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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재단 후원자 황백화 님

나눔은 하늘나라 꽃별이가 남긴 선물

과자 값을 아껴가며 고사리 손으로 모은 소중한 돈을 보내는 어린 후원자님부터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매달 월급을 쪼개 마음을 직접 전해주시는 여러 후원자님들까지, 나눔을 실천해주시는 모든 후원자님들은 푸르메재단에 너무나 귀하디 귀한 분들이십니다. 이 가운데 푸르메 직원들의 마음을 울렸던 한 분을 소개합니다.

2007년 맑고 푸르렀던 가을 어느 날 온라인으로 후원신청서 한 부가 접수되었습니다. ‘14년간 장애로 살다간 내 딸 꽃별이를 위해서, 더 이상 장애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짧은 생을 마감한, 꽃처럼 향기롭고 별처럼 맑았을 꽃별이. 어린 딸을 먼저 보낸 고통을 나눔으로 승화시킨 어머니 황백화님. 뜨거워진 눈가를 훔치며 감사전화를 드렸습니다. “나눔은 딸이 하늘나라로 가면서 저에게 준 선물 중 하나이지요.” 황백화님의 말씀입니다. 과연 꽃별이가 남긴 선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황백화님이 푸르메 가족에게 띄우는 편지, 받아주세요.

설레였습니다. 인터뷰 날짜를 잡고 하루 하루 날짜가 다가오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꽃별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나 설레던지요. 꽃별이가 하늘나라에 간지도 이제 4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꽃별이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푸르메재단에 꽃별이 이야길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강꽃별. 이름이 참 예쁘죠? 아름다운 꽃과 영롱하게 빛나는 별을 닮은 아이가 되라고 남편이 고심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음 달이면 생일이네요. 꽃별이는 91년 6월 5일 제 첫 아이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늦된 줄로만 알았습니다. 태어나서 3개월이 지났지만 고개를 가누지 못했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경기를 했습니다. 놀라서 병원에 데리고 가 MRI 촬영 등 각종 검사를 받았죠.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뇌에 문제가 있어서 평생을 걸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 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제 나이 25살. 막막했습니다.

그때부터 황백화, 저 자신은 사라졌습니다. 단지, 꽃별이 엄마만 존재할 뿐이었죠. 꽃별이가 깨어있을 때는 연년생으로 낳은 아들까지 둘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아이들이 잠들었을 땐 빨래며, 이유식 만들기며 정신이 없었습니다. 꽃별이가 4살이 되어 인근에 있는 복지관에 다니기 전까지는 밖에 나온 적이 거의 없었죠.

꽃별이의 장애등급서 받아쥐고 얼마나 울었던지

아이를 키우면서 언제 가장 슬펐냐고요? 지금도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이 기억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꽃별이가 4살 되던 해 복지관에 파견 나온 의사선생님이 장애등급서를 발급해주셨습니다. 그 서류를 받아 드는 제 손이 어찌나 덜덜 떨리던지요. 혼자 간신히 앉기만 하는 아이, 한번도 엄마 라는 말 한마디 해 본적 없는 아이였는데도 제 자신이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종이 한 장이 제 아이에게 ‘장애인’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 같아서 아이를 업고 얼마나 흐느껴 울었는지요! 아이를 키우는 내내 많이 힘들었지만, 그때만큼 서럽게 울 적도 없었습니다.

지체장애 1급, 정신지체 2급으로 중증 복합장애가 있던 꽃별이는 간질도 앓았죠. 심한 날에는 하루에 6번까지도 경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경기를 하고 나면 꽃별이는 힘이 빠져 축 늘어지곤 했습니다.

제 소원이 뭐였는지 아세요? 꽃별이를 낫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어요. 경기를 2번 하던 거 1번으로 줄여달라고, 작은 감기라도 한 번 걸리면 폐렴이 되니 앓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원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하루 6번 경기도…엄마의 소원은 ‘더 아프지만 말았으면’

그런데 너무 거창한 소원이었을까요? 2005년 8월 꾳별이가 폐렴으로 서울대병원 소아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다행히 1주일쯤 지나자 호전되었고 곧 일반병실에 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그 날 저녁 8시 면회를 했는데 웬일로 꽃별이가 맑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봤습니다. ‘엄마 나 이제 괜찮아요!’라고 저에게 말하는 것 같았죠.

소아중환자실에 아이를 둔 엄마들은 밤마다 잠을 이루질 못합니다. 혹시나 밤에 무슨 일 생길까 걱정되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죠. 그 날도 7층 휴게실에서 엄마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새벽 1시. 다급히 소아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을 부르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누구의 아이가 되었든 엄마들은 모두 3층에 있는 중환자실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갑작스런 14살 꽃별이의 죽음 받아들지 못해

잘못 본 것이었을까요? 반쯤 열린 문 틈으로 의료진이 모여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의료진이 모여있는 침상은 바로 우리 꽃별이의 자리였습니다. 아닐 거라고 잘못 본걸 거라고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새벽 3시가 조금 지나자 중환자실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꽃별이는 깨끗이 씻겨 단정한 모습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의료진이 저보고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장애가 심한 아이를 14살이 되도록 건강하게 키운 비결이 뭐냐고요. 꽃별이의 건강은 제 자랑이었습니다.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다고요. 늘 업고 다니고 조금이라도 찬 바람이 불면 집에서 나가질 않았죠. 저는 꽃별이가 장애가 낫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저와 같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랬는데……

꽃별이의 갑작스런 죽음은 객담을 빼내기 위해 석션을 하던 중 혈전이 기도를 막아 벌어진 일이라고 했습니다. 일 때문에 한참 후에야 병원에 온 남편은 저보다 더 꽃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죠.

어쩌면 다행이라고 남편을 위로했습니다. 남편과 내가 먼저 죽고 꽃별이가 홀로 남으면 어떡하겠냐고요? 꽃별이가 하늘로 평안히 갈 수 있도록 우리가 잘 보내주자고 남편을 설득한 끝에 일주일 넘게 안치소에 있던 꽃별이를 떠나 보낼 수 있었습니다.

꽃별이가 남긴 첫번째 선물은 ‘나눔’

꽃별이가 제게 남기고 간 선물이 무엇이냐고요? 사랑스런 내 딸 꽃별이는 저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었습니다. 하나는 ‘나눔’입니다. 저는 꽃별이를 키우면서 다른 어려운 아이들을 보질 못했습니다. 변명이겠지만 사실 볼 겨를이 없었죠. 제 눈에는 꽃별이 만으로도 가득 찼으니까요. 꽃별이가 떠나고 제 두 눈은 텅 빈 채 공허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꽃별이처럼 장애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그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를 나누자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꽃별이가 저를 이끄는 것 같았습니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푸르메재단에서 재활병원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장애어린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재활병원이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두 번 고민도 없이 10,000원 정기후원을 신청했죠. 저는 정부로부터 생활비를 보조받는 수급권자입니다. 10,000원은 어떤 이에게는 쉽게 쓸 수 있는 정말 적은 금액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형편이 좀 나아지면 할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저는 나눔은 바로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꽃별이를 갑자기 잃고 나니 ‘나중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것을 알았거든요.

두번째 선물은 되찾은 ‘나 자신’…”꽃별이가 응원하겠죠”

꽃별이가 남긴 두 번째 선물은 바로 ‘황백화’ 제 자신을 찾아준 것입니다. 14년간 사라졌던, 그래서 없어진 줄만 알았던 ‘황백화’라는 사람이 제 속에서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나와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유아교육학을 전공해 보육교사자격증 있는 저는 요즘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마트에서 일하느라 몸은 늘 피곤하고,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머리도 지끈거리지만 장애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 노력하고 있습니다. 꽃별이가 가끔 ‘엄마 힘내!’라고 응원하는 것 같아서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늘 누워지냈던 꽃별이는 이 푸르고 아름다운 5월, 하늘나라에서 환하게 웃으며 힘차게 뛰어 놀고 있겠죠? 그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언젠가 꽃별이를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도록 저는 일부러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나누며 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봄 햇살 아래서 꽃별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황백화님은 내내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먼저 떠나 보낸 어미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꽃별이를 대신해 빨간 카네이션을 드렸습니다. 소녀처럼 수줍어하시는 황백화님. 이제는 사랑하는 딸이 남기고 간 ‘선물’을 이 세상과 함께 나누기 위해 애쓰는 이 시대의 굳센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리=어은경 푸르메재단 간사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세요. 일어서지 못하고 비틀거릴 때 기댈 수 있도록 든든한 팔과 발을 빌려주세요. 혼자 힘으로 일어서서 걷고 뛰놀고 달리 땔까지 지켜보며 응원해주세요!

‘어깨동무 후원회’는 뇌성마비, 발달장애, 다운증후군 어린이의 한방치료 기금으로 쓰입니다.

– 개원 : 2007년 7월 18일
– 대상 : 만 5세 미만의 뇌성마비, 인지, 언어장애(자폐증, 정신지체)가 있는 저소득층 어린이
– 과목 : 한방진료 (허영진 한의사/현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
– 진료시간 : 월요일~금요일(수요일 외), 오전 10시~12시
후원계좌_ 제일은행 : 100-10-023368 /
국민은행 : 870301-04-013107 /
우리은행 1005-600-989825 (예금주:재단법인 푸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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