많은 배낭여행자의 안식처로서 여행의 시작점이자 끝지점이라고 말한다. 카오산 로드는 무더운 여름날의 나른한 오후 같고 때로는 광란의 파티를 하는 밤 풍경 같다. 나라별로 음식점이 즐비하다. 노점에서는 코코아 열매를 갈아 묽게 반죽해 빈대떡처럼 얇게 펴서 굽는다. 그 맛이 어떤지 먹어보니 제법 달콤하면서도 담백해 자꾸 당긴다.

카오산 로드에서는 여행자들이 물건을 직거래하는 풍경도 종종 볼 수 있다. 배낭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끝낸 사람들이 서로 필요한 물건을 직거래한다. 나른한 오후의 여행자 거리의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느릿느릿한 슬로우 화면에서 보는 듯하다. 내 휠체어를 미느라 구슬땀을 흘린 일행은 햇볕을 피해 나무그늘을 찾았다.

잎이 우거진 아름드리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그 밑엔 허름한 옷차림의 아주머니가 무언가를 팔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일 모과보다 조금 작게 생긴 새파란 망고 열매를 가늘게 채를 썰고 식초와 소금 고춧가루를 넣어 무쳐낸 것이었다. 한 봉지 사서 먹어보니 시큼털털하니 별로다.

저녁 때가 되어가니 카오산 로드는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식당가를 지나는데 낯익은 간판이 보인다. ‘동대문’이라고 쓰인 간판이 반가워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장은 한국 사람이다. 메뉴도 한국 음식 일색이다. 비빔밥, 열무국수, 빈대떡, 막걸리, 김치전, 김치찌개 등 다 먹고 싶었지만 열무국수가 가장 맛있다는 주인장의 추천에 열무국수와 빈대떡을 시켰다. 동대문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꼭 거쳐 가는 곳이라고 한다. 외국에 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한국 사람만 봐도 반갑고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지나가면 공연히 말을 걸고 싶어진다. 식당 안은 한국말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와글와글 시끄럽다.

▲ 밤이 되자 카오산 로드는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열무국수가 등장했다. 살짝 익은 열무 김치국물에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가운데 소면이 돌돌 말아 예쁘게 앉아있다. 젓가락을 휘휘 돌리면서 국수를 한입 크게 입에 넣는다. 한국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었다. 어찌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후덥지근한 아열대 기온 탓에 시원한 열무국수는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랫배가 아프다. 화장실을 급하게 찾는데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방콕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을 리 만무고 급한 대로 식당 화장실로 갔다. 일행의 도움으로 변기에 앉아서 다행이다. 여행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이 화장실이다. 태국에서는 장애인 화장실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음식조절을 했다. 아침에 숙소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나서 하루 종일 물 대신 음료수를 마셨다. 혹시나 물 때문에 배앓이를 할까 걱정되서였다.

▲ 길거리에서 만난 태국의 장애인이 목발을 짚고 걸어가는 모습
식당 주인은 휠체어를 이용해서 온 여행자는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의 장애인 관련 정책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태국은 더 하다고 했다. 장애가 심한 사람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어 집에만 있거나 시설로 보내진다고 한다.

동대문을 자주 찾는다고 하는 태국 장애인 ‘와프’를 만났다. 와프는 태국 전역을 여행하다 차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다고 한다. 짧은 머리에 검은 피부, 바짝 마른 체구의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와프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휠체어로 여행하며 사는 것이 그의 삶이라며 언젠가 한국에 꼭 방문하고 싶어했다. 서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꿈도 같아 처음 만났어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와프는 세계 곳곳을 여행한 이야기를 신이 나서 풀어놓는다.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은 찰나처럼 잘도 지나간다.

와프는 가장 혹독했던 여행지와 가장 편리했던 여행지를 이야기했다. 독일 여행은 편리했지만 싱거웠다고 한다. 가장 힘든 여행지는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나라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이 가장 심한 나라라고 한다. 편의시설이 좋은 선진국을 여행할 때는 혼자서 가고 그렇지 않은 나라를 여행할 때는 동생과 함께한다.

나도 와프와 다르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전동휠체어를 사용해 혼자서도 얼마든지 여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편의시설이 미비한 나라를 여행할 때는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한다. 동반자가 다르기 때문에 여행은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매력 있는 행위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고독하지만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 나를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된다. 둘이서 하는 여행은 심심하지 않고 상대와 더 친해질 수 있다. 셋 이상의 여행은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충돌이 생겨 삐걱거리게 되고 타협점을 찾아 화해하며 다시 여행을 이어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여행과 인생은 공통점이 많다.

다음날 뚝뚝이(오토바이를 개조한 이동수단)를 타고 방콕 시내를 돌았다. 불교의 나라답게 곳곳에 사원이 즐비하다. 누구나 어디에서든 가까이에서 부처님을 접할 수 있다. 한 사원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검은색의 헐벗은 부처상에 금박 옷을 입히고 있었다. 신용카드만한 얇은 습자지 같은 종이를 부처님의 몸에 붙이고 나서 절을 한다. 사원 안에는 다양한 불상도 많다. 엄청난 크기의 부처님이 앞마당에 편안한 자세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고 사람들이 그 주위를 빙빙 돌며 합장한다.

▲ 여행자의 발길을 사로잡는 카오산 로드의 다양한 음식
나도 금박 판박이를 사서 부천님 몸에 한 줌 입혀주었다. 불심을 표현할 수 있는 금박종이로 모자이크처럼 한 점 한 점 부처님에게로 가고 있었다. 사찰은 휠체어 접근도 가능해 부처님에게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한국의 사찰과 사뭇 다르다. 한국의 사찰은 외부 건물에는 접근할 수 있지만 대웅전의 내부까지는 접근이 힘들다.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보급 보물이어도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건축물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결여된 건물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는 질병도 없고 장애도 없어 계단을 따라 걸어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손상 있는 내 몸도 좋다. 그러니 내 모습 그대로 휠체어를 사용해서 계단이 아닌 완만한 천국의 경사길로 가고 싶다. 이곳의 사찰이 그렇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곳곳에 포진해 있어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높낮음이 없고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신에게로 가는 경사길이 아닐는지.

태국은 마사지로 유명한 나라이다. 사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마사지샵으로 갔다. 휠체어로도 충분히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샵 개장 기념 특별 세일이라며 저렴한 금액인 350바트로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10평 남짓한 내실에 매트리스 서너 개가 놓여있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웠다. 이윽고 태국 여성이 침대로 들어와 앉더니 합장하며 인사를 건네고 마사지를 시작한다. 발끝부터 주무르기 시작하는데 비명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발가락 끝부터 발 중간지점을 꾹 누르니 너무 아프다. 여자들은 태국말로 중얼거리며 비명소리를 낼 때마다 웃어댄다. 한 시간 남짓 마사지가 끝나니 온몸이 얼얼하고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린다.

▲ 방콕의 젖줄인 짜오 프라야 강(Chao Phraya River)에 배가 정박해 있다.
한국에서도 시각장애인에게 몇 번의 마사지를 받아본 적이 있다. 마사지를 받을 당시에는 아프지만 끝나고 나면 굳어 있던 어깨 근육이 풀리고 온몸이 노곤해져 잠이 절로 온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특히 더 그렇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동을 할 수 없다 보니 근육은 뭉칠 대로 뭉쳐 팔도 안 올라가고 조금만 만져도 비명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뭉친 근육은 운동으로 풀어줄 수 있지만 운동할 수 없는 장애인은 마사지로 풀어준다. 그러니 마사지는 장애인에겐 운동의 효과까지 있는 셈이다.

저녁 때가 되어 숙소로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어두워진 방콕 골목은 낮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어 시원해졌다.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문득 타국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간신히 한 방향을 택해 ‘맞겠지’ 하며 오른쪽으로 접어드니 캄캄한 벌판이 펼쳐졌다.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고 민가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 곳으로 계속 가야하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낮선 곳에서 숙소를 찾아야하는 막막함.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 순간 마치 이승을 떠나 저승길을 가는 듯 불안하고 막막하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 아무도 없는 곳에 툭 던져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방향도 잃고 사람도 없고 게다가 춥고 배고프고 민가까지 없어 완전히 혼자일 때가 있다. 이승과 뚝 떨어져 저승으로 가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저승길은 이런 느낌의 길이 아닐까. 동양권에선 저승사자와 동행하지만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는 자신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죽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죽음 후의 모습이 지금 혼자 서있는 이 길처럼 걸어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신을 차리고 불빛을 따라 발길을 돌렸다. 멀리서 보이는 아늑하고 정겨운 불빛은 낯선 곳에 혼자 던져진 외로운 여행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일상을 떠나 또 다른 일상을 만나는 것이 여행인 것처럼.

▲ 다음 여정을 향해 짐을 싣고 잠시 정차한 휠체어

문의
• 휠체어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글, 사진= 전윤선 여행작가

전윤선 작가는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합니다. 한국장애인문화관광센터(휠체어배낭여행) 대표로서 인권•문화 활동가이자 에이블뉴스 ‘휠체어 배낭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BS 3라디오 ‘함께하는 세상만들기, 휠체어로 지구한바퀴’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자유롭고 즐거운 여행길을 안내하기 위해 오늘도 전국을 누빕니다.

“신체적 손상이 있든 없든, 사람은 자유롭게 이동하고 접근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길 원한다. 손상을 가진 사람이 이동하고 접근하는데 방해물이 가로막지 않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나의 동그란 발은 오늘도 세상을 향해 자유로운 여행을 떠난다. 자유가 거기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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