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르타바일 장애청소년 캠프장


"장애인에게 편한 곳이면 누구에게나 편한 곳이다."

독일 장애어린이청소년 캠프 관리책임자 아이그너 디이터(Aigner Dieter) 씨는 '바르타바일은 누구에게나 편리하고 행복한 곳이다"라고 강조한다.


그의 안내로 바르타바일에 들어서자 푸른 숲속에서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 소리를 쫓아 근처 놀이터로 다가갔다. 초등학교 5~6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 10여명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지 타이어를 이용한 시소를 타며 웃음꽃이 한창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중 3~4명은 장애어린이였다. 장애 및 비장애어린이가 자연 속에서 한데 어울리는 곳, 이곳이 바로 바르타바일인가.


어린이들이 폐타이어를 이용한 시소를 재미있게 타고 있다.

공식 명칭은 "만남과 교육의 장소, 그리고 기숙사". 이름만 들어서 정확히 어떤 곳인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문하기 전에는 어렴풋이 우리의 '파주 영어마을'이나 '놀이동산'을 연상했는데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장애와 비장애 어린이청소년들이 함께 보통 3박4일의 일정으로 프로그램에 참가한다고 한다. 독일이 통합교육을 지향하는 만큼 학교나 지역사회에 있는 서클어린이들이 온다면 자연스럽게 합동캠프가 된다. 바르타바일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단기간 무엇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라고 디터 씨는 설명한다.


장애인에게 편하면 모두에게 편하다


인솔 교사와 함께 와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어린이들끼리만 와서 이곳 교사의 지도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여름방학에는 초등학생 영어캠프 장소로 빌려주기도 한다. 유치원과 학교의 과외활동, 장애인단체, 사회단체 등이 주로 이 시설을 이용하는데, 최근에는 가족 단위로 찾는 이용객들이 늘고 있다. 다만,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주로 지어지고 특별한 프로그램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일반 캠프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


식당과 거실로 이용하는 본관 건물. 전면을 유리로 해서 채광이 뛰어나고 지하에 놀이시설이 있다.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설치된 야외화덕과 인디언 텐트

독일 뮌헨 남부의 호수 암머제(Ammersee)에 위치한 바르타바일은 인근 숲과 호숫가를 제외하고도 전용면적 2만7000제곱미터(약 9000평)의 부지 위에 식당과 숙소동 등 6개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물로 생겨난 아름다운 호수 덕분에 이곳은 부자들의 별장과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바르타바일이 있던 부지는 원래 독일 최대의 철강회사 티센(Tyssen) 회장의 부인이 소유한 아름다운 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회장 부인이 장애인을 위한 시설로만 사용해달라고 조건으로 부지를 바이에른(Bayern) 주정부에 기부했다고 한다.


독지가의 기부와 정부의 지원으로 세워진 산교육장 


주정부는 기존 건물을 부수고 여기에 1650만 마르크(115억원)를 들여 1995년부터 바르타바일을 짓기 시작해 2년만인 1997년 완공했다고 한다. 현재는 장애인 권익운동 단체 LVKM에서 맡아서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복지와 화합을 위해 독지가가 부지를 기부하고 정부가 시설을 지어 비영리단체에 운영권을 맡긴 대표적인 사례다.


깨끗하게 정리된 객실

디터 씨의 안내로 숙소와 강당, 식당을 찾았다. 모든 시설에 문턱이 없는 대신 자동문이 달려 있고 전등과 방문 손잡이까지 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담겨져 있다.


키가 작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위해 앞으로 당겨서 옷을 걸도록 설계된 옷걸이, 자동으로 높낮이를 조정하도록 되어 있는 목욕용 침대 등 이곳에 볼 수 있는 비품과 시설 하나하나에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배려하는 독일 사회복지의 정신이 녹아 있는듯했다.


휠체어장애인이 사용하도록 되어있는 손잡이를 어린이재활전문의 송우현 박사가 시험해 보고 있다.(좌) 장애인 높이에 맞춘 옷걸이(우)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구별 없이 같은 이용료를 내며, 미리 예약만 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용료는 숙박, 식사, 프로그램 참가 등 모든 비용을 포함해 1박2일 기준으로 성인은 35유로(약 45,000원), 어린이는 26유로~31유로(약 33,000원~40,000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기 때문에 일반 캠프가 하루 120유로인 것에 비해 1/3 가격으로 이용료가 저렴하다.


장애인정책에 발상전환이 필요한 이유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혼자 그네를 탈 수 없다는 것은 알려진 상식인데 이곳에서는 상식을 뒤집고 장애인이 혼자 탈 수 있도록 설계된 그네가 설치돼 있다. 왜 장애인은 그네를 타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한탄을 했다. 다른 분야보다 장애인시설과 정책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든 어린이 가장 타보고 싶어하는 그네

숙소동내 객실과 복도는 벽면마다 서로 다른 색을 칠해 조화를 이룬 것이 재미있다. 숙소나 화장실에서 비상벨을 누르면 관리실과 복도에 있는 비상등 불이 들어오고 부저가 울려 도움을 청하도록 설계돼 있다. 기술력과 자본력, 인본주의 정책이 결합된 결과 같았다.


본관과 숙소동을 연결하는 복도는 유리와 철제로 만든 뒤 양간의 경사도를 주고 복도 양쪽에 나무를 심어서 마치 정글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 것도 이채롭다.


미세한 경사를 줘서 휠체어가 쉽게 식당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정글복도와 숙소복도

장방형으로 퍼져있는 3개의 숙소동은 본관과 복도로 연결돼 있다. 유리를 이용해 햇빛이 가장 잘 들도록 설계된 본관에는 행정부서가 아니라 이용객을 위한 식당과 서재, 휴식공간 등 자리잡고 있다. 이곳 지하 1층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상영관과 게임공간, 디스코텍 등이 있는데 밤 10시 이후에 계속 놀고 싶은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댄스 파티를 즐긴다고 한다.


650편의 영화를 갖춘 상영관과 놀이시설이 있는 휴식공간

다목적으로 이용되는 식당

장애를 갖게 되면 비장애인이 즐기는 모든 일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하지만 이곳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통념과 상식이 무참히 깨어진다. 정원을 거쳐 숲길은 호숫가로 이어져 있다. 독일 부호들의 별장이 즐비한 곳에 바르타바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장애인을 이해해야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호숫가에서 호수 중간까지 나무로 만든 선착장(잔교)이 이어져있다. 그런데 호수 한복판에있는 선착장 한쪽에 이상한 기둥이 서있다. 이 것이 바로 기중기 기능을 가진 기둥으로 장애인도 호수에서 수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구였다. 비록 혼자 수영을 할 수 없고 보조기구의 도움을 받아 호숫물에 몸을 담그더라도 장애인들이 받아들이는 감동은 대단하다고 한다.


바비큐와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야영장. 둥그런 접시 같은 것에 한 사람이 입을 대고 말하면 10여 미터 맞은편 접시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마치 가까이서 얘기하는 것처럼 크게 들린다.

휠체어를 탄 어린이를 다른 사람이 밀어주는 것을 보고 "가족이나 일행이냐"고 물었더니 자원봉사자라고 대답한다.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 바르타바일에서 활동보조인을 별도로 배정해 이곳에서의 활동 내내 일거수일투족을 도와준다고 한다. 놀이시설에도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가자들이 누워서 체험해보도록 만든 명상실. 신비한 음악과 환상적인 조명 쇼를 물침대 위에서 보면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서적인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야외 화덕에서 반죽한 피자를 직접 굽고 휠체어를 탄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탈 수 있는 그네가 있는 캠프장이 우리사회에 있다면 장애인을 이해하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이라도 다시 찾고 싶은 곳, 이렇게 멋진 휴양지는 아니라도 각박해진 도심을 떠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독일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더 필요하다. 우리 대기업들이 잘못된 관행의 대가로 기부한 수 천 억 원의 사회공헌기금을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무슨 오페라하우스를 짓는데 쓸 것이 아니라 이런 제대로 된 캠프장을 짓는데 사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을 들어 호수에 옮기도록 설계된 기구. 디터씨는 장애인들이 처음에는 겁을 내지만 나도 호수에서 수영을 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백경학 /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기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