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는 사랑과 정이 넘쳤어요

<노무라 할아버지의 강연을 듣고>


 


지난 7월부터 푸르메재단에서 직장체험 프로그램으로 인턴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장애인을 돕는 푸르메재단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어 뜻 깊은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6일에는 재단에 귀한 손님이 찾아 오셨다. 노무라 할아버지로 불리우시는 노무라 모토유키 선생님. 70년대 청계천 빈민구호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졌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는 노무라 할아버지. 그 특별한 만남을 정리해 본다.


재단을 방문하신 노무라 할아버지


강연 전, 노무라 할아버지께서 재단 사무실을 찾으셨다. 노무라 할아버지는 한국어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신 후 창 밖으로 눈길을 돌리셨다. 창 밖에는 북악산이 우리만큼이나 할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고, 할아버지께서는 이에 답변이라도 하시는 듯 찬찬히 둘러보셨다.



잠깐 동안 할아버지와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Ich und du(나와 너)라는 유대인 작가의 책을 추천해주시며 '나와 너'라는 관계와 '나와 그것'이라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노무라 할아버지께서는 인간이 인격으로서 공존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도구화되고 있는 세태에 대해 안타까워하셨다. 말씀을 하시는 동안, 나는 노무라 할아버지로부터 그간 살아오신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가지신 강인한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할아버지


드디어 강연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이 노무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러 강당을 가득 메웠다. 첫 순서로 백경학 상임이사님께서 환영사를 하셨다. 이어 푸르메홀의 커다란 스크린에 노무라 할아버지의 일대기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영상 속에서는 할아버지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이심을 증명하듯 1970년대 청계천 빈민구제 활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50여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봉사하신 일,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플루트 연주를 하신 일, 70년대 한국을 보여주는 2천여 점의 사진을 서울시에 기증해주신 일 등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할아버지의 한국을 생각하시는 마음과 그간의 공을 모두 담기에는 턱없이 짧은 영상이었지만, 단 몇 가지 일화만으로도 보는 이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뒤이어 시작된 송영숙 씨의 가야금 연주는 마치 어려웠던 한국의 70년대를 떠올리게 하여 감동의 여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해주었다.



노무라 할아버지의 플루트가 더해져 만들어진 합동 연주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지그시 감곤 했다. ‘봉선화’로 시작하여 ‘아리랑’으로 끝난 연주는 비록 할아버지의 서툰 플루트 연주 솜씨를 탄로나게 했지만 오히려 때묻지 않은 진심을 보여주어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할아버지의 한국에 대한 미안함과 진심 어린 사랑은 푸르메홀 구석구석을 메우며 모두에게 전달되었으리라.



연주가 끝나고 노무라 할아버지께서 사진에 담으신 70년대, 한국 청계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할아버지께서 찍으신 사진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한국인의 일상들이 담겨있었다. YMCA 앞에서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 그네 타는 남자 아이, 당시 빈민가 아이들, 답십리 일대 등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 잊지 못할 순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할아버지는 30년도 지난 일들과 사람의 이름까지 생생하게 말씀해 주셨다. 얼마나 한국인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청계천 사람들은 어렵게 생활했지만 사랑과 정이 넘쳤다고 말씀하셨다.



진리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 마코토 씨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 ‘진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들 마코토 씨가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올 당시, 본인은 아주 어린 아이에 불과했지만 그 때의 경험이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하였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한국에 대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두 분은 한국에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노무라 할아버지께서는 이번 역시 빈 손으로 오시지 않았다. 기부금과 더불어 알록달록해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칫솔을 한아름 가져오셨다. 치아가 불편한 한국의 장애인을 위해 칫솔에 푸르메재단이라고 이름까지 새겨서 가지고 오신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선행을 숨기신 미덕


강연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성황리에 마치게 되었다. 나는 강연을 듣는 내내 노자가 말한 ‘태상’이 떠올랐다. ‘태상’은 본인이 한 일을 공으로 여기지 않고, 이를 남들에게 알리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노무라 할아버지는 이러한 ‘태상’의 모습을 지니신 것 같았다. 남들 같았으면 이만큼 좋은 일을 했다고 자랑하기에 바쁠 것이다. 할아버지는 겪으시지 않아도 될 불편함까지 겪으시면서 많은 일을 하시고 이를 결코 남들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일들이 드러나면서 우리는 뒤늦게 감사를 표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리고 할아버지의 애정 듬뿍 담긴 한국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다.



*글 = 강혜빈

상명대학교 금융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직장 체험생입니다. 푸르메재단 기획사업팀에 소속되어 어린이재활병원, 행복한 카페&베이커리 등의 기획업무를 보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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