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도심속 어린이전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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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킨더젠트룸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서부유럽국가에서 재활병원이 발전한 유래를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에서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고 살아 돌아온 군인들의 정신적 치료를 위해 건립됐다는 것이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파시스트 독재에 맞서 스페인의 자유를 지키려고 참전한 미국 청년? 로버트 죠단(게리 쿠퍼 역)처럼 이념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가 참전했지만 전쟁터는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히틀러의 광기 속에 침략자로서 혹은 저항군으로 서로의 심장에 총을 겨누며 인간이 얼마 만큼 사악해질 수 있는가를 목격한 군인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희생된 시민들도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고 정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의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치료하기위해 재활병원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정신과재활병원은 그 후 70년대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교통사고 전문병원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심장병, 당뇨 같은 현대 성인병을 치료하는 전문재활병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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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잉글리드 버그먼과 게리 쿠퍼

선천장애에서 정신장애 치료로 전환


어린이재활병원 역시 성인병원과 마찬가지로 전쟁 통에 살아남았지만 정신적으로 심한 상처를 받은 어린이들과 전쟁의 직접적인 희생으로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렸거나 손상된 어린이를 수용해 치료하던 곳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가정 붕괴로 인한 외로움과 배고픔을 달래주는 가족의 역할을 겸해야 했기 때문에 보육원(고아원)과 병원이 결합한 형태였다.


어린이재활병원은 이후 뇌성마비와 청각장애 등 선천장애를 치료하는 기관으로, 80년대에는 급속한 산업화로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어린이가 늘어났다가 최근에는 자폐, 말하고 쓰는 기능이 떨어지는 언어능력저하, 음식조절 실패로 인한 비만 같은 현대병을 치료하는 전문병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서부유럽에 있는 어린이재활병원들이 이런 발전단계를 거쳐 대부분 전망 좋은 알프스 인근 지대나 호수 주변의 휴양지에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뮌헨의 킨더젠트룸은 말 그대로 바이에른주의 주도(州都)인 뮌헨 시내 서남쪽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전형적인 도심형 어린이재활병원이다.


뮌헨 어린이재활병원의 역사


뮌헨 킨더젠트룸은 오랜 동안 어린이발달장애를 연구해온 뮌헨의대 테오도르 헬뷔르게 교수에 의해 1968년 세워졌다. 헬뷔르게 교수는 어린이재활치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기진단과 조기치료가 필요하며 어린이환자에 대한 사회적응 훈련을 조기에 실시하면 재활치료를 마친 어린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가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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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헬뷔르게 교수

그는 이런 치료를 전담할 어린이재활병원을 오버바이에른 주정부에 제안했고 이에 호응해 주정부에서는 1968년 외래병동 형태의 어린이재활센터를 건립했다. 그후 입원병동과 연구동, 몬테소리 유치원, 몬테소리 학교 등을 1989년까지 순차적으로 지어 헬브뤼게 교수가 설립한 헬브뤼게 재단에 모든 운영을 맡기고 있다.


킨더젠트룸은 2009년부터 시설 증축하고 설비와 기자재를 현대화하면서 독일 내 어린이재활 및 발달치료 분야의 전문병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테오도르 헬브뤼게 재단은 조기치료, 조기교육 등을 모토로 애어린이통합교육을 몬테소리 방법으로 접근해 킨더젠트룸 등 독일에서만 110개 이상의 어린이관련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47개국에 몬테소리 방법을 통한 치료 및 교육을 전파하고 있다.


어린이재활센터의 특징


독일의 겨울은 해가 짧다. 낮이 계속되는 여름이 백야(白夜)라면 밤이 긴 겨울은 흑야(黑夜)다. 흑야는 보통 오전 9시가 돼야 해가 뜨고 오후 3시가 되면 땅거미가 진다. 뮌헨 킨더젠트룸, 즉 어린이재활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였지만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대리석으로 지어진 3층 본관 앞에 재미있는 동상 조형물이 하나 놓여 있다. 엄마와 휠체어를 탄 아빠, 그리고 아직 요람에 누워있는 아기에 이르기까지 가족 5명이 어디 나들이를 가는지 손을 잡고 신나게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한바탕 웃음이라도 터질 듯한 표정이다. 아마 이곳에서 치료받은 뒤 집으로 함께 돌아갈 축제의 그 날을 오기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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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병원 로비하면 붐비는 인파와 높은 천정, 설립자 동상, 기부자 명단이 새겨진 큰 벽면 을 연상하게 되는데 이 곳은 지나칠 정도로 겸손하고 소박해 병원로비가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든다. 킨더젠트룸의 로비는 그냥 병원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통로 중 하나이다. 8각형으로 된 돔지붕 아래 노란 빛깔이 채색된 아름다운 공간이다. 벽면 정면에는 큰 팔을 벌려 세상을 안고 계신 예수상과 꼬마들이 함께 그린 그림 한 점이 겸손하게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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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진료로 어린이들로 '복작복작' 시끄러운 병원로비를 예상했는데 로비는 물론 길게 늘어선 복도에서 조차 꼬마들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복도 옆으로는 각종 치료실과 상담실, 병원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실이 나오고 다시 로비와 비슷한 첨탑 모양의 8각형 돔지붕을 가진 중간 홀이 나온다. 처음으로 반갑게도 '두런 두런' 사람소리가 들려서 따라가보니 작은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애타게 찾던 꼬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병원시설을 안내한 소아정신과 전문의 멜라니 보이그트 박사는 "어린이재활센터에서는 상담과 치료가 오전에 끝나기 때문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현재 식당을 찾은 어린이들은 2층 병실에 어머니와 함께 입원한 꼬마들"이라고 설명한다.


1년 동안 1만 1000명의 어린이 치료


병원은 크게 외래 환자를 담당하는 어린이재활센터와 입원치료를 전담하는 재활병원으로 나눠지고 그 옆으로 연구소, 몬테소리유치원, 몬테소리학교 등이 자리잡고 있다.


뮌헨 젠트룸 내 어린이재활센터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약 1만 1000명의 어린이가 치료받았다고 한다. 주도인 뮌헨을 중심으로 북부의 작은 도시 인골슈타트에서 남쪽으로 알프스 산악도시인 카르미슈-파텐키르헨에 이르는 남부 바이에른 지역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그 대상이다. 출생 후 장애 증세를 나타내거나 지역 병원에서 장애로 판정받았을 경우 우선적으로 이곳을 찾아 병명에 대한 정밀 진단을 받고 곧바로 조기치료에 들어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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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트 박사와 복 박사

보이그트 박사는 "장애아로 판정되면 킨더젠트룸에서 주치의를 정해주며 주치의와 부모의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어떤 수술과 치료를 진행할 것인가 결정한다"고 말한다.


어린이재활센터는 크게 1층에는 치료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상담실과 미술치료실, 음악치료실, 심리치료실, 몬테소리치료실 등 주로 외래환자를 위한 치료 공간이 빼곡히 위치해 있다. 2층은 부모와 함께 입원하도록 설계된 1인 병실과 물리치료실, 작업치료실이, 그리고 3층에는 의사와 치료사, 간호사 등의 연구공간으로 이루어졌다.


불 꺼진 음악치료실을 열어봤더니 작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작은북과 큰북, 하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악기가 눈에 띈다. 특이한 것은 치료실 옆면에 거울이 놓여 있다. 거울안쪽에는 작은 공간이 있어 부모가 아이의 치료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고 한다. 피의자의 심문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경찰서 같아 처음에는 찜찜했는데 아이의 반응과 동작을 부모가 직접 관찰한 뒤 부모도 함께 치료에 참가 한다는 설명을 듣고 이런 공간을 만든 취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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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재활센터 음악치료실

아이가 갑자기 북이나 피아노를 세게 내려친다면 무언가 마음속에 불만과 불안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치료사를 통해 전해 듣는 것 보다는 부모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이를 더 잘 이해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병원 통로 벽에는 유명 화가나 사진가의 그림이 아니라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 꼬마들이 흡족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진과 꼬마들의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 바라보는 것이 꼬마들을 위한 일종의 치료라는 것이다.


몬테소리 치료의 접목


몬테소리 치료실에는 집에서 접할 수 있는 각종 장난감과 일상도구, 재미있는 과학실험도구가 더 이상 정돈될 수 없을 정도로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아무리 산만한 아이라도 이 공간에 일단 들어오면 마음이 차분해질 것 같다. 정리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독일인의 빈틈없는 정리벽에 고개가 숙여졌다.


몬테소리는 장난감을 통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법으로 이탈리아 출신 여의사이며 심리학자, 어린이교육가였던 마리아 몬테소리(1870~1952)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녀는 지적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바닥에 떨어진 작은 조각들을 가지고 놀면서 놀이과정을 통해 감각과 행동이 점차 향상되는 것을 보고 이를 과학적인 치료법과 교육방법으로 발전시켰다. 이때부터 어린이를 정서적, 지적, 신체적으로 고르게 성장해야 할 인격체로 존중하며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 이때부터 실시됐다는 것이다. 뮌헨 킨더젠트룸은 의사와 치료사 뿐 아니라 부모와 심리치료사가 한 팀이 되어 함께 토론하고 정신장애를 가진 어린이의 감각개발에 몬테소리 치료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장난감 놀이를 하고 과학실험을 하는 치료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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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소리 치료실

재활병원에 속한 2층 병실은 아쉽게도 환자와 환자가족의 사생활 보호차원에서 외부 방문객에게 개방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는 1인 1실을 기준으로 40개의 병실이 있고 연간 850여명의 어린이가 입원치료를 받는다. 40개 병실 중 20개는 혼자 입원하는 어린이를 위한 방이고 나머지 20개는 부모가 함께 입원할 수 있다. 킨더젠트룸 재활병원에는 주로 중증 발달장애나 다중장애를 가진 어린이 치료로 특화하고 있다. 입원비는 하루 400유로(약60만원). 모든 비용은 주정부의 지원과 어린이 부모가 든 의료보험에서 부담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적지 않게 부러웠다.


푸르메재단이 종로구 효자동에 짓고 있는 어린이재활센터도 뮌헨 킨더젠트룸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종로구를 중심으로 주로 강북지역에 사는 장애어린이들이 올해 7월이 되면 행복해하며 치료받을 수 있지 않을까.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Kinderzentrum Muen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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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77 Muenchen, Germany

홈페이지: www.kbo-kinderzentrum.de

전 화 : 49- 89-71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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