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수족 제작회사 가와무라 의지(義肢)

너의 다리가 되어줄께 - 일본 가와무라의 의지 주식회사 견학기


푸르메재단 최병훈간사


얼마전 TV에서 아주 기막힌 동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과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의 동거이야기.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대화를 나눌까요?

뇌성마비 친구가 어렵게 말을 하면 시각장애인 친구는 그 말을 수화로 청각장애인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면 청각장애인 친구는 다시 수화로 뇌성마비 친구에게 대답을 하고 뇌성마비 친구는 또 그 이야기를 음성으로 시각장애인 친구에게 전달합니다.

기막힌 커뮤니케이션의 삼위일체입니다.


청각장애인 친구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시각장애인 친구는 청각장애인 친구의 입이 되어주고 뇌성마비친구의 손발이 되어줍니다. 눈도 멀쩡하고 입도 멀쩡하고 똑같이 보고 똑같이 들어도 동문서답, 우이독경, 소통단절의 이 시대에서 이들의 동거는 참으로 아름다운 하모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섬기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팔이, 다리가 되어주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자 보람된 삶의 양식이지만 쏜살같이 돌아가는 복잡한 세상은 그 역할을 보조기구가 대신 하게끔 하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제 한 몸 추스리기도 바쁜 세상에 어찌 24시간을 누군가의 수족이 되어줄 수 있겠습니까? 섭리대로 흘러가는 자연환경과 바꾼 하이테크놀로지와 무분별한 산업화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대신, 잃어버린 우리 몸의 기능을 대신할 무엇쯤은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지 않을까요?




▲ 외부 모습




▲ 현관



▲ 가와무라의지 소개




지난 9월 일본연수 기간에 방문한 가와무라 의지는 이런 보상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일본 최대의 의지제조업체입니다. 창업자인 가와무라 가즈코 씨는 일평생을 오사카에서 의지를 만드는 장인으로 지내다 노년에 이 회사를 세우고 지금은 손자인 가와무라 케이 씨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중 김태영 선수가 쓰고 나와 유명해진 안면보호대도 이 회사에서 급히 만들어 공수한 제품이었다는 군요.


회사의 로비에는 이 회사에서 만드는 여러 보조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휠체어와 지팡이부터 인조 손가락, 인조 귀까지 다양한 보조기구들이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병뚜껑을 따야 할 때, 화장실에서, 욕실에서, 생활의 순간순간 만나는 수많은 장애환경에서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수많은 보조기구들이 있었습니다. 이 보조기구들을 보며 비장애인이 아무 불편 없이 움직이는 순간순간이 장애인들에게는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는 장벽 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인조 손가락




▲ 인조 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의 이력만큼 건물 내부에 마련된 회사 박물관에는 의지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시대별 보조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옛날에도 장애인들은 있었고 사람들은 또 그런 불편들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시도들을 했었던 것이지요. 나무로, 가죽으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초창기 모델부터 이제는 정상 신체와 거의 구분이 안가는 보조 의지들까지 시간을 따라 함께 진화해 온 인류의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 건물내부에 마련된 전시물


 



전시물 중에 유난히 특별하게 모셔진 의족이 있어 회사 담당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태평양전쟁 당시 히로히토 일왕이 다리를 다친 군인에게 하사한 ‘어제(御製) 의족’이더군요. 전쟁 중 부상당한 일개병사에게 훈장도, 포상금도 아닌 의족을 하사한 임금님의 자상함에 감탄할 뻔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당사자는 몸에 맞지 않아 그 의족을 사용하지 못하고 가보로 보관했다고 합니다. 자기 방식대로의 배려, 실정을 무시한 자상함은 당사자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황국신민을 강요했던가 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더니 그들의 지나친 배려에 한때 온 세계가 고통스러웠던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벽면에 전시된 어제(御製) 의족





▲ 가와무라의 직원들의 작업하는 모습


함께 살아가는 일에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목발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사람의 키와 체형에 따라 또 걷는 습관과 불편함의 정도에 따라 많은 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책상에 몸을 맞추고 옷에 키를 맞추어야 하는 시절이 흘러갔으면 이제 의족이 몸에 맞지 않아 짓무르고 피가 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맞춤형 서비스, 맞춤형 기술이 화두가 되는 시대이니 장애인들의 보조기구들도 더욱 더 정교하고 몸에 맞게 발달해 가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경제성이 맞지 않는다고 수요자가 약자라는 이유로 배척하고 무관심하게 흘러가면 갈수록 우리 주위에 고통스러운 내 가족, 내 이웃은 더욱 더 늘어만 갈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제의족’을 들고 황당해 하는 그가 내가 되고 내 자녀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날로 보수화되어가는 일본 사회는 장애인의 자립을 돕겠다며 재정지원을 감소해 가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장애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자립심을 기르기 위해서 정부가 무상으로 지원하던 부분을 축소하겠다네요. 추위에 떠는 아이에게 모닥불을 피워 주기는커녕 추위를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겠다고 남은 옷까지 벗겨가겠다는 얘기입니다. 자기 방식대로의 배려, 또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의족을 가보로만 보관하게 될는지…


맞벌이를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천문학적이 양육비가 들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 하나를 더 낳으면 몇십만 원의 보조금을 주겠다는 저출산정책, 장애인의 이동권을 확보한다며 만들어 놓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불편한 저상버스, 뒷북이라도 좋으니 딴 북만은 치지 말아야 할 텐데 실정과 따로 노는 정책들은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될 뿐입니다.


◀ 김태영선수가 착용했던 안면보호대

한국에서 견학을 온다고 회사 앞마당에 태극기를 걸어 놓더니 마치고 회사를 떠나는 길에는 우리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을 멈추지 않더군요. 몸에 밴 친절과 배려가 징그럽기까지 했지만, 그저 무감하고 무관심하기만 한 우리네 현실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따름이었습니다.



▲ 로비에 전시된 보조기구들

너의 다리가 되어주지는 못해도 너의 다리를 만들어 줄 수는 있습니다. 그 몸에 꼭 맞게 움직임에 아무 불편이 없이.. 나눌 수 있는 시간과 몸이 없으니 대신해 줄 보조기구만큼은 더욱 더 세심하게 세밀한 관심과 고려 속에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가내수공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의지제작 기술과, 턱없이 부족한 지원정책도 날로 늘어나는 차량 수만큼이나 발전해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장애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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