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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말아요! 캠페인] 한명숙,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

며칠 전 예쁘게 포장한 꾸러미를 하나 받았습니다. 열어보니 엽서가 한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족히 수백 장은 넘어보였습니다. 어떤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저마다 한 장씩 사연을 적어 보낸 것이었습니다.

‘총리님, 저희 학교 졸업식에 꼭 한번 와주세요.’라는 애타는 부탁을 담은 내용이 5백여 장의 엽서에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낸 학생들은 말하자면 늦깎이 학생들, 만학도였습니다.

저마다 어려운 사정으로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뒤늦게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는 분들이었습니다. 평생 가슴에 앙금으로 쌓인 ‘못 배운 설움’, ‘배움의 한’을 성공적으로 풀어낸 어른학생들이지요. 그 학교 얘기를 좀 더 들어보니 늦깎이 학생들의 나이는 5,60대는 물론이고 70세가 넘은 분들도 계셨습니다. 배움에는 정말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 지식에 대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오래전에 읽은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중에 시장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글을 모르니 오죽 답답했을까요. 할 수 없이 비서에게 문서를 읽게 해야 했지요.

그렇다고 장발장이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장 관저에서 혼자 살면서 시간만 나면 등을 구부리고 앉아 열심히 공책에다가 알파벳을 베껴 쓰며 공부를 했지요. 제가 가장 감동 깊게 기억하는 장면은 양녀가 될 코제트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혼자 힘으로는 편지를 쓰지 못해 애타할 때였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한 인간에게 엄청난 벽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요. 앎에 대해서 원천적으로 봉쇄당한다는 느낌, 세상에 대한 창문이 꽉 닫혀 있는 그런 상태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게 편지를 보내온 늦깎이 학생들의 학교는 그간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매번 만학도들의 졸업식은 늘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배움의 한을 풀어냈다는 감동과 더불어 자신이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한없는 자긍심, 자부심, 자랑스러움, 그런 감정들이 졸업식장을 메운 모든 학생들의 가슴에 소용돌이쳤을 것입니다.

만학의 기쁨은 중도 포기의 아픔을 꿋꿋한 의지의 불씨로 지펴냈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게 누가 등을 떠밀어서 시킨다고 되는 일이겠습니까? 스스로 꿈을 이뤄내고 말겠다는 확신이 가장 큰 힘이었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실행해 낼 때 인간은 위대합니다. 실패했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난관에 부딪쳤을 때라도 물러나지 않으며 기어이 헤쳐나가는 인간이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하다고 하지 않을까요. ‘인간은 패배했을 때 끝나지 않는다. 포기했을 때 끝난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살아오면서 하늘이 무너진 듯 좌절하고, 뜻을 굽히고 무릎을 꿇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생이별을 했을 때도 그랬고, 또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혔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행히 그 고비를 잘 넘어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웠을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저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곤 합니다. ‘어려움이 나를 정복하지 않도록 했을 때’라고 말입니다.

지금 저는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나라살림을 잘 해내기 위해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나라 안의 이런저런 어려움을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구촌이 놀라고 있습니다. 반세기 전 전쟁을 치른 폐허의 땅에서 이룬 우리의 경제성장과 민주발전을 세계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어려운 적이 한두 번이 있었습니까? 그때마다 우리는 늘 꿋꿋이 일어났고 또 그 성과를 거두어냈습니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지금껏 이룬 성과에 자부심을 가지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늘 우리 국민들이라면 이뤄내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 한 분 한 분 모두가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코 간단하게 그 난관에 굴복하지 않고, 누구든지 희망의 큰 힘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는 더욱더 커 나갈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은’ 분들의 삶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힘을 솟아오르게 만듭니다. 누구에게나 큰 의지처가 됩니다. 우리가 이웃임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줍니다.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분들이 어느 곳보다 많은 곳이 푸르메재단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푸른 산’ 푸르메에 모이신 여러분, 우리 서로 힘을 모으고 함께 행진해 나갑시다. 우리의 걸음에 힘이 넘쳐날 것입니다.

 

 

한명숙 총리

정신여고와 이화여대 불문과, 이대 여성학과 대학원. 신혼 시절 남편인 현성공회대 박성준 교수가 1968년 독재정권에 반대해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구속되자 13년 반 동안 헌신적으로 옥바라지를 했다. 한 총리 역시 19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사건으로 1년 반 복역한 뒤 여성운동에 투신했다. 1990년 한국여성민우회 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한 뒤 2001년 초대 여성부 장관에 취임했다. 16대와 17대 국회의원을 거쳐 2006년 37대 국무총리에 취임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됐다. 한 총리와 남편 박성준 교수는 연인이자 이념적인 동지로 한편의 드라마로 전해지고 있다. 박 교수는 한 총리에 대해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아내”라고 말해 헌신적인 외조자로서 변함없는 사랑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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