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이야기] 행복한 날

술을 좋아합니다. 요즘 유행어를 빌리자면 ‘단언컨대’ 술을 좋아합니다. 좋아해서 그런지 자주 마십니다. 비오는 날에는 막걸리, 부대찌개에는 소주, 치킨에는 맥주.....이런 저런 이유로 마십니다. 굳이 안주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아내가 해주는 저녁 반찬에 맞춰 술이 자연스럽게 저녁상에 오릅니다. 지인과 만나서 형식에 맞게 마시는 것도 좋지만 생활 속에서 음주를 실천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폭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게 지속적으로 마시는 것, 진정한 애주가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건강에 문제냐구요? 아닙니다. 술값이 가정의 재정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놈의 지속성이 문제였습니다. 특히 계절적인 이유도 컸습니다.


 


여름이 되니 맥주를 즐겨먹게 되었고 편리성을 고려하여 캔맥주만 고집했습니다. 조금 저렴하다는 이유로 외국계 마트에서 캔맥주를 박스채 들여놓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맥주뿐 아니라 육포, 치즈 등 함께 구입하는 안주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렇다고 맥주만 마시면 서운했습니다. 가끔 소주도 섞어 줘야하고 막걸리가 땡기는 날도 있게 마련입니다.


 


와인에 탄산수를 섞어 만드는 자작 스파클링 와인도 여름밤에 별미입니다. 얼음을 갈아 슬러시를 만들고 보드카에 과일주스를 넣으면 고급 호텔바가 부럽지 않습니다. 다양한 음주생활의 실천으로 즐거운 시간은 많아졌지만 반대로 살림이 팍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을 위해서라도 금주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어느 날. 재단의 백경학 상임이사님에게 메신저가 도착했습니다. 아마 피곤한 오후 시간에 쉬어가라는 뜻에서 좋은 기사를 보내주신 것 같았습니다. 링크 주소를 눌러보니 제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술은 약간 마셔라...장수 비결 13가지’


술이란 단어에서 뜨끔합니다. 아마 술이 비타민이고 술이 에너지라고 표현한 메신저 소개를 보고 보내신 것 같았습니다. 기사를 읽어보니 적당한 술은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심장병 발생확률을 낮춰준다는 내용입니다. 술은 역시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약간’이라는 기준에서 실망합니다. 남자기준으로 1~2잔이라고 하니 애주가로서는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1~2병도 아니고 어떻게 한 두 잔일까.” “역시 내가 많이 마시는 거였구나.”라며 자책하며 이사님에게는 “역시 술이 문제였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답장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니 장수를 위해 지켜야할 것들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보였습니다. 또한 이미 많은 사람이 상식으로 아는 수준의 것들입니다. 한편으로는 저를 위한 변명이 생각났습니다. “장수보다 행복한 삶이 좋은 게 아닐까.”


주말마다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립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어머니는 마무리 멘트로 “아들아 행복하게 지내라.”라는 말로 마무리하십니다. 최근 회사를 옮기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아들에 대한 걱정인 것 같았습니다. 칠십 넘게 살아보니 ‘행복’이 최고라는 것을 아셨는지 몇 달째 계속 ‘행복하게 지내라’는 표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건성으로 들렸던 ‘행복’이라는 단어가 몇 달째 듣다 보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조건이 맞아야 행복하겠다.’라는 것에서 ‘행복은 소소한 것에서 느낄 수 있다.’라고 정의를 바꾸자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큰 행복을 찾는 것 보다는 작은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 어쩌면 어머니가 아들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것도 ‘소소한 행복’의 발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몇 년 전 한 매체를 통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소소한 기쁨 50가지’라는 기사를 접한 기억이 났습니다. 검색해보니 청바지에서 10유로 지폐 찾기, 오래된 사진보기, 애인에게 메시지 받기, 좋아하는 음식 먹기 등 정말로 소소한 기쁨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설문 조사로 나온 결과라고 하니 인간이 얼마나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회사에 오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무 일도 없었던 건조한 하루가 어쩌면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행복한 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퇴근하면 아내가 차려줄 저녁상이 기대됩니다. 요리는 없겠지만 반찬에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겠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또 야구를 보면서 맥주를 마실 것입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하루지만 저에게는 행복한 날입니다. 여러분도 행복을 찾아보세요. 에이~ 행복 전도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글= 한광수 팀장 (홍보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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