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소한 생각 하나의 차이

성은주 (재독 가톨릭 선교사)


저는 우여곡절끝에 대학을 갔습니다. 태어난지 100일만에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 장애인이었던 저는 장애인 그룹에서는 정상인 취급 받았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첫 해 대학입학이 거부됐습니다. 참 아이러니였습니다. 그로 인해 당연히 제 생각도 두 갈래로 갈라졌고 어느 것이 참다운 저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오대산으로 열 댓 명이 MT를 갔습니다. 월정사를 출발해 노인봉을 거쳐 소금강으로 하산하는 코스였습니다. 걷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저를 포함한 다섯 명과 선두 그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노인봉까지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중간 진고개에서 벌써 오후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제안했습니다. "업고가자" 다른 아이들도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업혀야 할 당사자인 제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주장했습니다. "싫어. 나 놓고 가!. 혼자서 밤새도록 걸어서라도 그곳에 갈게."


제 요구는 무시되었고 다른 아이들의 '편의' 를 위해 네 명의 등에 번갈아 짐짝처럼 운반되면서 '절대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왜 그런지 그때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삶의 동료로 만나고 있습니다.


 

작은 생각의 차이로 넘나드는 인간성의 경계




그 해답은 그로부터 십오년 후 독일 땅에서 찾았습니다. 특수교육학을 공부할 때였습니다.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의 일상사를 견학하는 날이었습니다. 독일 장애인을 방문한 날 그는 때 마침 공익 도우미와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속옷과 다른 몇 가지를 사러 나간다고 했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휠체어 장애인의 외출준비는 30분이 넘게 걸리도록 꼼꼼하고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냥 도우미가 혼자 나가서 사오면 벌써 다녀왔을 시간이었습니다. 제 생각대로 물어 보았습니다. 오히려 제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 되묻는 그 장애인도 그랬지만 그의 의견에 따르는 도우미도 이상했습니다. 그 장애인은 "나 대신 사줄 수 있다고 그가 제안했지만 거절했어. 내 속옷인데 내 취향대로 골라 사야지. 그는 내가 아니니까, 내 맘에 드는걸 고를 수는 없거든." 독일 장애인의 도우미는 쇼핑 동안 좁은 전시대 사이로 휠체어가 드나들 수 없자 수십 번도 넘게 그가 고를 수 있도록 속옷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귀찮지 않나요?" "내게 주어진 시간동안 내가 당연히 할 일인걸요."


그 때 학창시절 등산갔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제 친구들도 원하지 않는 제 뜻을 존중해야 했습니다. '모두의 편의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아마 그로 인해 우리는 야간행군을 했을 지 모르지만 저는 짐짝 같은 참담함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체장애가 있는 제게 종주가 처음부터 무리였을지 모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후 저는 혼자 한국의 유명한 산을 다 오를 수 있었습니다. 물론 혼자였습니다.


그 사소한 생각의 차이를 찾는데 저는 무려 십오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제 친구들의 뜻은 좋았지만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공공의 편의를 위해 인격체로서 저의 존엄성은 무시되었고 저는 그것을 묵인한 것이었습니다.


 


좋은게 좋다는 핑계로 자기 위안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 후 잠시 귀국할 기회가 있어 모두를 만난 자리에서 저는 이 놀라운 발견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무도 그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되묻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겠느냐고...


지금도 저는 그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제가 힘들때 늘 힘이 되어주었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를 인간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것이 저를 슬프게 했고 삶의 의지를 빼앗는 선의의 폭력을 행하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앞길에 놓인 돌에 걸려 넘어져서 다치고 그로 인해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배우기 보다는 돌을 치워주는 것이 눈먼 사랑임을 몰랐습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인간 존엄성의 조건


독일에서는 그것을 '스스로 결정하기' 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결정하게 되면 그로 인한 실수나 잘못을 통해서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단 휠체어에 앉게 되면 자기 의지란 없어지고 밀어주는 이를 비롯해 주변인들이 주체가 됩니다. '저기 아름다운 가로수 길이 있긴 하지만 휠체어를 밀기엔 길이 울퉁불퉁해. 금방 빨간불이야. 보도에 걸려 덜컹거리든 말던 빨리 건너야 해. 비가 오니까 산책은 불가능해.'


이런 외부 주체적인 결정이나 생각을 내 것인양 받아들이게 되는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나야 합니다. 장애인이 스스로 개성과 욕구를 존중하는 의지를 갖도록 도와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그 의미만이라도 받아들여져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개인주의로 알려져 있는 독일인의 그런 생각들이 이기주의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진정한 나를 찾자는 의미입니다.


문득 남편과 있었던 일이 생각나니 웃음이 나옵니다. 그는 대학에서 만난 독일인입니다. 독일생활을 하면서 저는 Post-Polio-Syndrom (후천성소아마비증후군)으로 인해 장애등급이 4급이 되고 지팡이도 짚고 때로는 겸연쩍게 휠체어를 타게 되었습니다.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고 있었습니다. 야외 식물원으로 산책을 가자고 남편이 제안했습니다. 저는 질색을 했습니다. 옷이 젖는 것도 싫었지만 지팡이가 미끄러워 넘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랬더니 스무개가 넘는 온갖 제안을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은 '비가 오니까 젖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원하지 않으면 꼭 갈 필요는 없어. 하지만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개나리가 많이 피었어. 비가 그치면 모두 떨어지고 없을 거야." 결국 저는 전혀 귀찮아 하지 않는 그의 등에 업혀, 때로는 우산대를 지팡이 삼아 실컷 빗속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이성적인 생각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존엄성있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가장 사소해 보이는 감성조차도 기본적인 욕구로서 존중되어지는데 있음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제 생각의 차이는 찾았으나 그것으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 입니다. 제가 찾았다고 해서 벗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느끼는 것을 알려줄 수는 있습니다. 다만 장애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는 걸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불편하니까 그 불편함을 호소하고 해소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잠정적인 의미의 장애인입니다. 지금 장애인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인 질병이나 사고로든 장애의 위험으로부터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의 정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오는 불편을 해소하는 방법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서로 부딪히게 되지만 이것이 충돌로서가 아니라 서로 손을 맞잡아주는 협력으로 인식되면 그 사소한 생각의 차이를 서로 인정하게 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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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주씨: 중앙대 약대와 서울 가톨릭교리신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가 마부르크 대학에서 특수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뮌헨대학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휴학중입니다 .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남편과 만나 현재 프랑크푸르트에서 살면서 가톨릭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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