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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말아요! 캠페인] 이희아, 내가 행복한 이유

나는 손가락이 두 개이고, 발가락이라고는 무릎밖에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나는 정말 모른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손과 발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이 울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가 피아노를 치는 걸 보고 내 손가락이 네 개라는 걸 알 수 있다. 한 손에 두 개씩이다. 우리 엄마는 내 손이 튜울립 꽃처럼 예쁘다고 하신다. 예쁘긴 하지만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엄마는 걱정을 하다가 피아노를 가르쳐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

우리 엄마가 일하는 병원에 손님으로 온 조미경 선생님이 나한테 피아노를 가르쳐 주셔서 나는 이제 피아노를 잘 치게 되었고 연주회도 많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엔 손가락이 아프고 피도 났다. 다른 사람들은 손가락 열 개를 가지고 피아노를 치는데 나는 네 개로 치니까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

나는 저녁때까지 계속 같은 곡을 연습한다. 열이 날 때까지 치니까 힘들어서 피아노 위에 엎드려서 잠을 잔 적도 많다. 그러면 엄마가 깨운다. 엄마가 대회에 나가려면 더 연습해야 한다고 얘기하면 나는 잠에서 깨어나 계속 연습을 한다.

그렇게 연습해서 연주회에 나가면 정말 기분이 좋다. 언제나 지루하게 한참 동안 기다리게 되지만, 무대에 올라가 피아노를 칠 때는 나는 아주 열심히 연주를 한다. 내가 연주하는 곡을 만드신 모차르트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연주를 한다. 그럴 때는 마치 내가 모차르트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성껏 연주를 하고 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연주했을 때보다 나에게 더 큰 박수를 쳐준다. 나는 아주 많이 연습했고 정성껏 연주를 했기 때문에 그런 박수를 받으면 아주 기분이 좋다. 나는 다리가 짧다. 처음에는 무릎 아래에도 다리가 조금 있었지만 무릎 아래의 다리를 자르는 큰 수술을 받았다. 내 다리의 뼈는 특별해서 무릎 있는 부분에서 뼈가 앞뒤로 튀어나와 있어서 발처럼 생겼다. 그래서 걸을 수가 있다.

하지만 발바닥이 아니라 그냥 살이라서 조금만 걸으면 금방 까지고 물이 차서 굉장히 아프다. 그러면 왕주사기로 찔러서 물을 빼내는데 너무 아파서 아무리 참아도 비명을 지르게 된다. 처음엔 병원에 가서 물을 뺐지만 맨날 그러다 보니 엄마가 집에서 큰 주사기로 물을 뽑아 주신다.

엄마는 간호사였기 때문에 주사기로 물을 뽑는 걸 아주 잘하신다. 그래도 너무 아파서 나는 내가 제일 아끼는 베개 인형 희철이를 끌어안고 엉 엉 엉 운다. 이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날마다 성모님께 기도한다. 우리 아빠는 멋진 군인이셨다. 최전방에서 간첩들을 추격하고 있었는데 우리 아빠는 탄약을 가득 실은 차에 타고 계셨다. 미끄러운 눈길에서 과속으로 달리다가 그만 차가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 사고로 아빠는 평생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게 되었다. 아빠가 입원하고 있던 보훈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던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아빠는 장애인이 되었지만 집 없는 상이군인들이 모여 살 수 있도록 상이군인 마을도 만들고 여러 가지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다.

이렇게 용감한 아빠와 마음씨 고운 엄마가 결혼을 했지만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엄마는 몸이 너무 아파서 감기약을 오랫동안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기를 가진 것을 알았다.

엄마는 뱃속에 있는 아기가 손가락도 몇 개 없고 다리도 짧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나를 낳아 소중히 키워주셨다.어려서부터 많이 아프고 몸이 약해서 엄마를 많이 힘들게 했다. 모두들 내가 오래 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열 살을 넘기지 못한 성녀 희아친타의 이름을 따서 희아라고 이름지었다.

엄마는 호랑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무엇을 못한다고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엄마가 내가 하는 말 중 제일 싫어하는 것은 “엄마! 난 할 수 없어.”였다. 내가 그 말을 하면 엄마는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야단을 치셨다. 엄마가 나를 강하게 키우지 않으셨다면 나는 피아노도 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 스물 세살이다. 엄마가 나를 강하게 키워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는 없었을 거다.

나는 엄마와 즐겁게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칠 수 있고 또 내 연주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얻고 용기를 가질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연주를 했고, 미국, 캐나다, 유럽,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을 다니면서 연주할 기회가 많았다 외국에서는 내 연주를 들으면 찾아 와서 눈물을 흘리며 나를 껴안고 내 손을 잡는다. 그들이 고맙다고 말할 때면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사람들은 장애인인 내가 미국에서 살면 좋을 것이라 하지만 미국은 이미 장애인 천국이라 내가 필요하지 않다. 내 꿈은 장애인이 사랑받지 못하는 북한이나 시골, 중국, 아프리카 같은 데서 사람들에게 희망의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다. 지금은 필리핀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이곳 필리핀 사람들은 굉장히 음악을 사랑한다. 마음씨도 따뜻하고 모두들 천사 같다. 여기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부자는 아니지만 행복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몸이 자주 아프고, 휠체어에서 잘 굴러 떨어지고, 발에서 물을 뽑을 때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다. 나는 악보를 보고 이해할 수 없어 모든 곡을 전부 듣고 외워서 연주해야 하니까 남들보다 수백 번 더 연습해야 한 곡을 연주할 수 있는데 그것이 힘들다.

하지만 행복한 일들이 더 많다. 내가 피아노를 잘 칠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이다. 내가 열심히 연습해서 사람들 앞에서 정성껏 연주를 들려주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 같다. 나도 행복하고 엄마도 행복하고 사람들도 행복하고. 그래서 나는 내가 좋고, 지금이 좋다. 내가 행복하니까 나를 보는 사람들도 행복해진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희아
(피아니스트)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장애를 통해 감동을 주고 있는 스물세 살의 피아니스트입니다.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로 양손에 손가락이 두 개씩 있고, 무릎 이하의 다리가 없습니다. 연필 쥘 힘을 기르려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가 음악적 재능을 보이자, 피나는 노력 끝에 전국 학생 음악 연주 평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장애 극복 대통령상,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 등을 받았으며, 국내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초청을 받아 왕성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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