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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장애아 키우기(4)

뇌의 절반 이상이 기능을 상실해 ‘이해불가’라는 의학적인 진단을 받았음에도 세상 속에서 씩씩하게 살고 있는 13살 한빛이(복합장애 1급)와, 자칭 ‘피터팬 증후군 중증 환자’인 한빛이 아빠의 때론 웃고, 때론 슬프고, 때론 치고받고 사이좋게(?)지내는 ‘좌충우돌 장애아 키우기’이야기가 4월부터 연재됩니다. 이들은 묻습니다. “왜 장애는 불행하다고 할까?”

(4) 한빛이 에피소드들- 최석윤(복합장애 1급 한빛이 아빠)

등까지 내려오던 한빛이의 머리를 정리했다.
땀을 흘리지 않는 녀석은 치렁대는 머리가 답답한지 자꾸 긁적이는 모습을 보였고, 마님은 제대로 간수하지 않을 거면 자르자고 성화를 하던 참이라 눈 질끈 감고서 가위를 댔다.

아쉬운 생각에 단발로 했다가 그것도 귀찮은지 자꾸 손이 머리로 가는 녀석을 보다 결국 아주 짧게 깎아 줬다. 머리칼을 길게 치렁거리며 다닐 때는 여자아이 같이 보이더니 짧게 정리를 하고 나니 사내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 한빛이가 머리를 자르기 전(좌)과 후(우)

짧게 자른 머리를 보고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전혀 다른 아이 같아 어색하고 이상하다고 하고, 복지관에서 만난 다른 엄마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이제야 남자 같다고 하면서 잘 생겼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리게만 보이던 녀석이 갑자기 어른이 돼 눈앞에 나타나니 영 어색하더니만 이제는 익숙해져 간다.

여름의 한 가운데로 가면서 한빛이가 점점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몸 안에 쌓여가는 열로 몸은 뜨겁게 달궈지고, 뜨겁게 내리쬐는 땡볕은 기운을 다 빼내간다. 매년 여름이면 경험하는 일이니 우리는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의 몸이 뜨거운 것을 걱정해 준다. 땀을 흘리면 몸의 열이 조절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몸은 몸대로 뜨겁고 여름 한낮의 기온은 그만큼 활동을 못하게 만드니 경기가 심해져 한빛이가 정신을 잃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집에서만큼은 늘 시원하게 해 주려고 아이 옷을 벗기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게 하는데 아이의 모습은 영락없는 타잔이다.

‘레녹스가스토증후군’

지금까지 별 관심도 없었고, 알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아이의 병명. 이번에 희귀난치성질환자 등록을 한다는 소식을 병원에서 듣고, 주위에서 등록을 해 두라는 권유를 받으면서 알게 된 병명이다. 지난 십 여 년 동안 관심도 갖지 않았던 병명을 이번에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의사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며 속으로 얼마나 혀를 차고 있었을지 가늠이 된다.

부모가 아이의 병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 우리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더 큰 것이었기에 단지 아이가 살아 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 뿐, 병명을 알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안다고 해서 뾰족하게 달라질 것도 없고, 모른다고 더 나빠지는 것도 아니니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자’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니 그깟 병명쯤은 뒤로 밀어둬도 그만이었다. 참으로 어려운 이름을 듣고서야 ‘이런 병이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니 의사는 늘 그렇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힘들어도 웃으며 이야기하고, 좋아도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병원에 갈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아버님은 참 편하세요. 힘든 이야기를 그렇게 편하게 하는 분이 없거든요.”라고 의사는 말한다. 사실 그 말은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렵고, 심각하게 말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 좋게 생각을 하고, 좋게 말을 하면 내가 아이를 대하는 마음도 달라진다. 아이와 내가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늘 웃으며 지내는 것도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아이의 웃음이 걸음마다 새겨지고 있는데 어른들이 인상 쓰면서 심각해 질 이유가 없다. 서로 마음이 오가려면 결국 같은 모습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이제 서서히 여름의 한 가운데로 들어서는 즈음에 아이는 점점 더 힘들어 하고 있다. 경기를 하면서 정신을 완전히 놓는 경우도 늘어간다. 하지만 아이가 정신을 차리면서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바로 환하게 웃는 것이다. 아이의 그 웃음을 보면서 내가 험악하게 인상 써 가며 아이를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겁게 내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이 있지만 아이에게 그런 표현을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웃음으로 일어서는 아이를 웃음으로 맞이하는 것뿐이다. 거기에 의미를 담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힘들고 지친 마음을 덜어내지 못하면 생각이 무겁고, 그러다 보면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는 일이 빈번해 지고, 그러면서 서로 화를 내며 지내게 되는데 그런 일상보다는 힘든 면을 살짝 접어두고 더 밝은 면을 보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존재한다. 그것에 짓눌려 지내기보다는 그것과 함께 단지 흘러가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장애나, 병으로 인해 만들어진 굴레에 갇혀 지내기를 거부한다. 세 식구가 각자 자기 삶을 더 알차게 꾸려가면서 ‘현실을 즐긴다’고 하는 것이 우리 가족을 이야기할 때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여름이 지나면 다시 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그러면 아이는 지금과 달리 다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거리에 당당히 나설 것이다. 우리 가족은 가을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 기다림의 즐거움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삶의 특권이다.

레녹스가스토증후군 [lennox gastaut syndrome]

영어 약자로 LGS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레녹스가스토증후군은 평생 나타나는 질환이고, 환자의 3분의 2는 전통적인 치료법으로는 발작이 잘 조절되지 않는다. 완치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레녹스가스토증후군 아동의 약 80%가 성인이 되어서도 발작을 계속 경험한다. 일반적으로 1∼8세의 어린 나이에 시작되는데, 그 특성은 여러 유형의 발작이 나타나고 발달장애 및 정신지체를 동반한다.
평균적으로 만 3세에 레녹스가스토증후군이 시작되고, 간질 아동의 3∼11%가 이 질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이 질환의 아동에게는 여러 유형의 발작이 모두 또는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발작이 자주 나타나는 경우와 드물게 나타나는 경우가 주기적으로 번갈아 가며 발생하기도 한다. 이 질환이 나타나는 아동의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정신지체를 동반한다. 대개 3분의 2 정도는 진단을 받기 전에 정신지체의 징후가 나타난다. 그밖의 경우에는 진단 후 2년 이내에 정신지체의 징후가 나타난다. 지능저하의 원인은 항경련제의 진정 효과, 조절되지 않는 발작으로 인한 뇌 속에서의 비정상적인 전기에너지 방출 등이다
– 두산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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