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이야기] 아름다운 그녀, 힐링을 선물하다

지난 9월 10일. 하루 종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국민의 관심을 받은 사람이 있다. 바로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인 이지선 씨. 이지선 씨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하여 자신이 2000년에 당한 교통사고와 그로인해 변화된 삶을 이야기했다. 연예인도 아닌 그녀가 한 시간 분량의 방송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사회가 간절히 바라던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강렬히 남겼기 때문이다. 포기부터 찾는 절망의 시대에 우리의 마음을 열고 귀를 세우게 한 그녀를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SBS 힐링캠프에 참여한 이지선 씨. 사고 전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사고를 통해  발견한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SBS방송 캡쳐) 
SBS 힐링캠프에 참여한 이지선 씨. 사고 전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사고를 통해 발견한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SBS방송 캡쳐) 

 사고는 당한 게 아니라 만난 것이다.

불행은 너무나 갑자기 찾아왔다. 대학생이던 2000년 7월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귀가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음주운전자의 SUV차량이 이지선 씨가 타고 있던 차를 덮치면서 화염 속에 갇히게 된다. 오빠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병실에서 깨어보니 마치 외계인의 모습을 한 본인을 발견한다. 이지선 씨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절망이었다. 전신에 55%를 덮은 3도의 중화상. 손가락을 모두 잘라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나가던 의사의 말은 애교에 불과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살아있는 것이 더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오빠는 “너를 차에서 꺼내서 이런 고통을 만나게 해줬다.”고 펑펑 울었다. 하지만 모두가 좌절했을 때 그녀는 더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리고 사고 난 날을 두 번째 생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힘겨운 몸이지만 새로 태어났다고 믿었다. 사고는 당한 게 아니라 만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40여 차례의 수술을 이겨내다.

계속된 불행은 그녀를 그냥두지 않았다. 치료가 급한데 의료계의 파업으로 수술을 제대로 받기 어려웠다. 치료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죽음의 문턱에서 삶이라는 선물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녀는 기억한다. 사고 후 처음 먹게 된 물 맛을. 물이 이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맛이었다. 살아있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작지만 소소한 기쁨을 잊을 수 없었다. 피부 이식과 재활을 거치면서 그녀의 얼굴은 조금씩 회복되었다. 사고 68일 만에 걸음마를 떼었고 앙상해진 팔을 보면서도 농담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되었다. 손가락을 잘라내는 수술로 오른손으로 글을 쓰기 힘들었지만 양손잡이가 되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40여 차례의 수술과 7개월간의 병원 생활도 이지선 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나는 연예인이다.

“쯧쯧쯧”

한때 이지선 씨가 가장 싫어했던 소리다. 화상을 입어 불쌍하다는 표현이지만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다. 식당에 가면 사람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자신을 쳐다본다. 이런 불편함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연예인이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맘을 고쳐먹으니 연예인이 받는 관심과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을 끔찍이 사랑하는 오빠는 늘 경호원이었고 엄마는 24시간 함께하며 운전사가 되어 주었다. 본인의 이름으로 된 팬 카페가 생겼고 병원이 여의도라서 방송국 근처도 자주 지나게 되었다. 연예인이 몰래 한다는 성형수술도 그녀는 누구보다 많이 받았다. 달리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많은 세상, 당당히 살기로 했다.


스스로 이겨내고 세상과 마주하다.

몇 년 후, 이지선 씨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다니던 대학교를 찾았다. 학교는 많이 변해있었다. 옛날 생각이 들어 우울해질까봐 걱정했지만 반갑게 맞이해준 후배들과 선생님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오히려 살아서 다시 모교를 찾았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고 이후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지선~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혼자 세상에 버려진 줄 알았는데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계셨다.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눠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장애인을 위한 또 다른 삶


(왼쪽)이지선 씨는 트위터를 통해 ‘장애 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 짓기 ARS 전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오른쪽)재활병원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참가한 2009년 뉴욕마라톤. 풀코스 완주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고 했지만 시민들의 응원 소리에 끝까지 달렸다. 중환자실에서 누워있던 고통을 생각하면 마라톤 풀코스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왼쪽)이지선 씨는 트위터를 통해 ‘장애 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 짓기 ARS 전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오른쪽)재활병원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참가한 2009년 뉴욕마라톤. 풀코스 완주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고 했지만 시민들의 응원 소리에 끝까지 달렸다. 중환자실에서 누워있던 고통을 생각하면 마라톤 풀코스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지선 씨는 2005년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재활병원이 없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장애어린이가 수만 명에 이르고 있다. 재활치료의 어려움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더 많은 것을 배워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던 그녀가 사회복지(재활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미국 UCLA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느라 바쁘지만 장애어린이를 위한 사랑은 늘 적극적이다. 매월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장애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 짓기 ARS 전화 캠페인’을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


마음이 훨씬 아름다운 그녀

이지선 씨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힐링캠프를 통해 “모든 걸 잃었다고 절망한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사고 이전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었다.”며 무한 긍정을 표현했다. “지금의 마음으로 예전의 얼굴로 사는 걸 굳이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그걸 갖겠다고 지금의 행복을 포기할 순 없다.”는 말을 통해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힐링을 선물했다. 사고 이후 행복의 비밀번호를 알게 되었다는 그녀. 우리에게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 알려주고 있다.


*글= 한광수 팀장 (홍보사업팀)

*사진= 푸르메재단 DB









   

이지선과 함께 기부하는 방법 


* 한 통에 2,000원, 기부전화 060-700-1002

* <기적의 손잡기>캠페인에 참여하기 : http://bit.ly/1pRw3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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