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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한여름 오후였습니다. 저보다 10살 많은 형님은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었습니다.
가사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멜로디가 애잔했습니다. 때마침 어머니가 대문을 들어오시다 기타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어머니 눈에서 광채가 솟았습니다.

 

 

 

 

한걸음에 마루까지 내달으신 어머니는 어느 틈엔가 기타를 빼앗아 마당에 내동댕쳤습니다. 기타는 비명을 지르며 두 조각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울부짖으셨습니다. “대학시험이 내일 모렌데 주구장창 베짱이처럼 노래만 부르고 있으니…노래소리만 들으면 가슴에 열 불이 나서 못 살겠다.”

그 후 우리 집에서 기타소리는 사라졌습니다. 형님은 다행히 그해 겨울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 노래가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몇년전 새벽. 중학생인 딸아이 방에서 불빛이 새나오고 있었습니다. 살며시 방문을 열었습니다. 딸아이는 무언가에 빠져있었습니다. 엠피쓰리 이어폰을 귀에 꽂고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듣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비틀즈 모음집이에요. 난 예스터데이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왠지 슬퍼져요.”

‘아!’ 비틀즈였습니다. 40년전 어머니가 그렇게 미워했던 비틀즈. 두 동강난 기타와 함께 영원히 기억에 남을 비틀즈. 불후의 명곡 ‘예스터데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딸아이에게까지 유산으로 넘겨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엠피쓰리를 빼앗아 창밖으로 내동댕이 치는 대신 살짝 미소지어줬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이 힙합과 랩송이 아니라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날 새벽 저와 딸아이는 이어폰을 한짝씩 귀에 꽂고 비틀즈를 들었습니다.

좋은 음악은 세월이 지나도 오랜 친구처럼 남습니다. 빅뱅과 원더걸스도 좋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콧노래로 들었던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람’을 들을 때면 가슴이 뜁니다. 산울림 김창완이 부른 ‘너의 의미’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도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시간이 흐르면 빅뱅의 노래도 다음 세대에게는 남도(南道) 창(唱)처럼 느껴지게 되겠지만 몇몇 사람이라도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와 박인희가 부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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