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고 정욱

김성구 푸르메재단 이사 (샘터사 대표)


인생을 사는데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면 더더욱 그렇지요.


늘 만남이란 우연을 가장한 숙명처럼 다가옵니다. 제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입학 시험장이었습니다. 내 시험 번호가 17번, 그 친구가 18번이었으니까, 바로 앞뒤에서 시험을 치른 것이지요. 둘 다 운 좋게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시험 당일에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가 신체 1급장애자인 것을…. 경황이 없어서였겠지요. 합격통지서를 받고 신체검사를 받는 날, 아슬아슬하게 내딛는 목발 사이로 붕~떠다니는 두 다리가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야! 신기하게 잘 걷는다.”


전 사실 그 때 학교, 학과가 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과목을 선택할지 고민은 물론,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심정이었습니다. 정말 우연히, 아주 막연히 ‘저 놈과 같이 수강신청을 해보자.’ 즉흥적으로 그렇게 결정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말입니다.



하체가 튼튼한 나는 자연스럽게 수업 이동때마다 그의 휠체어(?)가 됐고, 그렇게 우리의 우정(友情)은 시작됐습니다.


함께 술을 마시고, 연애하는데 참견하고, 저 때문에 (당시 저는 학교 신문사 기자였음) 신문에 시사만화를 그리면서 원고료 받아 또 술을 나눠 마시고…. 어수선한 시국 때문에 학교가 장기 휴강에 들어가자 우린 큰 마음먹고 마산으로 갔습니다. 잊지 못합니다. 그 때 그 놈이 한 말을. “난생 처음이야. 바다구경 해보긴….” 그 참에 설악산까지 갔습니다. 당연히 그에겐 난생 처음 본 큰 산이었지요.


25년 전 일입니다. 그 친구 지금은 정말 잘 나가는 유명인이 됐습니다. 문학박사이며 대학에서 강의도 합니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안내견 탄실이>, <아주 특별한 아이> 같은 대형 베스트셀러도 낸 동화작가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랑스런 아내와 아주 아주 귀여운 1남2녀를 둔 건강한 아버지입니다. 고정욱.


며칠 전 제가 푸르메재단에 참여한다는 얘기를 듣고 칭찬의 소리를 하더군요. “잘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 지금처럼 된 게 다 나 잘나서 됐겠니? 나도 적극 참여한다고 그래. 알았지!”


지금까지 그에게서 받은 최고의 칭찬 같아 내내 마음이 뿌듯합니다.


 


고정욱은 국제장애인연맹(DPI) 한국지부 이사를 맡고 있는 작가입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동화와 소설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그가 처음 쓴 동화는 뇌성마비를 다룬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란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은 그 해 아동 문학 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이후 장애를 다룬 동화를 10여개 출간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무료배달 ‘새날도서관(02-454-7646)을 설립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동화를 쓴 것은 아닙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모더니즘 계열의 실험소설 ‘선험’이 당선돼 등단했습니다. 이후 ‘원균 그리고 원균’이라는 장편소설로 이순신에 대한 재해석 열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문학 공부를 할 때 모아둔 단어장 노트를 엮어 ‘살려 쓸 우리말’이라는 어휘 참고서를 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소설 ‘B-boy’를 써서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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