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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로 전국일주, 달려서 아름다운 청년

 

 

“잠잘 곳을 찾기 위해 10군데는 부탁을 하고 다닌 것 같아요.”
“마을 정자에 누워 생각하니 제가 참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텐트는 물론 침낭하나 없이 전국 일주를 떠났으니까요.”

취업 준비에 바쁠 대학교 4학년. 친구들은 소위 스펙을 위해 도서관과 학원을 찾아다닐 때 책은커녕 자전거 한 대로 전국을 누빈 청년이 있다. 스스로 무식해서 용감했다고 말하는 황승환 씨의 자전거 여행은 휴학까지 불사하며 그렇게 시작되었다. 황 씨는 올해 초 전국을 자전거로 돌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많은 친구들이 함께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몇 달에 걸쳐 일정을 정하고 자전거를 구입하려하자 친구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포기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임을 황 씨도 알고 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미루면 영원히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혼자라도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고 ‘바이시클 프로젝트 1% 희망과 1% 나눔’이라고 이름도 정했다. 자전거 용품을 알아보니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장비를 모두 갖추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걱정보다는 문제가 생기면 그 때가서 해결하기로 맘먹었다. 30만 원대 일반 자전거를 한 대 사서 한강을 열흘 쯤 달렸다.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전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강처럼 잘 닦여진 자전거 길은 별로 없었다. 국도는 거칠었고 화물차는 위협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2,000km를 달려야 할 이유가 있었다.

“42명의 후원자가 저를 바라보는 것 같았어요. 자전거를 타는 내내 외로웠지만 그림자가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44일이 지나고 2,287km를 달려 황 씨는 당당하게 푸르메재단 앞에서 바이시클 프로젝트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8월 1일 후원자들이 내준 기금을 모아 재단을 방문했다. 힘들고 못먹어서 살이 5kg은 빠졌다는 황 씨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나눔을 실천한 황승환 씨의 사연을 들어 보자.

국도는 도로가 험해서 펑크가 자주 났다. 대처방법을 잘 배우고 갔지만 처음 펑크가 났을 때는 1시간정도 고생을 했다.
국도는 도로가 험해서 펑크가 자주 났다. 대처방법을 잘 배우고 갔지만 처음 펑크가 났을 때는 1시간정도 고생을 했다.
Q.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건국대학교 체육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황승환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까지 축구선수를 했습니다. 군 제대 후 뒤늦게 입학하여 다른 학생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편입니다. 올해 스물아홉 살입니다.

Q. 이번에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이시클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네. 맞습니다. 지난 5월 11일부터 6월 23일까지 44일간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했습니다. 바이시클 프로젝트는 단순히 전국여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달리는 거리만큼 모금을 진행한 행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자전거 전국여행을 생각했다가 이왕이면 내가 달리는 만큼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표를 2,000km로 정하고 얼마든지 좋으니 완주한 거리만큼 기부해 달라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계획보다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구례에서 만난 부산 대안학교 학생들. 선생님과 친해져서 나중에 부산을 지날 때 침낭을 빌릴 수 있었다.
구례에서 만난 부산 대안학교 학생들. 선생님과 친해져서 나중에 부산을 지날 때 침낭을 빌릴 수 있었다.
인천 동심원을 출발하여 오산, 평택, 홍성, 군산 등 서해를 따라 제주도까지 갔습니다. 제주도를 일주하고 부산을 거쳐 거제, 마산, 대구, 안동, 강원도를 횡단하여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서울의 도착지는 종로구 푸르메재단으로 했습니다. 도착하는 날이 일요일이라서 말씀드리진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Q. 이번 프로젝트를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자전거만 타고 전국을 완주해도 좋겠지만 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저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 나중에 성공하면 10% 기부할 수 있어?” 고민을 했지만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대답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나누는 일은 실천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몸으로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후원할 기부자를 찾게 되었습니다.

Q. 기금은 어떻게 모으게 되셨는지요? 또한 어떤 분들이 참여하셨는지요?

우선 제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유명인도 아니고 결과는 미비했습니다. 응원의 글은 종종 있었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아는 분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가족 중에는 누나가 도움을 주셨고 친구나 학교 동생들, 또 다양하게 인연이 되신 분들이 도와 주셨습니다. 이렇게 총 42명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전국을 돌때 사연을 들으시고 후원해 주신분도 5명이나 됩니다. 모금한 금액은 전액 기부한다고 알렸는데도 인색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모금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힘들지 몰랐습니다. 당시에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충분히 이해됩니다. 저라도 아마 선뜻 도와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Q. 이번 프로젝트의 달린 거리와 모금한 금액이 궁금합니다.

2,000km 완주를 목표로 모금활동을 했고 실제 달린 거리는 2,287km입니다. 2,000km를 달리지 못하면 프로젝트가 실패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습니다. 완주 후 계산해 보니 총 모금액은 4,243,610원입니다. 처음에는 10명의 기부자를 받아도 즐겁게 달릴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정말 행복하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6월 23일 프로젝트를 마친 곳이 푸르메재단이다. 공교롭게도 일요일이라서 재단 사무실에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완주해 냈다는 기쁨에 행복한 날로 기억한다. Q. 어렵게 마련한 금액을 푸르메재단에 들고 오셨습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2006년도에 과천장애인복지관에서 체육강사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푸르메재단을 알게 되었고 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하는 재단을 위해 기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상암동에 지어질 어린이재활병원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작지만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요. 또 어떻게 마련하셨는지요?

후원받은 기금은 전액 기부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련했습니다. 자전거는 35만 원 짜리를 구입했는데 비용이 모자라서 5만 원은 외상으로 했습니다. 이해해 주신 자전거 대리점 사장님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자전거 용품이 생각보다 비쌌습니다. 옷은 학교 교수님이 연결해 주신 분이 무료로 주셨습니다. 3만 5천 원짜리 작은 가방 하나에 속옷과 양말 3컬레를 넣고 출발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완주해 계산해 보니 자전거 용품비를 제외하고 105,800원을 사용했습니다.  


Q.
어떻게 44일을 여행하며 그렇게 적게 사용할 수 있었나요?

무전여행이 목표였기 때문에 비상금으로 가져간 돈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용한 10만원 남짓한 돈도 제주도를 왕복 할 때 쓴 배 삯이 대부분입니다. 거의 밥은 얻어먹고 잠은 노상에서 잘 때가 많았습니다. 텐트나 침낭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워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정말 제가 무식하게 출발했다고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럴수록 더 강해졌습니다. 출발에 앞서 11군데의 복지시설을 들리는 것을 계획으로 잡았습니다. 시설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온종일 자전거를 타고 잠자리를 정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마을 정자에서 자고 비교적 안전한 경찰서 옆에서도 자기도 했습니다.

(왼쪽)원주에 위치한 ‘천사들의 집’에서 봉사를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른쪽)지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잠잘 수 있었다. 부산에 대안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침낭이 생기자 잠자리 고민이 해결되었다.
(왼쪽)원주에 위치한 ‘천사들의 집’에서 봉사를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른쪽)지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잠잘 수 있었다. 부산에 대안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침낭이 생기자 잠자리 고민이 해결되었다.
강원도에서는 사이클 선수들을 만났는데 선수들이 타는 자전거는 최소 천 만 원대라며 30만 원 짜리 자전거를 끌고 온 저를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신던 운동화를 신었는데 자전거용 전용 신발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Q. 힘들게 달리려면 잘 먹어야 할텐데 먹는 것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첫 날은 시설 선생님 댁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어서 편했습니다. 다음날은 용기가 나지 않아 몇 끼는 사먹었습니다. 이렇게 돈을 쓰다가는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아 용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날 저녁은 햄버거 체인에 들어가 콜라 한잔 시키고 의자에 앉아 새우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면 평균 4군데는 퇴짜를 주고 1군데는 성공하는 것 같았습니다. 젊은이가 고생한다며 밥을 두 그릇 가져다주신 사장님이 계셨는데 정말 눈물이 날 것처럼 고마웠습니다. 점심을 거르고 오산에 있는 돼지국밥집 앞에서 30분을 서성이다가 용기를 내어 주인 할머니께 말씀 드렸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가져다주신 국밥이 제가 무료로 먹은 첫 끼로 기억합니다. 정말 감사해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왼쪽)30분간의 고민 끝에 들어간 돼지국밥집. 할머니의 따뜻한 도움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오른쪽)두 그릇도 뚝딱. 배고픈 여행자인지 알아보시고 두 그릇을 내오시는 사장님이 종종 계셨다.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먹는 걸로 보답했다.
(왼쪽)30분간의 고민 끝에 들어간 돼지국밥집. 할머니의 따뜻한 도움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오른쪽)두 그릇도 뚝딱. 배고픈 여행자인지 알아보시고 두 그릇을 내오시는 사장님이 종종 계셨다.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먹는 걸로 보답했다.
Q.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기억되는 것은?

모든 것이 기억에 남지만 신경외과 선생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전거를 온종일 타다 보니 팔목과 손이 너무 아팠습니다. 젓가락을 쥘 힘도 나지 않아 병원을 찾았는데 프로젝트 중단을 권유하셨습니다. 심각하게 진찰해 주셨지만 센스있게 진료비는 받지 않으신 의사 선생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주도에 갔을 때는 ‘작은 예수의 집’이라는 곳에서 도움을 받았는데 원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신을 도울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합니다.”라며 저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손과 손목이 아파서 찾아간 신경외과에서 무상으로 진료해 주신 의사 선생님  

Q.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할 4학년입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1학기를 휴학했습니다. 졸업까지 필요한 학점이 많지 않아 2학기에는 인턴으로 취업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여행사에 취업하고 싶습니다. 가까운 미래의 목표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한 30년 후에 꿈은 제가 포기한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국내 최초의 프로축구 구단을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고 대관령을 넘어 원주로 가려면 태기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가장 힘들었건 구간으로 기억합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겨우 정상에 올라 30분간은 기절한 것 같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높은 벽과 장애물은 내가 마음먹는 것에 따라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좋은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났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인사를 하러 가고 싶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기부해 주신 42명의 분들과 식당과 길에서 저를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여행 중 제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현금을 주신 분들도 계셨는데 모두 모아 푸르메재단에 전달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완주 복장으로 푸르메재단에 4,243,610원을 기부금을 전달하였다. 함께해주신 42명의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완주 복장으로 푸르메재단에 4,243,610원을 기부금을 전달하였다. 함께해주신 42명의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 황승환 씨의 프로젝트와 후원에 참여한 분들은 http://www.facebook.com/bproject.kr 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글=한광수 홍보사업팀장/사진=황승환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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