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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백의 길] 아버지의 투박한 용서, 어머니의 섬세한 위로

 

<아버지의 투박한 용서, 어머니의 섬세한 위로>

오랜만에 시인 정호승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반가움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다 오래전부터 병석에 누워 계신 아버님 안부를 여쭸습니다. 선생님의 아버님은 오랜 병환으로 집과 병원을 오가며 생활하신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나팔꽃>이란 시에서 점점 눈이 멀고 쇠약해지시는 아버지를 표현하시기도 했습니다.

▲ 정호승 선생님

나팔꽃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 둔
까만 나팔 꽃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안타깝게도 얼마 전 선생님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말씀하시는 정호승 선생님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습니다. 선생님은 요즘 읽고 계신 책을 저에게 권해 주셨습니다. 한 사제가 렘브란트 그림을 보고 마음속에 나타난 변화를 적은 책입니다. 선생님은 이 책을 읽은 뒤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움이 더욱 절실해지셨다고 합니다.

정호승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이 바로 헨리 나우웬의 <탕자의 귀향>입니다.

저자인 나우웬은 1931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예수회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 뒤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 교수로 있던 중 렘브란트의 명화 <탕자의 귀향>을 1983년 처음으로 접하게 됩니다. 당시 그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폭력과 전쟁을 종식시키지 위해 가톨릭 공동체가 무언가를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누비는 고단한 순회강연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 나우웬

 

 

우연히 프랑스 트로즐리에 있는 지적장애인 공동체 라르쉬(L’Arche:방주라는 뜻)의 친구 사무실에 찾아갔다가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주색 망토를 넉넉하게 걸친 노인이 남루한 차림으로 무릎을 꿇은 젊은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는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친밀감과 붉은 망토의 온화한 톤, 젊은이의 겉옷에서 반사되는 황금빛, 그리고 일찍이 느낀 적이 없는 감동을 준 것은 젊은이의 어깨를 감싸쥔 노인의 두 손이었습니다.

그냥 스쳐지나 갈 수 있었던 그림과의 만남이 저자인 나우웬이 길고 긴 영혼의 순례를 떠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림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17세 유명화가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 ~ 1669)가 그린 것입니다. 그림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 내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 그가 모든 것을 탕진했을 때 그 지방에 큰 흉년이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다.

▲ 렘브란트의 <귀향>(1666-1669). 캔버스에 유화, 264.2×205.1cm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가, 몸을 의탁하였다. 그 사람은 그를 들로 보내서 돼지들을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좀 먹고 배를 채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 이렇게 말씀드려야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주십시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췄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의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큰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는데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음악소리와 춤추면서 노는 소리를 듣고 종 하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어보았다. 종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을 반겨서 주인 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누가복음 15장 11-32 표준 번역>

 

 

▲ 집 떠나는 탕자

 

 

운명적인 만남이 이런 것일까요. 저자 나우웬은 렘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향>을 본 뒤 삶이 송두리째 변하게 됩니다. 돌아갈 곳은 몸담고 있는 대학이 아니라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삶을 확인하게 되면서 그는 하버드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프랑스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 ‘데이브레이크’의 식구가 됩니다. 1년 동안 과연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 자신을 시험하기로 합니다. 기나긴 떠돌이 생활에 완전히 탈진한 아들처럼 그는 아버지의 포근한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대학생을 가르치는 일 대신 사목생활을 하며 지적장애인들과 함께 산다는 건 렘브란트 그림 속에 있는 아버지가 방황하다 돌아온 아들을 끌어안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곳은 악착같이 붙들고 싶은 모든 것들을 놓아버려야 하는 자리이자, 빛의 자리요, 진리의 자리요, 사랑의 현장이었으니까요.

이곳에서 열심히 기도하며 장애인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서로 치유하는 생활을 하던 저자는 그가 그렇게도 갈구하던 그림을 볼 기회를 얻게 됩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걸려있는 렘브란트의 불후의 명작입니다. 가로 1.8미터, 세로 2.4미터의 대작인 이 그림은 예카테리나 대제가 1766년 그 그림을 사들인 뒤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줄곧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나우엔은 며칠에 걸쳐 시간 가는줄 모르고 넋을 놓고 이 그림을 바라보다가 비로소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탕자의 귀향>을 처음 본 순간부터 작가는 세 단계의 영적인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아마 작가뿐 아니라 렘브란트의 그림에 몰입한 순간 그림에 나온 주인공들을 보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과 역할을 그림 속 인물에 투영하게 됩니다.

▲ 귀향

첫 단계는 내가 곧 둘째아들 탕자가 되는 경험입니다. 감옥이나 군대, 수용소에서는 머리칼을 자릅니다. 개인을 구별하는 특징을 박탈하는 것이지요. 렘브란트는 탕자의 머리를 깎고 여읜 몸뚱이를 간신히 감출 수 있는 통옷에 닳아빠진 신발마저도 벗겨진 상처투성이의 왼발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런 그가 향할 수 있는 곳은 한시도 잊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고향을 향한 마음입니다. 작가는 아버지가 작은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품에 끌어안는 따뜻한 장면을 대하는 순간, 방황하는 아들이 바로 자신이라고 깨닫습니다. 아마 그런 영적인 깨달음이 그로 하여금 20년 동안 대학생활을 접고 라르쉬 공동체에서 장애인 식구들을 돌보며 목회자로 일할 결심을 하게 하는 삶으로 이끌게 됩니다.

두 번째 여정은 큰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친구와의 대화도중 “글쎄 자넨 도리어 큰아들과 닮지 않았나 싶은데?”하는 한마디가 내면 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습니다. 작가는 스스로를 착실하게 본분을 다하면서 부모와 교수, 신부서품을 받고 나서는 주교와 하느님께 늘 순종하면서 방탕함과 낭비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습니다.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전통을 따르며, 집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니 둘째아들처럼 질투와 분노, 고민, 완고한 태도, 독선의 삶이었습니다. 얼마나 불평을 입에 달고 지냈으며 얼마나 적대감에 찌든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작은아들로 여길 수 있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작가는 스스로에게 분명히 자신은 집을 떠나지 않은 큰아들이었지만 길을 잃고 방황하는 동생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농장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집에 있다는 기쁨을 맛본 적도, 아버지가 주신 것에 감사하기는 커녕 세상에서 고통 받고 돌아와 따뜻한 환영을 받는 동생을 시샘하는 원망 가득한 인간이 자신임을 저자는 절감하게 됩니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내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하고 불평하는 큰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작가의 모습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 렘브란트 자화상 (출처 : 네이버캐스트/contents.nhn?rid=51&contents_id=2567 ,
네이버블로그/popsyim?Redirect=Log&logNo=70090657116)

 

 

세 번째로 작가와 이 책을 읽는 우리가 아버지를 찾아 가는 여행, 어떻게 보면 아버지가 되어서 아들과 세상 사람들을 용서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렘브란트는 63년간 삶을 살면서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목격했을 뿐 아니라 세 아들과 두 딸, 그리고 함께 살았던 두 여인의 죽음을 지켜봐야했습니다. 눈에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했던 장성한 아들이 혼인하지 얼마 되지 않아 스물여섯의 나이로 죽을 때도 그 옆에 있었습니다.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누렸던 렘브란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가고, 노년에는 파산을 당해 빈털터리가 되고 맙니다. 이 시기에는 집중적으로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죽기 전 붓을 잡는 것 조차 쉽지 않았던 그가 <탕자의 귀향>속에 있는 아버지를 그리면서 얼마나 혼신의 힘을 쏟았을 지 짐작이 됩니다. 그것은 깊은 상처를 입고 돌아온 아들을 앞에 두고 말없이 눈물지으며 은혜를 베푸는 아버지,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입니다. 작가는 화가 렘브란트 자신이 방탕한 아들이었다가 점차 용서하는 아버지가 되어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두 손

 

 

그런데 그림 속의 아버지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손입니다. 왼손은 강하고 억세 보입니다. 마디가 굵고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손입니다. 하지만 오른손은 딴판입니다. 세련되고 부드럽고 단정합니다.

아들의 어깨와 등을 어루만지고 토닥이며 위로와 위안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 어머니의 손입니다. 아버지의 손과 어머니의 손이 아들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작가 나우엔은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어루만지는 노인을 볼 때 면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있는 아버지뿐 아니라 온몸으로 자식을 따뜻하게 감싸 안은 채 아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탕자의 귀향은 바로 하느님으로의 복귀이자 존재의 근원으로의 회귀하는 것이지요. 아버지 손속에 녹아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에 굶주린 가난한 마음을 공유해야 참다운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거지요. 렘브란트는 그림 속에서 아버지를 그리면서 자식들의 태도를 초월한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외로움과 분노가 있었겠지만 고통과 눈물을 거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외로움은 끝없는 고독이 되었고 분노는 무한한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 나우엔은 나이 들어 쪼글쪼글해진 자신의 손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내밀라고, 집을 찾아온 모든 이들의 어깨에 내려놓으라고. 아버지와 하느님의 그 어마어마한 사랑에서 비롯된 축복을 베풀라고 주님이 주신 손이라고 말입니다.

*글= 백경학 상임이사 (푸르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