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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 여사가 웃을 수 있는 이유

[유호정/ 호주 지역사회봉사자]

 40대 중반에 낯선 이국 땅 호주에 발을 디딘 이후 ‘특별한 기술도 경험도 없는 내가 무엇을 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나’ 하는 상념에 젖어 있다가 한적한 공원에서 한 청년이 노인의 휠체어를 밀고 산책하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스런 풍경이었다. 순간 한국에 있을 때 한 때 봉사활동으로 장애  어린이를 돌보았던 보람되고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이후 호주 정부 훈련기관에서 노인 간호(Aged Care)교육과 실습을 받아 지금까지 도움이 필요한 병약한 노인 그리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돕고 있다. 목욕도 시켜 드리고, 장도 보아 드리고 때로는 병원으로 모시고 가기도 하고, 집 안 청소도 하는 등 온갖 잡일을 해왔다.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중에서 작년부터 내가 도와왔던 노마 여사가 생각난다.

노마 여사는 실버타운인 ‘은퇴자 마을’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 트레버와 선천성 정신박약 장애를 지닌 50대 초반의 딸 캐롤과 함께 살고 있다. 이외에도 폴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는 스페인에서 여행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 그곳 병원에 입원해 있다.

 노마 여사 집 방문이 좋은 것은 노마 여사의 환한 미소 띤 얼굴만이 아니라 딸, 캐롤에게서 민트 향이 강한 차를 대접받기 때문이다. 직업상 항상 남에게 서비스를 하는 내가 하얀 피부의 금발 여인으로부터 정성이 담긴 차를 대접 받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과 행복감을 준다. 친절한 그녀가 정신박약이라는 장애를 지닌 게 무척 안쓰러웠다

 “노마 여사님, 트레버씨는 준비되셨나요?” 자동적으로 나오는 사무적인 말을 노마 여사에게 건네면 노마 여사는 내 영어 이름을 불러주며 미안한 마음으로 답한다. “어떡하나. 해리,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 아직도 트레버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오늘도 샤워하기는 힘들 것 같아” 그래도 계속 주무시기만 하면 치매가 더 심해지니 침대에서 나오게 해야 한다고 말하며 나는 침실 안으로 들어간다. 고집에 센 트레버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샤워는 포기하고 마침내 그를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는 앞마당 테라스로 나오게 한다.

 “트레버씨 오늘이 무슨 요일 입니까?” 라는 질문에 트레버는 “잘 모르겠는데” 라고 주저 없이 대답한다. “그럼 아내 이름이 무엇이죠?”라는 연속된 질문에는 잠시 멈칫한다. “트레버씨 어떻게 아내 이름을 모르실 수가 있죠?. 아주 큰일 날 일이네요” 내가 재차 묻는다. 그러자 그는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어. 글쎄, 음… 조안 캠프벨” 그 순간 옆에 있던 노마 여사가 박장대소를 하며 말한다. “아니 여보 그 이름은 당신 어머니 처녀 때 이름이고 나는 노마 호빈스야. 노마 호빈스.” 그때서야 트레버는 정정한다. “맞아 노마 호빈스, 내 아내 이름은 노마 호빈스” 노마 여사가 약간 불만인 듯 내게 말을 더한다. “요즈음은 이 사람이 실제로 내가 자기 엄마인 줄 착각하기도 해. 남편의 치매에도 불구하고 노마 여사는 대게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래도 간혹가다 이 사람이 제정신이 돌아와 내 손을 잡아 줄 때면 나는 너무 행복해, 젠틀한 내 남편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에서 말이야.”

 캐롤이 쟁반에 차를 받쳐 들고 와 동석했다. 내게 항상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그녀가 오늘은 빛바랜 악기 교습 수료증을 갖고 와서는 장황하게 허풍을 늘어놓는다. “해리 나는 이제 음악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었어요. 이것 봐요. 해리, 여기에 있잖아요. 이 증서에 내 이름 캐롤 호빈스가 있고 나는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어요. 해리도 음악을 배우고 싶으면 내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그러면 해리는 또 선생이 되는 거고… ” 이때쯤이면 노마 여사가 끼어든다 “해리, 참 재미있지 않아? 캐롤은 참 재미있어. 남달리 친절하고 항상 기쁨에 차있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사랑의 눈빛으로 캐롤을 바라보는 여사의 얼굴에는 그 어떤 슬픔과 애처로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문득 폴 소식이 궁금해졌다. “폴한테서 소식은 들으셨나요?” 순간 노마 여사의 눈이 궁금해하는 내 눈과 마주친다. 마주친 눈빛에서 우수를 느낀다. 목소리에는 잔잔한 떨림이 있다. “차 사고로 병원에 입원 했다는 소식이 있은 후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 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것을 믿어. 별일 없을 거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해리” 그리고는 나쁜 일이 있었으면 벌써 소식이 왔을 거라고 말하면서 차를 홀짝홀짝 마시는 남편에게 비스킷을 건넨다.

 인생의 황혼기에 세상 마칠 때까지 치매 걸린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노마 여사인들 낙담이 이만저만 하지 않았겠는가. 딸이 결혼을 제때 했으면 첫 손자를 보고 어엿한 할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노마 여사인들 ‘왜 하필 내 딸에게 이런 몹쓸 병이!’ 하면서 삶을 원망 하고 저주를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더욱이 유일하게 마음을 줄 수 있었고 믿고 의지했던 아들 폴마저 불의의 교통사고로 저 멀리 스페인 어느 병원에 누워있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노마 여사인들 가슴을 쥐어뜯고 귀를 막으며 울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노마 여사는 내가 방문할 때마다 항상 미소와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 가족의 안부를 물으시고 걱정해 주셨다.

 그녀의 미소와 웃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보통 사람이라면 절망해서 이쯤에서 주저앉을 텐데… 한번은 궁금해서 노마 여사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 “여사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제게 미소를 보여 줄 수 있나요? 여사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 같으면 슬픔에 지쳐 우울증에 걸렸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자 여사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합니다.

 “해리, 나는 처한 현실에 불평 안 해. 그것이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그저 순응하고 받아들여. 왜냐하면,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이 모든 고통이나 근심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리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유호정 님은 2004년 호주로 이주하여, Aged Care Certificate III (노인간호 자격증)를 취득해서 Nursing Home ( 노인 전문 병실)에서 자원봉사를 하였으며,  현재는 Community Worker (지역사회  봉사자) 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 정부가 관리 보호하는 노인 가정과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그들이 혼자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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