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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이야기] 태권도

태권도를 배우는 아들의 품띠 심사가 지난 달 국기원에서 열렸다. 한 달 이상 준비에 매달린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가족이 총출동했다. 체육관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아들이 모습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막내라 그런지 작년에 품띠를 딴 큰 아이 때보다 걱정이 많이 되었다. 앞 번호를 배정받은 아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또래에 비해 작은 아들이 혹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까봐 걱정되어 시킨 태권도였다. 띠가 올라가는 재미가 있는 건지 몇 달 전부터 품띠를 딴다는 기대감에 아들은 상기되어 있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로 체육관의 열기는 뜨거웠다.

태권도 품띠 심사는 세 가지를 본다. 심사위원이 호명하는 품새를 시연하는 품새 동작, 정해진 상대방과 승부를 해보는 겨루기, 주먹의 힘으로 나무판을 깨는 송판 격파. 그중에서도 품새가 가장 중요해서 도장에서도 몇 주에 걸쳐 집중 연습을 시켰다. 자세가 안 나오는 아이는 늦은 시간까지 맹연습한 끝에 오늘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심사가 시작되었다. 걱정했던 품새 동작을 아들은 틀리지 않고 잘 해냈다. 잠시 기다린 끝에 겨루기도 무난하게 넘어갔다. 큰 아이와 붙어서 조바심이 들었지만 상대방의 발차기는 적당히 막아냈고 기회가 될 때마다 키 높이로 발차기를 해댔다. 잘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긴장이 풀렸다. 이제 송판 격파만 마치면 오늘의 일정이 끝나게 된다. 적당한 힘으로만 내려친다면 송판을 어렵지 않게 깨질 것이다. 더구나 편의성을 위해선지 나무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립식 송판을 준비해서 더 쉽게 깨질 것이다.

아이들이 순서대로 송판 앞에 서서 심사위원의 격파 지시를 기다렸다. 무릎을 꿇고 내려치는 아들의 뒷모습이 비장해 보였다. 격파가 끝난 아이들은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가 아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왠지 불안했다. 아뿔싸. 아들만 송판을 격파하지 못한 것이다. 심사위원은 재차 기회를 주는 것 같았고 아들은 다시 한 번 힘껏 송판을 내리쳤다. 하지만 세 차례의 기회에도 아들만 깨지지 않은 송판을 들고 일어섰다. 순식간에 가족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어려운 품새를 틀린 것도 아니고 연습도 필요 없다는 송판 격파에서 통과를 못할 줄이야.

심사가 끝나면 가기로 했던 외식도 취소하고 침묵과 어색함 속에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치도 못한 아들의 실수에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들은 잔뜩 풀이 죽은 채 집으로 돌아와서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주말의 우리 집은 냉기만 가득했다.

초등학교 3학년쯤에 나도 태권도를 배웠다. 아들이 약해서 맞고 다닐까봐 걱정이 많았던 어머니의 추천으로 내가 경험한 첫 번째 사교육이 되었다. 하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다. 두 달쯤 다닌 끝에 노란띠로 태권도를 그만두었다. 이유는 무예 교육의 필수라는 사범님의 호통을 이겨내지 못했다. 발차기가 서툴다는 말에 상처받아 집으로 달려와 버린 것이다. 그 날 이후로 태권도는 평생의 짐으로 남았다. 그래서 아들이 누구보다 태권도를 잘해주었으면 하고 바란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두 달도 견디지 못한 태권도를 아들은 1년이 넘도록 다니고 있다. 나는 쉽게 포기했지만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잘 하고 있다. 질책을 받아야 하는 건 아들이 아니라 나였다. 며칠 후 우연히 아들의 일기장을 볼 기회가 있었다. 12월 7일로 시작하는 그림일기장에는 혼자만 격파를 못하고 앉아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격파를 못해서 속이 많이 상했다는 아들의 일기를 읽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상처를 받았을 아들에게 오히려 화를 퍼부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아이들은 자란다는데 도움은 고사하고 사기만 꺽은 아빠가 되었다. 조금 느린 듯 자라지만 배운 것은 틀리는 법이 없는 성실한 아들이었다. 문제는 아들이 아니라 아빠의 조급함이었다.
아들의 승품 심사를 통해 내 마음 속, 띠 하나가 올라간 기분이다.
노란띠 다음이니까 이제 녹색쯤.
아들을 따라가려면 한 참 멀었다.

*글 = 한광수 팀장 (홍보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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