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탁해] 수술-입원-의족 모두 무료… 기부가 기적을 낳다

 

[기적을 부탁해]수술-입원-의족 모두 무료… 기부가 기적을 낳다

[어린이 재활병원의 미래를 보다]
下 병원비 걱정없는 美 텍사스 스코티시 라이트 ‘어린이 재활병원’

▲ 선천적으로 팔다리가 짧은 라이앤 카 양(왼쪽에서 두 번째)이 주치의, 자매들과 텍사스 스코티시 라이트병원 진료실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카 양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만큼 재활에 성공했다. 이 병원은 사회 복귀를 재활의 목표로 정하고 있다.
댈러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진료비 청구서가 없는 병원, 소독약 대신 팝콘 냄새가 나는 병원,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숨어 있는 병원. 지난해 11월 방문한 미국 텍사스 주 텍사스 스코티시 라이트 어린이재활병원(TSRH)의 모습이다.

이 병원에서는 장애 어린이가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다. 이 ‘기적’을 만든 것은 바로 ‘기부’였다. 미국 내 자선단체인 ‘메이슨 그룹’이 1921년 댈러스의 작은 의원에 소아마비 환자 무료 진료를 의뢰하면서 TSRH가 문을 열었다. 소아마비 백신이 개발된 후에는 소아마비 환자의 장애 치료에 주력했다. 1977년 댈러스 시의 한 상원의원이 3500만 달러(약 403억 원)를 기부하면서 현재 모습을 갖췄다.

○ 소득에 상관없이 누구나 무료 진료

“난 운동을 잘해요.”

꽃무늬가 그려진 의족을 신은 라이앤 카 양(11)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카 양은 선천적으로 팔과 다리가 짧은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그러나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승마를 즐길 만큼 재활에 성공했다. 카 양은 네 살 때부터 TSRH에서 치료를 받은 뒤 몸이 자랄 때마다 병원에 와서 새 의족을 맞춰간다.

2011년 한 해 동안 외래환자는 4만513명이었고 2075명이 수술을 받았다. 카 양이 그랬듯이 모든 진료와 수술은 무료다. 보통 1인당 3000∼5000달러가 들고 최고 60만 달러(약 6억9000만 원)에 달하는 환자도 있다. 수술을 마친 후 의족이나 의수가 필요하다면 역시 무료로 제공한다. 개당 5000달러에서 4만 달러까지 한다.

그렇다고 저소득층 아동만 오는 병원은 아니다. 전체 환자의 90% 이상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다. 환자는 △18세 이하 △텍사스 거주자 △병원 치료로 호전될 가능성을 심사해 선정한다. 밥 워커 TSRH 부원장은 “환자가 소득이 많은지, 적은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여기서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력 있는 사람들은 치료비를 내지 않는 대신 나중에 기부를 한다. 엘리 스티어네이글 양(3)이 그런 경우다. 스티어네이글 양은 발바닥이 아치 모양이라 땅을 똑바로 딛지 못한다. 원인은 알 수 없다. 지난해 5월부터 진료를 받고 있다. 스티어네이글 양의 아버지는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고액연봉자로 이미 기부를 약속했고 어머니는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할 계획이다.

TSRH의 병원 운영비용은 한 해 1억 달러(약 1159억 원) 정도다. 그러나 연간 기부 수입은 2000만 달러(약 231억8000만 원). 모자란 돈은 이미 기부받은 토지, 주식, 적립금 등 자산에서 나오는 이자나 배당금으로 충당한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해에만 이례적으로 보험회사나 정부에 진료비를 청구할 뿐 환자에게 진료비를 내라고 하지는 않는다.

병원 자원봉사자도 800명에 달한다. 의사 간호사같이 자격증이 필요한 분야 외에서 일하고 있다. 청소년, 노인, 지역 기업 직원들로 나눠진 자원봉사자는 주당 평균 8시간씩 일한다.

○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을 만들다

1977년 병원 건립기금을 기부할 때 상원의원이 제시한 조건은 단 하나.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을 만들어 달라’였다. 병원 입구를 들어서니 복도마다 고소한 팝콘 냄새가 가득했다. 중앙 로비에 커다란 팝콘 기계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팝콘 판매액은 기부금으로 적립한다.

로비를 지나 진료 병동에 들어서니 의사와 간호사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의 공간은 병동 가운데 원형으로 마련돼 있었다. 진료실에는 ‘진료실’이 아니라 하키룸, 풋볼룸 같은 명패가 달려 있었다.

진료실 내부도 한국의 진료실과는 달랐다. 의사 책상은 보이지 않고 환자 침대만 놓여 있다. 닐 데브로이 대외협력팀장은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앉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아이들은 겁을 먹는다. 의사가 진료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본다”고 말했다. 어항 자동차 모빌 장난감이 가득한 병원 복도는 아이들이 까르르 하고 웃는 소리로 가득했다. 벽면에는 기부받은 미술품이 걸려 있었다.

병원학교도 운영한다. 교실은 8개, 교사가 2명 있다. 장기 입원하는 아동이 학업이 단절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의사는 치료 시간표를 짤 때 아이가 공부할 시간을 비워둬야 한다.

○ 대접받는 기부, 재미있는 기부

기부를 이끌어내기 위한 병원의 노력도 각별했다. 기부를 받기 위해 TV나 라디오 광고를 따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병원에 다녀간 환자가 홍보대사가 된다. 지역사회에 들어가 병원을 홍보하고 기부 동참을 호소한다. 골프대회, 마라톤대회, 패션쇼, 미술전시회 같은 크고 작은 행사를 연간 200회 이상 마련하거나 참여한다. 감사카드를 보내고 두 달에 한 번 안부 전화를 하고 같이 저녁을 먹는다. 캐럴라인 로 기부팀장은 이 전략을 ‘친구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지난해 열린 ‘키즈 스윙’이라는 골프대회에서는 무려 100만 달러를 모금했다. 병원의 환자였던 벤 세이터 군(14)이 자발적으로 만든 대회다. 7∼18세 청소년들이 9홀을 돌며 경기를 벌였다. 텍사스 주의 댈러스, 매키니, 트로피 등 각 지역을 돌면서 열렸다.

이처럼 기부가 활성화된 데에는 미국에 널리 퍼진 기부문화 영향이 크다. 그러나 기부함으로써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누군가가 병원에 1만 달러를 기부하면 상속세에 해당하는 연간 5% 정도가 연금 형태로 돌아온다. 로 팀장은 “마치 기업이 고객을 관리하듯 기부금액에 따라 등급을 매겨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댈러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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