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참 맛- 김건 씨

 



 

1년 반 동안의 대학 생활은 그에게 어떤 자극을 주었을까. 이메일과 전화로 그와 연락을 취해보았다. 예상대로 그에게는 대학도 하나의 도전이었다. 책 읽는 즐거움에만 빠져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학내의 장애인권 연구 동아리인 ‘게르니카’의 회장이 되어 있었다.


1. 게르니카면 독일군에 의해 폭격당한 곳이 아닌가.




<게르니카 홍보 중인 사진>


맞다. 게르니카는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현장을 상징한다.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연세대학교 중앙동아리 게르니카는 장애인의 인권을 연구하는 동아리다. 역사 얘기를 좀 하자면, 1995년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을 실시한 이후에 많은 중증 장애인들이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제대로 공부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에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을 필요성을 느낀 95학번 장애인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게르니카를 만들었다. 그 후 종합관 승강기 설치, 장애학생지원센터인 ‘새움터’ 설립, 연희관 지하 경사로 설치 등의 일들을 이루었다.


현재는 학내 장애학생들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개선을 위한 정기 세미나, 서명운동 등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동아리의 슬로건은 바로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이다.


2.동아리 해체가 동아리의 목표라고 하는 글을 읽었다. 사실인가?

사실 동아리 해체가 동아리 목표라고 동아리 회칙에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동아리 해체가 목표라고 주장하는 것은 게르니카와 같은 장애인권운동 동아리가 존재할 필요도 없는 대학과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게르니카와 같은 동아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소수자로서의 장애인이 존재하고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소수자가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장애인 역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장애인권 운운하는 동아리 혹은 단체가 더 이상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3.언제쯤 목표 달성이 가능 할 거라고 보나?

언제쯤 가능하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4.1년 반동안 대학을 다녔는데 생각했던 대학생활과 어떻게 달랐나. 정말 좋았던 일과 힘들었던 일 한가지씩 얘기하달라.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 것이니까. 하지만 1학년 때 교양 수업을 많이 들으면서 - 특히 대형강의 - 생각했던 대학교 공부와의 약간의 괴리를 경험했다. 솔직히 고등학교 수업과 크게 다른 것을 못 느꼈다.


가장 좋았던 일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1학년 때 반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사람들, 대외 활동을 하면서 만난 분들 등등, 세상에 대한 눈이 넓어진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역시나 부모님과 떨어져서 생활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생활이나 공부에 있어서 부모님께 의지했던 부분이 많았는데 대학교에 입학하고는 그런 도움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데 익숙해졌다.



<축제가 끝나고 게르니카 친구들과>


5.고등학교 때 책들을 깡그리 외워서 수석졸업을 했다고 들었다. 요즘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나? 눈은 괜찮은가?

요즘 눈 사용할 일이 많아서 눈이 더 나빠지는 것이 아닐 지 걱정되곤 한다. 치료도 받고 관리도 해야 될 것 같다. 공부는 독서확대기를 사용해서 한다. 학교에서도 도서관에 독서확대기가 있어서 그걸로 한다.


6.당시에 기사들을 보니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 것 같던데 보건복지부를 통해 우리나라 장애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침해적이고 제한적인 행정으로 일관하는 것 같던데

사실 대학교 오기 전에는 제도적인 부분의 개선을 통해 장애인 문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소수자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사회복지학을 배우고, 실제로 장애인 정책을 담당하시는 분들의 사정도 접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보건복지부가 침해적이고 제한적인 행정으로 일관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그리고 행정 공무원으로서 그들의 그러한 태도도 십분 이해하고. 그래서 최근에는 장애인 의식 개선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NGO 활동을 하고 있다. 결국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의 의식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온전히 그 역할을 다할 수 없다. 그러한 문제 때문에 NGO 활동을 하고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아닌 다른 쪽의 진로를 고민하는 것이다.


7.게르니카 얘기에서도 나왔듯 장애인 문제 해결에 있어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식개선을 중요시 하는 것 같다.

맞다. 의식 개선이라고 하면 비장애인들의 장애에 대한 의식 개선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오히려 장애인 스스로 장애에 대한 의식 개선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게르니카의 구호는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다. 사실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이 자신이 장애가 주는 물리적, 정신적인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장애를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도 크다. 말하자면 스스로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장애인의 상황은 개선되기 힘들다. 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수동적, 피동적, 주변적 존재로 인식한다면 제도 또한 일방적, 수혜적, 현상 유지적 수준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8.신체장애극복 분야에서 상을 받았는데 장애극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나는 장애극복이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대통령상을 받았을 때에도 ‘장애극복’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걸렸다. 장애를 극복 - 어떤 의미에서 극복인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 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장애인에게 장애를 극복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에 더 큰 문제가 있다.


9."이 세상에 장애란 없다. 단 한 가지 있다면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부족일 뿐이다"라고 말했던데 우리나라에서는 장애극복하는데 의지가 너무 많이 필요하지 않나? 장애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돌리는 건 아닐까?

고등학교 때 한 말인 것 같다. 이 말을 한 것은 장애인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읽어보니 오해의 소지가 많은 표현인 것 같다.


10. 학내 밴드인 "어울림"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기타와 보컬을 맡았던데 어떤 음악을 좋아하나? 장애와 음악에 어떤 연관성이 있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내 몸으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크나큰 행복이다. 성격 때문에 “Boston”이라는 밴드의 음악처럼 완벽에 가깝게 구성된 음악을 좋아한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그저 음악이 좋아서 “어울림”을 찾아갔지만, 기타 연습이나 합주 과정에서 직면하는 어려움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원래 음악적인 센스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합주 이전의 준비 과정에서 남들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 그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 공연을 끝까지 했던 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음악 동아리에 들어간다고 할 때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선배가 나를 만류했다. 힘들 것이라고, 곧 포기할거라고. 비록 축제 공연에서 내 기타와 노래는 거의 최악이었지만 그들에게 내가 포기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11.자신에게 있어서 음악은 무엇인지.

음. 생리적인 욕구에 의한 활동이 아닌 것들 중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첫 번째는 독서다.) 음악이 없다면 세상이 재미없을 것 같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새움터'에서 주최한 간담회가 끝나고-왼쪽 밑은 피츠버그 대 김종대 박사,


오른쪽 아래는 근육병을 앓으면서도 학업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02학번 신형진 학생>


12.장애인권운동을 학교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도 진행할 생각은 없나?

학교 내에서 동아리의 이름으로 하는 장애인권 운동의 한계를 지난 1년 동안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최근에는 ‘장애학생지원네트워크’라는 NGO의 활동에 게르니카 회장이 아닌 개인 ‘김건’의 이름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 재활협회’에서 추진 중인 ‘장애청년 자조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13.봉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봉사의 참맛을 짧게 표현한다면.

봉사활동은 타인과 교류하는 활동의 하나일 뿐이다. 봉사자와 피봉사자의 관계를 넘어서는 인간 대 인간의 유대를 깨닫게 된다면 봉사는 더욱 값진 일이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진실 된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겁다.


14.푸르메재단과 병원에 대해서 들어봤는지.들어봤다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 자세히는 모른다. 재활병원건립 재단이라는 것 정도 외에는.


15.마지막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고등학생들에 대해서 권학(勸學)의 한마디를 부탁한다.

“자신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장애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장애는 자신의 큰 개성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세요. 그 목표가 진실 되고 과정이 명확하다면 ‘장애’라는 짐이 주는 무게 같은 것은 느끼지도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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